라면부터 숯불구이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쭈꾸미 시즌이 열렸다. 그것은, 늘 그렇듯 한 통의 전화로.
"꽃게 지져서 놓고 쭈꾸미도 사왔으니까 와서 가져가."
엄마는 태안에 친구 따님 결혼식이 있어서 간다하셨다. 신기하지, 요즘 시상에 시골에서 결혼식을 한다니. 그러나 실제로 시골을 둔 사람들은 그런 일도 종종 겪는다. 우리 사촌들 중에도 태안에서 결혼을 한 가정이 여럿이 있으니.
원래 지난주 주말에 태안에 가는 길에 바깥양반과 동백이를 데리고 따라가려 했다. 그런데 4월에 또 태안에 갈 일정이 있다. 며느라기가 아무리 착하고 동백이가 아무리 순하다 해도 바깥양반 입장에선 시댁의 시골에, 두번이나 가는 것도 조금 넌센스다. 하여 4월에 가기로,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 외할머니 제사가 있는 주인데, 그때 가기로 하고 이번에 태안 방문은 취소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엄마는 아니나 달라, 쭈꾸미를 한, 3키로 안기신다. 많다 많아...꽃게탕도 지져내 저녁 밥상도 차린다.
쭈꾸미 3kg가량을 매년 먹어치우는 게 일이다보니 요즘은 뭐든 이골이 난다. 야채 육수에 주꾸미 샤브샤브를 해먹기도 하고, 떡볶이도 해먹고, 파스타도 해먹고 하다보니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쭈꾸미로 오히려 온갖 요리를 해먹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명색이 해산물에, 신선식품이니, 그 모든 요리는 1주일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성능 좋은 김치냉장고라도 반냉각 상태로 쭈꾸미를 보존하는 것엔 기한이란 게 있다.
둘이서 해먹으려니 한번에 너댓마리가 고작이다. 쭈꾸미가 비싸기도 하지만, 비싼데 생각보다 큰 해산물이다. 한끼 식사에 두마리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 첫날 아침은 가볍게 네마리의 쭈꾸미와 함께 라면으로 시작. 라면을 그리 자주 먹지 않는 우리지만 너무 먹지 않아서 오히려 땡길 때가 있달까. 지난번 대통령 선거 날 안주 삼아 진짬뽕 컵라면을 하나 사와, 둘이서 나눠먹었는데 바깥양반이 그 맛에 혀가 당김을 느낀 모양이다. 마트에 갔더니 여지없이 진짬뽕 봉지라면을 한 번들 집어넣었다.
라면 라면. 쭈꾸미라면. 그것은 참 쉽다. 미리 쭈꾸미를 한번 데쳐내고 나서 스프를 넣는다. 그리고 머리를 떼어 팔팔 끓인다. 다리는 손질해둔 뒤에 면이 하늘하늘 부드러워질 때쯤 넣는다. 3월에는 쭈꾸미가 제철이라고 하긴 조금 이른데, 게다가 지난주 주말이었으니 3월 초인데도 넷 중 둘이 알배기다. 씹는 순간 꼬들꼬들한 쭈꾸미 알이 입안 가득 터져나온다. 물론 쭈꾸미에도 먹물이란 게 있어서, 나머지 둘은 먹물을 탁 터트린다.
묘하게도 바깥양반은, 알배기 쭈꾸미를 내가 잘라서 밥그릇에 넣어주기만 하면 아주 게눈 감추듯 순삭을 시키던 식성이었는데 아이를 낳아서 그런가 갑자기 쭈꾸미를 보더니 희번뜩하게 눈을 뜬다.
"윽 징그러."
"뭐야...잘 먹었잖아."
"아 몰라 징그러워 안 먹을래."
"...입덧하니 애 다 낳아놓고서."
출산 후 입덧이라 못들어본 것도 아니다만, 조금 황당한 사건. 아직 쭈꾸미는 많이 남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한데.
