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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남편상

남편 오브 더 이어

by 공존

월요일부터 나는 많이 아팠다. 주말에 가족모임이 있어 멀리 다녀왔는데, 또 거기서 토요일 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깨어있었던 탓이다. 가뜩이나 너덜너덜한 몸에, 수면부족과 알콜이 끼얹어지니 견뎌내지 못하고, 사고는 터졌다. 월요일 아침 다섯시에 일찍 눈이 떠졌는데 몸이 으슬으슬 심하니 춥고 머리가 띵하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올것이 왔구나, 즉시 열을 재보았다. 38도.


망했군. 완전히 망했군. 아침 다섯시 십분 무렵 낭패감을 맛보며 나는 뜨거운 물을 끓여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코로나일까. 어제 만났던 사람들은 어쩌지. 오한에 발열에 두통...완벽한 코로나의 증상이야. 잠시 뒤 바깥양반이 깨어났고, 나는 바깥양반에게 코로나가 의심된다고 말하고는 9시,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와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몸살인데요?"

"앵."


진짜요? 네 진짜요. 음성이예요. 어쩌면, 날 진단하신 간호사님도, 의사선생님도, 처방받은 타이레놀을 내어주신 약사님도 한결같이 모두 음성이라고 하는 것이냐. 아 당연히 기침은 없는데 숨이 잘 안쉬어진다니까요. 그건 원래 아프긴 했었는데요. 아 몸살이예요. 하 참. 나는 집에 와서 타이레올의 힘을 빌어 낮잠을 한번 자고, 코를 한번 더 쑤신 뒤, 출근을 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음성이라니 출근을 해서 수업을 해야지. 나 말고 열세명의 교사가 확진으로 학교를 비워, 학교에 수업 공백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거기에 올려지기를, 교감선생님과의 합의 하에 거부했고 다음날도, 다음날도, 코를 찌르고 찌르고 또 찔러도 음성. 음성. 음성만 나오길 반복했다.


절대로 코로나에 걸리면 안되지만, 코로나에 걸려서 쉬고 싶기도 했다. 대학원 과제들 때문이다. 듣지 않아도 되는 학점까지 추가 신청해서 직업과 병행해서 세개의 대학원 수업을 듣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다. 38도까지 열이 올랐다가 타이레놀 한방에 정상으로 돌아온 그날로부터 이틀 뒤에 내 발제 발표가 있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발제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텍스트를 읽어야했기에, 그런데 그걸 심지어 혼자 하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화요일, 조원과 서로의 발표자료를 교차검토하자는 약조를 지키기 위하여 화요일 새벽을 지새웠다. 제발 코로나에 걸렸기를 바라면서, 제발 여기서 한 숨 쉬어가고 싶다고 한탄하면서.


그러나, 또 또 내 코는 음성의 싸늘한 긍정성만을 검증하고 또 다시 멀쩡함의 영역으로 돌아가버렸다. 쌓여가는 피로와 무관하게도, 발표 수업도 그리고 다른 수업들도 날 통과하였고 그리고 주말은 왔다. 그리고 나의 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체력에도 불구하고, 하동 여행의 일정은 찾아왔다.


바깥양반과 사전 합의 하에, 머리를 먼저 감고 나온 바깥양반이 자고 있는 내 무릎을 두드린 것은 새벽 딱 네시반. 나는 벌떡 일어나,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여행을 위해 지난밤에 설거지며 쓰레기처리며, 제법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잠에 든 것은 새벽 한시 무렵. 세시간반이나 잤구나. 그래 그래 다행이다. 이제 나는 잠 든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운전에 쏟아야 한다. 그것도 새벽에. 그것도 하동까지. 그것도 아이와 짐을 가득 차에 싣고서.


12월부터 이어진 육아와 대학원 과제, 업무의 콜라보 아래 나의 수면 패턴은 세 시간에서 네 시간으로 적응이 되어 있다. 세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도, 졸리지 않다. 뇌가 빠르게 활동성을 회복하여 뭐든 하도록 허락한다. 대신에 몸이 아프다. 피로와 수면부족이 겹친 끝에, 새우잠을 자다가 아이의 울음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예상치 못한 일로든 깨어났을 때, 순간적으로 심장의 박동이 제법 요란스럽게 뇌리에 울린다. 이제 스스로를 아껴야 할 나이인 게지. 열아홉, 스물 네살 때 각기 독서실에서 또 군대에서 하루 두세시간의 수면으로 버티며 글과 사투를 벌였던 날들이 야속하다. 그때처럼 뭔가에 열심히 살 수는 있지만, 그때처럼은 몸이 견디질 못하는, 마흔이라는 고비에 도달해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아이를 집에서 매일 홀로 보는 바깥양반, 아니 아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는 양보나 망설임은 크게 일어서들지 않는다. 견디어 버티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마흔에 열아홉처럼, 스물네살처럼 산다는 것이, 가당한 일은 아닐지라도 가능하게 실제로 펼쳐지고는 있다. 어리고 젊을 때 했던 일이라면 장성하고 또 늙어서도 못할 일은 또 아닌 게다. 오히려 그것을 굳이 하지 않으려는 관성, 이제 내가 할 고생은 끝났으리라는 성마른 조바심이 삶을, 고달프게 하는 것 이상으로 갉아먹는 것은 아닐까.


