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이유식
얼마전에 나는,
- 바깥양반, 이거 어때. 반찬통 이런 거 해놓으면 꺼내먹기 쉽잖아.
라는 말을 바깥양반에게 꺼냈고, 당연히 바깥양반은
- 좋아 ㅋㅋㅋ
라는 답문을 주었다.
이 반찬통의 경우,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면, 지금까지 바깥양반에게 있어서 집밥이란 꼬박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이었던 게고, 자기가 이런 저런 찬거리를 탕탕 꺼내먹는 것은, 워낙에 문외한이었다는 배경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곱게 자란 것은 그 개인의 흠결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배경적 요소 환경적 요소일 뿐이고, 아이를 낳고 나서 나름 빡세게 하루 종일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바깥양반이 이제 하루 세끼씩 꼬박 집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칭찬할만한 일이다. 그런 것조차 싫어서 끼니마다 배달음식을 먹는 사람도 흔한 세상이니 말이다.
즉슨, 바깥양반이 아이와 독박육아를 하는 동안 집밥이 최우선의 옵션이 되어 있다는, 지당한 상황일 따름이고 그러니 나는 이 바깥양반의 홀로밥상을 조금 더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여 이런 저런 밑반찬을 바깥양반이 마트에 갈 때마다 사는 것을 보고, 아 이제 밑반찬도 챙겨줘야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끼니마다 집밥을 먹으니 이제 하루에 한번씩은 새밥은 해서 앉혀놔야겠다는 생각. 이런 마음가짐도 하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바깥양반이 이것저것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수고 정도는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반찬통을 사서 아침에 챙겨주고 나는 출근하기로, 하였다. 물론 그게 내 아침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지각을 유발하겠지만.
하여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유식을 먼저 만들었다. 하는김이다. 일정이 있는 주말에는 바깥양반이 따로 주문한 이유식을 먹였고, 월요일쯤에는 내가 만들어두기로 했다. 오늘의 이유식은 브로컬리 이유식. 오트밀, 감자, 오이 등의 이유식은 알러지 반응이 없다. 아침에 이유식까지 만들 여유가 있도록 일찍 일어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 아, 오늘은 마침 아이 예방접종이 있어서 오전에 반차를 썼다.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마치고 출근을 하기로.
푹 삶은 브로컬리를 갈아서 채에 거른다. 아이 이유식 만들 목적으로 별도로 제법 식기와 조리도구를 구매했다. 이유식이 아니라면 이런 작은 뜰채는 살 일이 없었겠지만 이유식 만들 양으로는 딱이다. 브로콜리는 유기농으로 사서(물론 바깥양반의 성화) 푹 삶았다. 풋내가 나진 않겠지. 브로콜리 즙에 쌀가구를 넣고 한동안 저어, 이유식을 만든다. 이유식 용기에 담아낸 뒤에 남은 죽을, 설거지 하기 전에 찍어먹어보니, 맛있다. 달고 꽤나 풍미가 있다. 아이가 잘 먹어주면 좋겠구만.
이제 다음의 내가 할 일은 바깥양반을 위한 밑반찬을 만드는 것.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스팸을 실파와 함께 계란에 부쳐놓기로 한다. 간단식이다. 그러나 효과는 만점이지.
바깥양반이 새밥을 원하게 되는 경위가 꽤나 재미있다. 원래 바깥양반은 휴직 전에는 나와 아침을 먹고, 점심을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저녁은 일주일에 세번 가량은 외식을 했으니, 그리 "밥"에 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저녁은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해주는데다, 출근 때문에 정신이 없어 아침은 잠에 쏟아지는 가운데 그냥 씹어삼키는 수준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헌밥이든 찬밥이든 닥치지 않고 차려서 바깥양반에게 먹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3일 지난 밥도, 말라비틀어져서 볶음밥으로 겨우 살려낸 밥도 우리의 식탁에 올랐다.
그것이야, 아침에 배만 대강 채우고 출근하기 위해 바쁘던 시절에나 허용되는 일이지 이제는 하루 세끼 꼬박 집에서 먹어야 하는 처지다. 그리고 그중 한두끼는 내가 없이 혼자 꺼내먹어야 한다. 게다가 갓난아이 때문에 외식은 어렵고 배달음식은, 시켜먹느니 남편이 해주는 밥을 기다리는 게 훨씬 낫다. 그러니 이, 집밥에 대한 애착과 함께 새밥에 대한 의지도 샘솟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바깥양반의 변모를 환영하며, 오늘도 새밥을 하고, 더불어 반찬을, 제법 해둔다.
햄과 실파가 들어간 계란부침이 지글지글, 그리고 냉장고에서 장조림을 꺼낸다. 이 장조림은 바깥양반의 시어머니게서 바깥양반 드시라고 만들어주신 것인데, 거기에 내가 메추리알만 사서 다시 졸였다. 바깥양반에겐 밥도둑이다. 그리고 주말 직전에 만든 김치볶음을 함께 반찬통에. 그리고 낙지젓갈을 가운데.
실파스팸계란부침은 반찬통에 들어갈만큼만 넣어놓고 나머지는 몽땅 수납해서 냉장고에 넣는다. 아침에는 다른 반찬이 있어, 굳이 일부러 만들어둔 밑반찬을 지금 아침 밥상에 소진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반찬통을 만족스럽게 채워넣고 나서, 나는 이제 아침밥상을 다시 차린다.
아이의 이유식, 아내, 아니 바깥양반의 점심반찬통까지 챙겨야 하는 내 일과가, 기타의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부박하고 힘에는 겹지만 어찌하리.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듯, 아내는 집밥의 밥상을 알아가고 나는, 그들과함께하는 일상을 알아간다. 먼 미래의 어떤 다른 나의 개별적인 성공이 있을 수 있고, 지금 당장 해야 할 급한 일들도 있긴 하지만, 오늘 가족들이 먹을 한끼. 이게 중하지. 다행히 이번주엔 장모님도 집에 오셔서 내 공부할 시간은 조금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