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당신이죠.
요즘에는 AI도 많이 인간다워져서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AI의 목소리에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사람보다 더 진한 위로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밤새 휴대폰과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완전히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초기 AI의 목소리는 굉장히 어색했어요. "귀 하 의.."로 시작되는 폰뱅킹 안내 목소리나 서비스센터의 ARS 초기 목소리들을 기억하시나요?
글자 하나하나 똑같은 톤과 똑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갔지요. 특히 숫자를 말할 때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영 일 이 삼 사 오.. 사람이 말할 때는 숫자를 하나하나 전부 똑같이 말하지는 않잖아요. 띄어 읽기를 하고, 묶음으로 나누어서 말해주고, 마치 노래처럼 높낮이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야 알아듣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줄 때를 생각해 보세요. 010-1234-5678이라고 치면, 010 하고 한 번 쉬고, 1234에서 한 번 쉬고, 5678 하고 마무리를 할 겁니다. 총 세 묶음이 나오는 거죠.
아마 숫자 하나하나 미세하게 톤이 다르고, 속도도 좀 다르게 이야기할 겁니다. 특히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었던 숫자가 있었다면 그 숫자를 말할 때 좀 더 톤을 높이거나 더 힘줘서 말할 겁니다. 저는 3과 4를 말할 때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하는 것 같아서 그 숫자들을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이를 둬서 말을 해요.
지금 한 번 본인의 휴대폰 번호를 소리 내어서 말해보세요. 숫자 하나하나 다 똑같이 말하게 되나요? 아마 아닐 거예요.
그래서 초기 AI목소리가 정말 이상하고 느껴졌던 거예요. 우리가 말하는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우리가 말할 땐 띄어 읽기도 하고, 톤을 더 높이기도 하고,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더 세게 말하기도 합니다. 즉, 리듬을 넣고 강조를 하죠. 그러나 초기 AI목소리를 만들어낼 땐 그렇게까지 인간화된 기술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리듬이 있는 부분이나 강조하는 부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 어색하게 들렸습니다. 사람 목소리 같은데 사람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들었죠.
이걸 다시 말하면, 말에 리듬을 넣고 강조를 해야 인간의 말하기가 됩니다.
그런데 스피치라는 건 목적이 있는 거라고 말씀드렸죠? 상대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목적도 있을 수 있고,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설득'이라는 목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적이 없는 말하기는 스피치가 아니에요. 뭐였어요? 네, 그건 그저 잡담이죠. 목적과 결론이 있어야 스피치라는 이야기해드렸습니다.
자, 리듬과 강조도 이런 목적에 맞게 우리가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저 자연스럽게, 인간답게 들리는 것을 넘어서서 원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리듬을 넣고 강조를 해줘야 하는 것이죠.
사실 방법은 쉬워요. 그런데 원하는 대로 결론을 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방법이 쉽다고 해서 결과까지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리듬과 강조, 이것도 정말 원하는 대로 결론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것 때문이에요.
확증편향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습니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분명히 A를 A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면 B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듣고 싶은 대로 들어버리니까. 그래서 아주 명확하게, 기억에 콕 박히게 A는 A라고 리듬과 강조를 넣어서 말을 해야 합니다.
똑같은 걸 보거나 듣더라도 사람마다 인식에 차이가 있다, 이걸 다른 말로 확증편향이라고 하는데요, 확증편향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러 개 있어요. 알려드릴게요.
먼저 이 실험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버드 심리학과에서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어떤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면서 이런 문제를 냈죠.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여성은 공을 몇 번 패스할까요?
여러분도 한 번 맞춰보시겠어요? 동영상 보여드릴게요.
흰 옷을 입은 여성은 공을 몇 번 패스했나요?
12번? 13번? 18번?
네, 정답은 16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다 보면 고릴라가 유유히 지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손을 흔들기까지 합니다. 혹시 보셨나요? '웬 고릴라?'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마 많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영상을 보는 동안 고릴라라곤 한 마리도 못 봤거든요. 동영상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지금까지 절반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데 진짜 있어요. 고릴라를 생각하면서 보시면 바로 보여요.
고릴라뿐만이 아니에요. 고릴라가 등장하면 여성 한 명이 밖으로 나갑니다. 고릴라까지는 알았지만 여성 한 명이 나가는 건 아마 못 보신 분들 많으실 거예요.
또 하나! 커튼 색깔도 빨강에서 주황으로 바뀝니다. 보셨나요?
이걸 전부 제대로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못 봤다는 인지조차 못합니다. 안 보여요.
이게 왜 그럴까요? 알고 나서 보면 고릴라도 분명히 보이고, 여성 한 명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바로 보여요. 커튼 색깔도 "아!" 하면서 바로 눈치채실 거예요. 그런데 왜 이걸 다 못 봤을까요?