그건 그거고 먹을 사람은 먹어야 한다. 다음날엔 쭈꾸미볶음을 하기로 했다. 왜...볶음이냐 하면...아침 메뉴로 뭔가 맛깔진 걸 먹고 싶었달까. 이번주에 나의 스케쥴은 그야말로 스펙타클 판타스틱했는데 월-화요일엔 하루에 세시간, 두시간을 각각 잤다. 그러고 나선 수요일과 금요일에 대학원에 야간까지 수업과 세미나가 있었다. 목요일엔 바깥양반과 잠시 외출을 했다. 엄청난 일주일을 보냈다는 뜻으로, 글을 쓰는 지금까지 피로가 풀려있지 않다. 그러나저러나 밥은 해먹어야지. 대강, 대파에 양파. 아침이므로 두가지로만 야채를 넣었다. 원래는 양배추를 썰어넣어야 하는데 인덕션이라 화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후루룩, 볶아서 먹고 학교로 출발이다.
요령은 비슷하기도 좀 다르기도 한데, 볶음을 할 경우니까 먼저 머리를 충분히 볶아야 한다. 아니면 따로 머리는 데쳐두어도 좋겠지. 요는 다리 부분이 쫄아붙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되도록 다리가 짧은 시간만 가열될 수 있도록, 그래서 쭈꾸미가 탄력있는 식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러나...그와는 반대로 오래 오래 가열을 해야 하는 요리도 있는 법이다. 아무리 쭈꾸미라고 해도 말이다.
일요일 아침에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곱시부터 아홉시까지 줌으로 하는 활동을 마치고, 쭈꾸미를 손질했다. 머리를 떼고, 적당 적당 양념을 한다. 여기에 마늘도 갈아서 넣고 해도 맛이 있으려나? 그러나 양념이 열일을 하는 요리도 아닌 탓에, 양념은 대충이다. 그리고 나는 숯불에 불을 붙였다.
그것은 석쇠 구이 쭈꾸미. 나는 극혐하는 요리이고 바깥양반이 최애하는 요리다. 내 견지에서 석쇠구이는 쭈꾸미를 굉장히 맛없게 먹는 요리다. "쫄아붙기 때문"이다. 두족류 연체동물인 쭈꾸미는, 데치는 형식으로 짧게 조리하는 것 말고는 어지간해선 본래의 그 식감이나 수분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숯불에 굽는다면 다른, 저온조리 장기조리가 가능한 식재료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간 쭈꾸미로 할 수 있는 음식은 애지간한 건 다 한 판이다. 쭈꾸미 매운탕...은 엄마가 꽃게탕에 쭈꾸미를 넣어주셔서 실패. 쭈꾸미 국수...는 지난번에 쭈꾸미 파스타를 했었지 아마? 쭈꾸미 케이크라거나 쭈꾸미김치를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다. 내 견지에선 우리 집 주방에서, 나올 쭈꾸미 요리는 다 나온 판인 것이다. 마침 봄 바람도 불어오고, 일요일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이런 날은, 이런 날은...
뭐어. 쭈꾸미 석쇠구이도 꽤 괜찮지 않아? 하는 마음인 것이다. 몇 해 전에 사두었던 미니 숯불구이용 화로. 이거 꽤나 쓸모없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쓰기로 한다. 별로 쓸데없었던 야자숯도 아낌없이 부어버렸다. 강한 화력으로 빠르게 구워버릴 테다!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무리 화력이 강해도 그래봐야 숯인지라, 양념을 입힌 녀석이 빠르게 익어주진 않을 것이다.
나는 숯불로 석쇠구이를 하는 한편, 토치로 겉을 더 그을러주었다. 빨리 빨리. 이래도 늦다. 뒷베란다에 혼자 서서 하는 이 고난의 시간.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메뉴일지라도 바깥양반이 한끼 맛나게 뚝딱 할 수 있다면, 어차피 이래놓고 한끼 해치우면 한 몇년은 안해도 되는 요리다. 혹시 뭐, 태안 쪽에 놀러가면 모를까. 아 머리는 따로 떼어서 프라이팬에 굽기로 했다. 석쇠구이로 하기엔 속까지 익으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고, 그 안에도 물로 가득차 있어 숯에서 굽다간, 아마도 대참사다.
"오늘 비밀요리야."
"뭐죠?"
"마누라가 제일 좋아하는 거."
"응 석쇠구인가. 그건가."
"그래."
한참 쭈꾸미를 굽고 있으랴, 뒤집어주랴, 상도 차리랴 바쁜데 바깥양반이 아기랑 자고 있다가 주방으로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말을 던지며 나는 상을 차려낸다. 맛깔지게 불향 가득, 쭈꾸미 석쇠구이까지 먹어치우고 나면, 쭈꾸미는 이제 대~강 예닐곱 마리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