닦으면 닦는대로 옥은 빛나고, 내가 웃으면 웃는대로 아이는 웃는다. 충분히 나는 가족과의 시간을,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포기하고 있고, 미뤄두고 있고, 그것을 보상하는 주말의 짧은 여가에야, 내 몸이 조금 고달펐든, 또 다음주에 낼 과제가 주말 사이에 밀어닥치든, 선후의 우선순위를 뒤바꿀 일은 아니다. 나는 그래서 다섯시간, 하동까지 내달렸고 우리는 지난주 절정을 넘기고 이제 꽃눈처럼 흩뿌려지는 벚꽃잎 아래 봄을 맞았다. 아이의 첫 봄. 아이의 첫 벚꽃.

모든 살아있는 시간은 처음들의 결합이다. 우리의 모든 현재가 예비 없는 발생들이다. 그것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내년의 벚꽃에는 아이는 18개월의 소아가 되어 있을 터이고 6개월의 유아로서 맞는 봄은 이미 스러진 뒤다. 아이의 매 순간, 매 처음 시간들을 의미있는 것으로 엮어내는 것에는 누구도 아낌도 망설임도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오늘의 하동까지의 고행은 아마도 그런 일이다. 다행히 일주일만에 하동은 한산해졌고 우리는 충분히, 아이에게 푸른 하늘, 연둣빛 잎새, 흰 꽃잎과 붉은 꽃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


늘상 집에서만 살아야 하는, 그리고 이제 막 겨울을 난 아이에게 탁 트인 푸른 하늘도, 아마도 처음. 아이가 햇살을 가득 머금길, 그래서 좁은 방에 갇힌 그 작은 팔과 다리도 하늘에 닿을 정도로 쭉 뻗길.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그 하루를 견뎠다. 아니 채워나갔다. 지리산 이슬을 맞고 자란 차잎으로 덖은 녹차도, 아이의 머릿결을 쓰다듬는 따스한 바람과 함께 은은히 봄을 일깨운다.

그리고 나서 숙소에 왔는데, 짐을 부리고 나니 남도의 햇살에 몸은, 땀을 비오듯 흘린다. 바로 샤워부터 하고 나서 아이를 끼고 한숨 잤다. 하루 종일 차와 부모 품에 갇혀있던 동백이는 마음껏 뒤집고 놀다가 아빠 겨드랑이 아래에서 얌전히 짧은 낮잠을, 아빠와 함께 잤다.


그리고 나서 해가 저물기 전에 몸을 일으켜, 내 눈에 띈 것은 숙소에 비치된 문방사우. 아니, 문방사우를, 게다가 연적에 벼루에 먹까지? 나는, 이부자리에 누운 바깥양반과 아이를 슥 보고, 비로소 나 혼자만의 시간을 짧게나마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연전에 물을 담았다. 그리고 작은 먹을 조심스레 갈았다.


붓이 좋지 않다. 커피 포트를 25만원짜리를 둘 것이라면 이거, 2500원이나 할까 싶은 세필 붓이나 좀 부지런히 바꿔놓을 것이지. 붓이 낡고 털이 비틀어져있어, 단 한 획도 마음대로 긋기 어렵다. 그러나 딱 이정도가 괜찮다. 너무 붓이 좋으면 욕심이 났을 것이고, 그것은 나의 본래의 발산하고자 하는 그 감정을 오히려 내리누를 것이고, 그럼 나는,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하기보단 붓의 정련됨을 위해 획을 긋게 될 것이다. 대강 엉망인 뭇이라면, 도구에 거리낌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하다. 나는 나에게 올해의 남편상을 시상한다.


이제 4월의 둘째 주이지만, 지난 약 2주간의 경과를 돌아보건대 오늘처럼은 다시 열심히 살 기회는 찾아오지도 않는다. 나는 많은 것을 이겨냈다. 월요일부터 찾아든 고열의 몸살을, 그 뒤에 이어진 세개의 대학원 수업과, 그 중 하나인 발제 발표를, 그리고 금요일까지 이어진 하루 하루의 학교 일과, 업무와 수업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고 하루 하루 많은 것을을, 열심히 했다.


이렇게 바쁜 날이, 이렇게 몸이 아픈 때가 함께 오는 일이 또 있기도 어려울 것이다. 처방받은 약을 목으로 넘긴 일이 최근 10년 간 딱 두번째다. 앞으로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고작 몸살 따위에 몸의 통제권을 넘겨주지 않으리. 그러므로 앞으로 이렇게 아픈 날은 없을 것이기에, 적어도 올해는, 오늘 하루보다 열심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딱 이번 한주만 바쁨과 아픔으로 인해 하루에 한 세번정도,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니냐 걱정을 하게 되긴 했지만, 괜찮다. 10주만 더 잘 견디면 종강. 그리고 학교도 방학이다. 당장 헬스장에 등록하기로 했다. 나는 쓰러지지 않을, 것.


그렇게, 앞날에 대한 공포는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준비로 충분히 메워지고 있는, 오늘의 삶. 하루 하루의 소중함 속에 나와 아내, 그리고 딸 아이 우리 셋은 다음날 아침, 느긋하게 툇마루에 누워서 봄바람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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