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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생애 처음으로 생일상을 차렸다.

내 생일

by 공존

어째서인지, 이번 내 생일을 맞이해서는 몇달 전부터 아내는, 이번엔 내가 오빠 생일상 제대로 차릴 거라며 다짐 또 다짐을 했다. 나는 늘 그렇듯 생일상을 내가 받아먹어야 맛인 것은 아니니, 구태여 개의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 다짐을 꺾을 이유는 없다. 5월, 6월, 시간은 지나 7월이 되었고 아내와 생일 전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와서 마트에 들러 함께 장을 보았다. 국거리 한우 조금, 그리고 초당두부 한 모. 그것이 우리가 보아 온 장의 전부다.


아내는 평생에 요리라고는 해본 일이 없다. 요즘 세상에 흔한 일이다. 아내의 주변을 보아도 절반 가량은 통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는 집들이 많으니 아마 우리 다음 세대에 그런 경향은 심해질 것이다. 공산품만 아웃소싱되는 것이 아니라 식생활의 아웃소싱이니, 나는 아기에게 요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가르친다 한들 아이는 배우려 할까 의문이다. 대개는 이런 차이는 천성에서 오는데, 나는 젖먹이 시절부터 엄마의 부엌을 기웃거렸고 그게 유독 심했던 모양인지 엄마는, 내가 부엌에 고개를 들이밀 때마다 "고추 떨어져!"하며 소리를 치셨다. 물론 그런 내 흥미와 호기심이 내 식생활을 윤택하게 해주었을 뿐더러, 다른 영역에까지 전이되어 나름 살뜰하게 바쁜 삶을 누리고 있으니 기꺼운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나와 같은 흥미를 품지 않았던 아내를 책하거나, 아이가 나중에 관심이 없어한다고 하여 그것을 아쉬워할 노릇은 아니다.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는 노릇이다. 물론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 체력이 조금 딸리셔서 그렇지.

하여, 미역국은 보글보글 끓는다. 내가 아이를 보는 동안 아내는 미리, 하루 전날 생일상 준비를 하기로 했다. 마침 아이를 봐주기 위해 와주신 장모님이 뒤에서 이리해라 저리해라 조언을 해주시고, 또 아내가 레시피를 검색해서 하고 있으니 탈이 날 이유는 없다. 원체 쉬운 요리 아닌가. 들기름에 미역과 고기를 들들 볶다가 마늘 넣고 간장 넣고 소금 넣고 몇시간 푹 끓이면 된다. 이토록 쉬운 요리가, 그 맛이 좋고 몸에도 좋으며,생일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자주 먹지 않게 되는 이유는, 푹 끓이지 못하면 맛이 없는 음식이기 때문인 건 아닐까.


우리집의 경우 손이 크신 엄마가 국을 한솥 만들어두시면 내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그것을 먹어치우는 식이다. 누나는 입이 짧고, 아버지는 바쁘시니 내가 대부분의 음식들을 처리했다. 먹어치우거나, 아니면 만들어놓거나.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미역국을 두번, 세번 끓여서 먹다보니 3,4일쯤 미역국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아이가, 한창 TV도 보고 게임도 하고 하느라 국이 졸아붙는 것을 몰랐겠지. 그래서 물을 더 부어 다시 끓여놓고, 또 놀다가 깜빡 잊고 뒤늦게 불을 끄기도 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푹 고아진 진국 미역국은 우리 주방에서 완성되었다(앞절에 부엌이라고 칭하고 이 절에 주방이라고 칭한 것은, 실제로 집이 옮겨지고 삶의 장이 바뀐 탓이다). 그 푹 고아진 미역국에, 쇠고기육즙까지 살살 녹아있었던 것이다. 다만 요즘의 바쁜 세태에, 그리고 음식을 한솥씩 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그 한솥을 다 먹어치우겠다는 아들자식놈도 없는 시국에 미역국이 진국으로 우러나와질 일이 없는 것이고, 그에 따라 한소끔 끓인, 하루 이틀 사이에 소진되는 미역국들만 먹게되는 것은 아닐까.


하여 나는 아내가 완성한 미역국을 몇시간 더 끓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가 주방에서 물러난 다음의 일이고, 아내는 미역국에 머물지 않고 하나를 더 하겠다고 아직 주방을 지키고 있다. 아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두부조림을 할 예정이다.


"자 이거 양파. 대파. 그리고 또...고추장이랑 고춧가루면 되지? 간장 설탕 여기 앞에 있고."

"응. 맛술?"

"맛술은 없어도 돼."

"잠깐. 아 이것도 마늘 들어가네. 마늘 또 빻아야 돼?"

"또 빻기 싫으면 빼. 후추가루 조금만 더 넣어."


