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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Nov 22. 2021

낭만을 파는 플리마켓

초안클럽 x 물건의집 플리마켓의 기록


플리마켓은 낭만을 파는 것이라 생각해요
- 작사가 림고


플리마켓을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플리마켓을 열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실행의 경험'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플리마켓이 열렸던 어제의 일을 회고하기 위해 글을 쓴다.



시작의 계기, 초안클럽

작년에 이어 올해 초안클럽 시즌2에 참여했다. 초안클럽은 나만의 콘텐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초안을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모임인데 기획자 흔디의 제안으로 브랜더 김키미, K팝 작사가 림고, BX디자이너 양수, 프로덕트 디자이너 진초이까지 총 6명이 함께 시작했다. 지난 시즌에 흔디는 초안노트를 만들고, 림고는 리추얼, 키미는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책을, 진초이는 '오초이 달력'을 만들었는데 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시즌 2 때는 결과물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성향이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내보인 적이 없어서 늘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2주에 한 번씩 초안클럽 온라인 미팅을 할 때마다 나의 초안에 자신이 없었다. 뭔가 그럴듯한 초안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계속 바뀌는 초안이 불안 해질 때쯤, '정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를 고민하다가 올해 초에 생각했던 '물건의집'을 구체화하고 싶었고, '좋은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플리마켓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멤버들과 피드백을 나누면서 '초안노트도 직접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초안클럽 멤버들도 같이 셀러가 되면 어떨까?'로 이어져서 자연스럽게 초안클럽 X 물건의집 플리마켓을 하기로 결정했다.


초안클럽을 하면서 느낀 점


1. 좋은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어떤 부분을 피드백받고 싶은지 미리 생각하고 말할 것!

2. 이번 시즌에서 몇 명 멤버들은 발표자료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안노트에 적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서 발표했는데, 고민의 흐름이 잘 보여줘서 초안을 공유하기에 좋은 방식인 것 같다. 다음 시즌에는 노트 자체에 날 것의 고민의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담아봐야겠다.

3. 자신감이 없을 때, 자존감을 일으켜주는 멤버들의 말이 힘이 되었다. 주변인들에게 힘이 나는 말을 들으면 도토리를 모으는 것처럼 초안노트에 적어둔다는 키미의 말을 듣고 나도 응원의 말을 모으게 되었다. 힘이 없을 때 힘을 주는 소중한 사람들 정말 고맙고 소중해.


멤버들과 피땀눈물로 만든 초안노트들 (무려 100권 제작!). Achim 매거진에서 씨리얼 박스도 제공해주셨다. (감동..)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물건의집 플리마켓

여름에 계획했던 플리마켓은 코로나 4단계가 되면서 계속 미뤄지다가, 11월 20일에 하기로 결정했다. 림고의 빛나는 섭외 덕분에 장소는 아름다운 파고커피(@fargo.coffee​)에서 하게 되었다. 여름에서 가을이 될 때까지 멤버들은 초안공장처럼 초안노트를 부지런히 만들었다. 취향이 담긴 표지를 모으고, 내지를 손으로 자르고 (키미가 당근마켓에서 직접 작두를 구해와서 훨씬 수월해졌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롤러로 노트를 납작하게 만들어 마무리 커팅까지. 마지막으로 초안노트 전용 키워드 도장을 찍고, 어떤 표지로 만들었는지 쓰고 사진을 붙이면 완성! 100% 핸드메이드로 총 100권의 초안노트를 만들었다. (뿌듯) 플리마켓을 준비할 때 각자의 역할이 있었는데 나의 메인 역할은 디자인 작업이었다. 물건의집 로고부터 포스터, 플리마켓 손님에게 줄 브로셔, 엽서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새벽까지 이어지는 창작활동은 몸은 힘들어도 기분이 짜릿했다. 인스타 계정(@home.of.object​)도 만들어서 우리가 플리마켓을 준비하는 과정을 공유했다. 모든 것은 함께이기에 가능했다는 걸 느낀 순간이 많았다.

키미의 맛깔나는 스토리 박음질은 언제봐도 감탄이!
최종 인쇄물을 받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물건의집을 하면서 느낀 점


1. 혼자 보다는 함께

각자의 롤을 정하고, 자신의 일처럼 각자가 주도적으로 나서 주고, 자기가 잘하는 일을 했다. 플리마켓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야무지게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언니들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특히 계획형과 실행형 인재가 적절히 잘 섞여서 더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았다. 걱정이 많은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묻는 말에 흔디는 6명이라 걱정도 1/6으로 줄어든다고 한 말도 공감됐다. 혼자일 때 하기 어려운 일도, 함께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각자가 잘하는 것을 할 때 빛이 난다.


2. 셀러의 취향과 손님의 취향의 결이 맞는 순간

물건을 셀러 별로 구분하지 않고 한 테이블에 분류별로 세팅하고 대신 셀러 별로 스티커 색깔을 정해서 물건에 붙이길 정말 잘했다. 플리마켓에 놀러 온 사람들이 물건을 구경하고 고르고 나서, 스티커 색깔을 보고 'OO랑 취향이 비슷하네'라며 어떤 셀러와 취향이 잘 맞는지 얘기하는 걸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었던 포인트!


