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스토너>
문학 독서모임 선정 도서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었다.
이번 모임은 내가 발제자였기 때문에 발제문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며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초반부는 조금 루즈한 감이 있었다. 아니, 자극적인 내용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루즈한 소설이었다. 스토너는 참으로 답답한 인물이다. 번역가 김승욱이 옮긴이의 말에 남긴 문장처럼 스토너가 악의 무리(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를 놀라운 지혜와 용기로 무찌르고 사랑하는 사람들(딸과 캐서린)을 행복의 세계로 이끄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토너는 상황이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해져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의 부모가 노동으로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것처럼.
나는 스토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디스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딸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보고만 있는가. 왜 그정도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는가. 왜 흔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지 않는가. 어째서 로맥스나 찰스 워커에게 홧김에 주먹이라도 한 번 날리지 않는가? 진심으로 화가 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나는 스토너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그가 삶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회심의 일격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스토너는 자신이 가장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지켜냈다. 그리고 관조적인 태도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그는 분명 많은 것들에 실패했다. 결혼생활도 실패로 끝났고 하나뿐인 사랑도 떠나갔으며 권력을 쟁취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스토너의 삶이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 결과 내가 동요한 이유는 스토너가 아주 평범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스토너는 조국을 위해 죽음을 무릎쓰고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교수직을 내던지지도 않았으며 통쾌한 복수에 성공하지도 못했다. 위대한 학자가 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써낸 책도 '좀 지루하다'는 평을 받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을 받아들일만큼 관대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스토너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었을 뿐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 중 하나다. 그렇기에 그가 생의 막바지에 '실패로 얼룩진'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유일한 긍지이자 열정으로 써낸 책을 만져보는 장면은 애틋했다.
늦은 저녁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발제문에서는 각각 이디스, 찰스 워커, 그리고 이 소설의 뒤늦은 열풍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개인적으로는 찰스 워커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모임에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본 결과 나는 스토너가 찰스 워커를 바라보는 시선에 '질투'가 담겨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찰스 워커는 문학에 대한 기초 지식도 결여되어 있고 오만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통찰력이 있고 매우 창의적이다. 스토너도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스토너는 찰스 워커를 거부했다. 많은 분야에서 실패한 그의 삶에 남은 건 학문적 자긍심 뿐인데, 그마저도 찰스 워커가 더럽히거나 뺏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건 아닐까. 혹은 그가 동경하면서도 증오한 로맥스의 애제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학생을 불합격시키려는 스토너의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스토너가 순수한 학문의 가치를 지키고자 찰스 워커를 거부했다고 본 분들도 있었다.
이디스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양했다. 이 소설은 스토너의 관점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이디스를 이해하기 어려운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확실히 그들의 실패한 결혼생활을 놓고 이디스만을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디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긴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디스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입을 닫아버렸고 자녀를 방치하거나 구속하고 자기 뜻대로 살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디스와 스토너는 모두 당대의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꿈꾸었는데 현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몰랐던 것 같다.
이 소설이 '입소문'만으로 출간된지 50여년 만에 뒤늦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것은 의미 있는 사건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문학 시장에서 별다른 홍보 없이 역주행을 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스토너>의 가장 큰 특징은 삶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이다. 소비자학의 용어를 인용하자면, 나는 스토너 열풍이 메가트렌드가 아닌 역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점차 빨라지는 삶의 호흡과 사회구조적 문제 제기에 익숙해졌기에 오히려 <스토너> 같은 소설이 신선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반작용일 뿐 커다란 방향성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