아이를 안은채로 나는 냉장고로 가, 한창 미역국을 제조 중인 아내의 등 뒤 식탁에 이것저것 재료를 올려준다. 아내는 미역을 볶다가 또 폰을 들고 두부조림 레시피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 역시 레시피는 백종원 레시피인 게야. 친절하게 물의 양을 종이컵 2/3로 알려주고 있어서 초리 초보인 아내가 따라하기에 좋게 되어 있다.

의외로 들기름에 두부를 잘 부쳤다. 나는 일체 개입하지 않았고, 장모님께도 가셔서 군소리 말고 아이나 봐주시라 했다. 나는 우리집 내에서 많이 극복한 편이지만, 장모님께 아내는 영영 품 안의 자식이다. 결혼하고 5년 내내 품 안의 자식이라 이게 여기지 말아달라 말씀드리고는 있지만 그게 어디 쉽나.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편 생일상을 차린다는 딸네미에게. 그러나 잔소리는 잔소리고, 부쳐지는 두부는 부쳐지는 두부다. 잔소리는 두부를 뒤집지 못한다. 아내는 두부를 제대로 뒤집었고, 국산 들깨로 뽑혀진 들기름의 향과 두부의 향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음을...


"아 이건 못하겠어. 오빠 도와줘."

"......"

"양파랑 대파 좀 썰어줘."

"음..."


먼저 아내와 장모님, 아기를 올려보내고 주차를 하고 집에 올라오니, 아내가 내게 한 첫마디는 "오빠 빻은 말을 어딨어?"였다. 없지. 왜 없어? 빻은 마늘 안쓰고 마늘을 빻아서 쓰지. 어떻게? 자 여기. 그리고 여기. 빻아 이제. 여기까지가 아내의 요리 및 식재료 관리에 대한 지식이었다. 나는 빻은 마늘은 아예 쓰지 않는데, 그것은 엄마의 영재교육이 주효했다. 마늘 빻기는 고추가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한 여섯살 때부터였던가, 엄마가 내게 마늘 빻기를 전담시킨 것이다. 그것도 계속. 그래서 여덟살 때였던가, 에는, 생강도 빻는 요리 꿈나무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막상 그래놓고 엄마는 나중이 되시니 그냥 빻은 마늘을 가져가다가 얼려놓고 조금씩 칼로 쪼개서 쓰신다. 마늘 빻기는 어려운 일인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우얗든둥 내가 꺼내준 마늘절구에 얼린 마늘은 들어가 아내의 손에 빵빵 빻아졌다. 원래 얼린 마늘은 잘 안빻아지기 때문에 칼집을 내서 빻아주는 게 좋은데...그걸 알려주지 않아도 힘으로 어찌 잘 빻아낸 모양.


마늘 이야기가 나온 김에, 통마늘을 사다가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둘이서 마늘을 까는 상상을 종종 해보지만 그런 일은 아내에게 가능하지 않겠지. 지금까진 나도 바빠서 하지 못하고 있다.

아침. 밥상은 완성되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이미 "일어났어? 밥 먹어"같은 장면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분유를 먼저 먹이고, 조금 놀아준 뒤에 아내를 깨웠다. 그리고 국그릇을 꺼낸다거나, 각종 반찬그릇을 내는 것까지가 내 몫이었다. 아내 생일에 이정도 일은 시켜봐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만 그걸 확인하려면 몇개월을 기다려봐야겠다. 이번에 해봤으니 좀 달라진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 동백아 아빠- 생신 축하합니다 해야지."


그리고 좀 뜻밖의 선물이 생일상에 더해졌다. 아침부터 밥상은 차리다 말고 뭘 복닥거리시더니, 저걸 꺼내는 거였구나. 아이는 이제 9개월을 채웠다. 원래 나면서부터 내 유전적 영향으로, 얼굴이 영글어서 나온 아이인데 짓는 표정하며, 9개월 짜리 아이 같지 않다. 선물. 이보다 나은 선물은 또 없겠지.


"장난치지 말고, 빨리 선물 줘 애가 무슨 선물이야. 아 빨랑 줘 선물."

"오빠 5년치 선물 댕겨받았잖아 TV 옆에(왕 비싼 게임기 있음)."

"...쳇."

"오 맛있다. 두부조림 먹어봐 오빠. 반찬가게에서 파는 맛이야."

"...왜 비교대상이 반찬가게야 마누라야. 맛있는 음식이라면 반찬가게 말고 다른 거랑 비교를 해야지."

"미역국은 어때? 엄청 싱겁지 않아?"

"음...간이 안된 거랑 맛이 없는 거랑은 달라서. 간은 안됐는데 맛이 있네."


그 말 그대로, 간이 되어있지 않지만 오래 끓여 쇠고기와 미역의 맛이 잘 우러난, 맛있는 미역국이다. 단촐한 생일상이지만 이 이상 무얼 또 바랄까. 마흔살이 불혹이라니, 다른 생일상에 미혹되진 않으련다. 아내가 처음으로 끓인 미역국, 처음으로 해본 두부조림, 결혼 후 처음 지어본 밥까지 하여 행복한 생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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