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위경련이 일어났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일주일 내내 먹은 탓일까? 태국의 음식은 맵고 짜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맛있다. 몹시! 그게 매력이라고. 참나! 어쨌든 배가 아파 낑낑대고 있는데 글쎄 태화 코치가 어느새 물수건을 따끈히 덥혀와서 배에 올려주었다. 세상에 친절도 하지. 그 덕에 멋대로 뒤틀려지고 있던 위가 따뜻한 기운에 잠시 멈칫했다.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어도 괜찮아.”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몹시 감동했다.
그간 치앙마이에 며칠이고 부대끼고 있었던 나의 오늘과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태화 코치의 오늘은 분명 다름이 틀림없다. 자고로 여행의 첫날은 즐거운 일이 가득해야 한다. 아무리 위장이 꼬여도 첫날은 맛있는 것을 먹고 신나게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놀랍도록 다정한 발언이다. 이런 종류의 발언을 진심이라고 믿을수록 내 인생이 편하다. 그가 덥혀준 물수건이 내 위를 살살 달래고 있었다.
아침부터 눈치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던 위가 성의에 감복이라도 한 듯 조금 차분해져서 걸을 수 있을 만큼이 되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놀아야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우리는 ‘*센트럴 깟 수언깨우’라는 쇼핑센터로 쇼핑을 하러 갔다. 이토록 중대한 첫날에 쇼핑센터에 갈 만큼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둘 중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내일 정글 플라이트* 짚라인을 타려면 적합한 신발이 필요했기 때문! 센트럴 깟 수언깨우는 작고 서민적인 쇼핑센터라고 구글 지도 설명란에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외국에서는 서민적인 곳이야 말로 가장 이국적인 곳이라는 것을 몇 년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바가 있다.
쇼핑몰을 향해 태화 코치와 손을 잡고 걸었다. 움켜잡은 손에 땀이 날랑말랑 하는 순간 공사장 2층에 서있던 인부 몇몇이 바닥으로 건축 자재를 던지려 했다. 태화 코치는 얼른 나를 자기 팔 아래로 숨겨주었다. 아! 마치 새로운 위를 얻은 기분이다. 참으로 믿음직한 남자가 아닌가!
건축자재에 얻어맞을지도 모르는 험난한 길을 걸어 기어이 쇼핑센터에 도착했다. 나는 사실 속으로는 샌들이 사고 싶었다. 그러나 태화 코치는 발가락이 다치면 안 되니까 앞이 막힌 운동화를 사야 한다고 했다. 과연 짚라인을 타다가 발가락이 다칠 일이 있을까? 싶지만 발가락 따위 다칠 일 없으니 아무거나 사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남편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태화 코치는 나의 운동화를 세심히 골라주었다. 나는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아닌 것 같아서 꽤 까다롭게 구는 중이었다. 그런 내게 핀잔을 주긴커녕 한술 더 떠서 요리조리 예리하게 봐주었다. 그러고 보면 까다로운 남자도 괜찮은 것 같다? 좋은 감정이 생각과 판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더니 난데없이 까다로운 남자가 한 표 얻는 순간이었다. 까다로운(안목 있는) 쇼핑 끝에 결국 우리는 하얗고 예쁜 운동화를 발견했다. 태화 코치는 자기 운동화를 사는 것도 아닌데 나보다 더 좋아했다. 그는 다정하고 믿음직하고 섬세하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내고 나니 위가 씻은 듯이 치유되었다. 쇼핑과 치유의 논리적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으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만족스러운 쇼핑을 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약 20분쯤 걸리는 *반캉왓 마켓에 갔다. 그곳은 어느 예술가가 조성한 마을로 예쁘고 질 좋은 물건들이 가득한 곳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라탄 쇼핑을 위해서였다.
태화 코치는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여자의 쇼핑을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성실히 참여해준다. 때로는 쇼핑 파트너로 때로는 짐꾼으로, 때로는 개그맨 역할도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같이 맛있게 먹어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재미있어해 준다. 지금껏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린 적이 없다. 그는 다정하고 믿음직스럽고 섬세하면서도 훌륭한 짐꾼(!)이다.
7월 말의 치앙마이는 우기여서 덥고 끈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화 코치는 하루 종일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자기 노트북과 내 노트북이 담긴 5킬로쯤 되는 가방을 메고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태화 코치는 도로에선 꼭 안쪽으로 걷게 해 주는데 도로의 방향이 바뀌어 바깥쪽에 서게 되면 잡은 손을 한 바퀴 빙 돌려 안쪽에 서게 한다. 그건 마치 우리 둘이 거리에서 탱고 춤을 추는 것 같다. 그는 참 다정하고 믿음직스럽고 섬세하면서도 훌륭한 짐꾼이자 멋진 파트너이다.
태화 코치는 마야 몰 지하에 있는 약국에서 내 위경련 약을 사주고 *Think Park를 구경하고 싶은 나를 데리고 나와 산책시켜주었다. (가끔 그가 날 강아지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 내가 침대에 누워서 쉬는 동안 그는 세탁해 놓은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나와 웃기는 흉내를 내면서 놀아주었다. 그렇게 마구 웃다 보니 아침에 아팠던 것이 마치 꿈같다. 그런 적이 있었단 말이야? 우와 그러고 보니 그는 진짜 엄청 다정한 남자다! 최고의 여행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