3. 낭만을 파는 플리마켓

물건의집 플리마켓은 다른 플리마켓이랑 뭔가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차이를 만들면 좋을까? 오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이벤트도 하고 싶고, 귀여운 엽서도 주고 싶었다. 마침 파고커피에서 회의할 때 림고가 말했던 말을 초안노트에 그려두었는데 그 그림을 엽서로 만들면 딱일 것 같았다. 물건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엽서를 넣어주고, 3만 원 이상 구매한 사람에게는 초안클럽 멤버들의 애장품이 담긴 럭키드로우 이벤트를 했다. 키미는 자신의 책인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희귀한 초판본을, 흔디와 림고는 자신의 그림/사운드트랙 NFT, 진초이는 자신이 만든 달력과 엽서를, 양수는 고슴이 티셔츠를, 나는 폴라로이드 촬영을 해주었다. 이런 고민들이 통했을까. 오셨던 손님 중 한 분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낭만을 판다는 말이 좋았어요"라고 말해주었을 때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4. 물건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

내가 물건을 샀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쓰는 건 생각보다 오래걸리지만 재미있었다. 뉴욕, 방콕, 포틀랜드, 마카오, 교토 등에서 온 물건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수고스러워도 이 물건을 어디서, 왜 샀었는지 다시 생각하고 끄집어내는 일은 의미가 있었다. 사실 물건을 잘 못버리는 맥시멀 리스트인 내겐 나름 아끼던 물건을 팔지 말지 결정하는게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팔기로 결정한 나의 물건의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 또한 행복해졌고 분명 나보다 더 잘 써줄서라는 확신이 들었다.


5. 내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가 사준다는 건 굉장한 일이야.

처음으로 내가 만든 창작물을 누군가가 구매하는 경험을 했다. 아무도 안 사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컸는데, 모르는 분들이 내 그림이 담긴 엽서를 사 가시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더 좋았던 건 남편도 그 경험을 같이 해봤다는 것. 심지어 남편이 만든 엽서가 더 잘 팔렸다. 참고로 남편은 길거리에서 만난 고양이를 사진 찍어서 올리는 계정을 인스타그램에 만들었는데 (@streetfriends_seoul) 그중에서 가장 애정 하는 사진을 추리고 추려서 메시지 카드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결과물을 만든 내 자신이 장하다.

(저의 그림은 @lucy_drawing​에 가끔 올리고 있어요!)

(왼쪽)내가 만든 루시앤오리 엽서(오른쪽)남편이 만든 길고양이 엽서



다음에 또 물건의 집을 한다면,


1.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모으자.

마켓을 열기 전에 각자의 물건에 대한 사연을 미리 공개하면 좋을 것 같아서, 멤버들의 주요 물건 2-3개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고 나머지 물건들은 포스트잇에 손글씨로 스토리를 썼다. 복병은 나머지 물건의 스토리를 작성하는 게 매우 오래 걸렸던 것이었는데, 세상에. 마켓이 끝나고 나서야 그 스토리를 하나하나 아카이빙을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정작 내가 멤버 각자의 물건에 담긴 세세한 스토리를 놓쳤다는 게 정말 너무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는 꼭 놓치지 않으리라. 꼭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둬야지. 어떤 물건을 팔았고, 그 물건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기록해두지 않으면 모르니까.


2.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자.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코스가 정해져 있는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방명록이다. 그런데 물건의집 플리마켓에서는 방명록을 빠뜨렸다! 마켓 날 흔디가 말해준 덕분에 깨달은 사실. 다음부터는 꼭 방명록을 챙기리라.


3. 잘 퍼트리자.

우리의 걱정은 사람들이 안 오면 어떡하지가 가장 컸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이 와주신 덕분에 한시름 놓았지만, 다음에 오프라인 행사를 한다면 좀 더 세세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나의 경우 10월 말에 오프라인 행사 공지를 한번 올리고 하루 전에 두 번 게시글을 올렸다. 미리 게시글을 올렸다고 생각했지만 댓글을 보고 놓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부지런히 더 많이 커뮤니케이션할걸.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진을 못 올렸던가. 앞으론 시기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이야기하리라.


4. 미리 준비하자.

인쇄 제작기간이 1-2일 걸린다고 안심하지 말자. 꼭 넉넉히 기간을 두고 하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실제로 당장 내일모레가 플리마켓인데, 오OOO미에서 출고 지연 문자가 발송돼서 인쇄 제작을 담당해준 진초이와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고, 충무로 가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발을 동동 굴렀다. 결론은 하루 전에 배송 왔다. 외쳐 갓 택배!



+ 초안클럽 멤버들과 지인들이 보내준 물건들의 이야기를 공개해요!  

사진제공 : 초안클럽 멤버들
사진제공 : 성수동의 큰 손, 영선님
사진제공 : 마켓원정대의 큰 손, 파주댁 동규 & 주영

 

초안클럽 x 물건의집 만든 사람들

초안 기획 : 루시

로고, 포스터, 엽서, 브로셔 디자인 : 루시

포스터/스티커 제작 : 진초이

목걸이 제작: 양수

스토리 마케팅 : 김키미

디피 & 물건 설명 : 림고, 양수

결제/정산 : 흔디

포장 : 진초이, 루시

장소대관 : 림고


Special thanks

- 자신의 일처럼 애써준 초안클럽 멤버들

- 아름다운 장소를 대관해준, 파고커피의 민우님

- 초안클럽 멤버들이 플리마켓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서윗한 남편들 (뜨스구스님, 웅킴님, 시언이 아버님, 나의 남편 형철)

- 초안노트 표지로 쓸 수 있게끔 시리얼 박스 14.5개를 제공해준 Achim 매거진 윤진님

- 사람이 안 올까 봐 걱정하는 우리를 위해 흔쾌히 당근 마켓 광고비를 지원해준 당근 마켓 (손)정은님

- 그리고 미세먼지를 뚫고 멀리까지 와준 지인들과 모든 분들(하투)


다들 낭만이 있는 하루였기를 바라며, 모두에게 사랑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진심으로!

언젠가 또 물건의집이 열릴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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