네, 흰색 옷을 입은 여자가 공을 패스하는 것에만 주시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확증편향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재밌죠?
이런 그림 보신 분들은 많죠?
이 그림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시나요? 할머니인가요? 아니면 젊은 여인의 옆모습인가요?
그럼, 이 그림은요?
남녀의 그림 같기도 하지만, 돌고래 여러 마리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 동물은 무엇인가요?
오리일까요? 아니면 토끼일까요?
착시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이죠. 아무리 봐도, 젊은 여자가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첫 번째 그림), 돌고래가 몇 마리인지 정확히 세기가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두 번째 그림). 토끼 일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죠(세 번째 그림).
지금 옆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이 그림에서 뭐가 보이는지.
내가 보는 것들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들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확증편향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는데요,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미국 영토인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했다. 별다른 대비가 없었던 미국은 7척의 전함 가운데 5척을 잃었고, 미국 항공기 200여 대가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사실 이미 2주일 전, 미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 키멀 제독은 수도 워싱턴으로부터 ‘일본의 급습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키멀은 특별히 진주만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주만은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11월 27일과 12월 3일에도 추가로 경고를 받았다. 일본이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암호들을 대부분 없애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지휘관은 이것은 일본이 전쟁을 곧 일으킬 징조라고 보았다. 그러나 키멀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라면 ‘대부분 없애라’고 하지 않고 ‘모두 없애라’고 했을 것이라며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무시해 버렸다.
12월 6일, 진주만 공격 하루 전날에는 ‘일본 항공모함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받았지만, 그 또한 무시해 버렸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싸우느라 바쁘기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멀의 확신과 상관없이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했고, 미국은 큰 피해를 입었다.
키멀은 ‘진주만은 안전할 것이다’라는 자기 신념에 빠져 그와 반대되는 증거들은 모조리 무시해 버렸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심리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이다.
- 출처 : 확증 편향 - 거봐, 내 말이 맞잖아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심리학, 2016. 10. 07., 정재윤)
키멀은 '진주만은 안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에만 빠져서 다른 정보들을 모조리 무시해 버렸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픽토그램을 몇 가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작가 양 리우(Yang Liu)가 동서양의 사고방식과 행동의 차이를 보여준 'Ost trifft West'라는 책이 있습니다. '동, 서양이 만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야외 전시회도 열었네요.
책의 내용 일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2시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면 여러분은 언제를 12시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서양사람들은 12시 정각을 12시쯤이라 생각하고, 동양사람들은 11시 55분부터 12시 10분 정도 까지를 12시쯤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픽토그램입니다. 서양사람들은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경향이 있어 충돌을 당연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동양사람들은 충돌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어느 방법이 더 좋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장단점이 있죠.
여행을 떠난 서양사람들은 눈 안에 풍경을 담습니다. 하지만 동양사람들은 카메라에 담죠.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로 이러하다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하루 중 언제 샤워하시나요? 서양사람들은 아침에 샤워를 하고 동양사람들은 대체로 밤에 샤워를 한다고 합니다.
외식을 하러 가게 되면 여러분은 어떤 메뉴를 고르시나요? 서양사람들은 특별한 외식메뉴로 동양의 음식들을 고르죠. 동양사람들은 반대로 칼과 나이프를 쓰는 서양 음식을 특별한 외식 메뉴로 생각합니다.
화가 났을 때 여러분은 어떤 표정을 지으시나요? 서양사람들은 화를 표정에 그대로 나타냅니다. 하지만 동양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죠. 너무 싫어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노후에 관한 이미지예요. 서양사람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공원을 거니는 것을 편안한 노후의 이미지로 생각하지만, 동양사람들은 손주와 함께 거니는 것을 떠올립니다.
어떠세요? 대체로 맞는 것 같으신가요? 말씀드렸듯이 개인차가 있고, 중국인의 눈이기 때문에 한국인인 우리의 시각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개인의 인식에 차이를 만드는구나' '같은 개념을 두고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겠구나' 하는 걸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스피치에서도 마찬가지란 말씀이에요.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어도 서로 머릿속에는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네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이런 말씀, 한 번쯤 해보셨지요? 확증편향 때문에, 즉, 누구나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정보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한 대로 상대가 모두 알아들었을 거란 생각은 착각입니다.
그럼 질문드려볼게요. 상대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면 그건 누가 잘못해서인가요?
네, 맞습니다. 내가 잘못 말했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은 내 탓이구나!'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자, 그래서 리듬을 넣고, 강조를 넣어서 상대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가 내 머릿속 그림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말하는 훈련, 같이 해봐요!
메인 이미지 출처 : fla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