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미용실은 오늘도 친절

머리도 잘 잘라요

by 공존


"아니 왜 그러게 머리를 건드려서."

"아 몰랐지 이렇게 잘라줄 줄은."


쓸데 없는 짓으로 아내는 아이의 머리 모양을 망치셨다. 자기 머리 염색을 하러 가는 길에 장모님과 아기도 함께 데리고 가 저녁도 사먹고 아내가 염색할 동안에는 마트 구경을 좀 한 모양. 그런데, 내가 시간을 맞춰 셋을 데리러 가니 응? 머리가 잘려있네? 그런데 응? 삐뚤하네?

무슨 일인가. 왠 변인가.


"나 염색하고 애 왔길래, 조금 잘라달라고 했어 앞머리만."

"아니 내가 자르고 일주일 밖에 안됐잖아. 이거 균형 안맞는 건 내가 다듬으면 되는데."

"아 자꾸 오빠가 미루니까 내가 미용사한테 부탁한 거잖아."

"아니 그래도 머리를...이렇게 대충 잘라? 공짜로 했어?"

"응 염색해준 사람한테 부탁한 거라 돈은 안받았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삐뚤한데다 가지런하지도 않다. 너무하시잖아요!


물론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 머리 모양 좀 망치는 일, 오케이. 그것도 추억인지라 나도, 아이가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바람에 머리를 잘못 잘랐을 때의 사진을 즐겁게 보고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잘못해서 웃기고 추억이고 즐거운 거지, 이건 남이, 내 즐거움을 빼앗아 간 거잖아. 남이, 내 작품에 덧칠을 한 거잖아.


"아 안되겠다. 집 가서 내가 다듬을 게 다시. 그 사람 웃기네. 아무리 공짜로 해준 거라고 해도 빗질도 안해주고 이렇게 해?"

"애가 하도 난리 치니까, 내가 안고 후루룩 잘랐어."

"그러니까 시키지를 말았어야지."

"아 알았어. 가서 잘라줘."

"응."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줄곧 머리 잘라주기와 손발톱 손질을 해주고 있다. 신기하게도 두 일 모두 다 아이가 잠들어있지 않은 맨정신에 늘 하는데 그 팔팔하고 고집 센 아이가, 그때만은 얌전히 있어주곤 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런 법은 없기 때문에 한번씩 망하는 일도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아이의 머리 모양의 통일성 정도는 1년 가까이 유지되어 왔다. 배냇머리 그대로 기른 머리가 이제는 어깨뼈 아래까지 닿았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갈라낸 앞머리를 눈썹 위 2cm 정도를 두고 자르는 것.


처음엔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불과 6개월 무렵인지라, 가만히 아빠의 손길에 긴장한 눈으로 생전 처음 경험하는 미용을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아이가 재기발랄함을 뽐내는 12개월 이후부턴 한참 이게 어려웠다. 가위 들이대면 가위를 잡지, 앞머리에 가위를 대면 머리를 돌리지...그래서 그때 사진들 중엔 머리가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눈썹을 더우면 사진이 갑갑하게 나오므로 자주 잘라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중 한번은, 최대한 빙구미를 내고 싶어서 이마 위로 한 4cm 이상 높이 앞머리를 만들어줬더니, 가는 곳마다 누가 머리를 잘랐냐며, 심지어는, "이쪽 저쪽 맞추다보니까 여기까지 올라갔어?" 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아니요! 순수 제가 의도한 그대로 머리 나온 거거등여!?


나는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군대에서도 깍새 노릇을 제법 잘 했다. 행정병이라 찍새 깍새 모두 면제였음에도, GOP에 올라가서 중대장 수행병 노릇을 하니, 휴가 나오는 병사들마다 중대장님은 "쟤 머리 좀 잘라서 보내."라며 내게 보냈다. 짬이 찰대로 찬 나는 그 말을 또 곧이 곧대로 듣진 않았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깔끔하게, 위와 앞은 최대한 남겨서 잘라주었다. 어쨌든 모자로 눌러서 짧게 보인 뒤에 다시 검사를 받으니, 대강 휴가를 보내줄 순 있었다. 그때 한달 아래 후임이 "생각보다 잘 자릅니다?" 했던 일도 있다.


그런 나의 손으로 딸네미의 머리를 잘라주는, 전속 미용사 노릇, 그리고 손톱을 깎아주는 일은, 퍽 소중한 즐거움이다. 누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오늘은 머리를 잘라주는 날이었다. 더불어 손톱도 잘라주었다. 우선 아이 욕조에 물을 받은 뒤 아이를 벗겨 담그고, 가위를 가져와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머리 자른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럼 이제 20개월을 코 앞에 둔 아이는 머리 자르는 일이 아빠의 손을 오래 타는 일이라 좋아라 하며 자기 머리를 매만진다. 귀여워!


빗으로 가지런히 머리를 빗어 내린 뒤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긴 머리를 건져올려 집개 두개, 양 옆에 꽂으면, 이제 숱치는 가위로 슥슥 앞머리만 잘라내면 된다. 놀랍도록 쉽고 재미난 활동이다. 아니 이걸, 왜 아내는 못하겠다는 거야.


"아쁘아 아빠아."

"응 동백아. 좋아?"

"아빠아 아빠아."


딸네미는, 이제 미용을 즐기는 단계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다 덮은 머리카락 아래로 빙글빙글 미소 지으며 나를 부른다. 나는 딸 아이의 이런 귀여운 모습에, 이 광경을 오래 오래 보고 싶지만 아이 눈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최대한 빨리 머리 자르기를 완수한다. 비뚤지도 않고 머리가 삐져나오지도 않을, 오늘의 완성작.


그런 다음엔 손톱을 자르기 시작한다. 목욕과 머리, 손톱을 모두 한꺼번에 해결하니 나도 좋고 아이도 오래 푹 몸을 담가서 좋고. 물론 이래봐야 다 합쳐서 5분 내외의 시간일 뿐이다.


그렇게 모두 끝났다. 오늘의 아빠 미용실도 친절 그 잡채. 아이는 말끔한 모습으로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아낸 뒤 다시 욕실 밖으로, 자기의 놀이터로 나온다.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고 손톱을 자른다는 최상의 즐길거리를 아빠에게 흠벅 안긴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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