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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Jul 15. 2023

어버이날 어버이 되다

2023년 5월 8일

6주 전이지만 알게 된 건 오늘이다. 아내는 전혀 예고 없이 초음파 사진을 들이밀었다. 아내가 처음으로 나의 동공지진을 봤단다. 나도 아내의 표정을 봤다. 눈을 봤다. 눈꼬리가 내려와 있었고 눈물에 형광등 빛이 반사됐다. 안아주었고 등을 두드렸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축하했고, 이제 우린 엄마 아빠가 되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어버이날 어버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가 태어나면 그제야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이미 아빠가 아닌가. 뭐 이게 따지고 들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어버이날 아빠가 된 걸 알게 됐고, 6주 전에 아빠가 된 걸로 하고 싶다. 생명이 시작된 날 나도 아빠가 시작됐다.


아내의 커뮤니티에서 누군가는 뱃속의 아기와 작별하는 소식을 듣는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헤어진다. 난 이들도 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모두 느꼈을거다. 아이도 충분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난 가끔 아니 자주, ‘절대’ 애는 낳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생에 아버지라는 역할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이며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내 한 명으로도 충분했다. 과분하고 벅찼으며 행복했다. 친구처럼 애인처럼 스승처럼 재미있었다. 역시 ‘절대’라는 표현은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제 어버이날 즈음 카네이션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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