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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Blues Jan 12. 2019

3. 아내의 이삿날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3화


9월 개강 직전의 주말. 나의 실질적인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주말이자 아내가 이사가는 주말이 어느새 다가왔다. 아내는 원룸 계약 등 일을 처리하기 위해 먼저 기차로 떠나고 나는 한 차 가득(정말 대단하게 가득) 아내의 짐을 싣고 아이와 둘이 대구로 향했다.


토요일은 아내의 집(아내의 집이라니..)을 청소하고 짐을 옮기고 필요한 물건을 쇼핑했다. 나는 즐겁지 못했으나 아이는 엄마가 살 곳이라고 하는 작은 빈 집에 짐을 풀고 정리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요리조리 열심히였다.  


드디어 이별이 예정된 일요일이 되었다. 대구 부모님댁에서 하루를 잔 우리 가족은 추가적인 짐을 싣고 다시 아내의 원룸으로 향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아이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오버해서 웃다가 치대다가 짜증내다가를 반복했고 그 이유를 모를 리 없는 아내와 나는 마음이 아파왔다.


일요일 고속도로 귀경길을 앞둔 우리에게는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어려운 대사는 나의 몫이었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야"


우리 세 사람은 터벅터벅 주차장으로 왔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엄마
지금 헤어지면 오늘 저녁에도 못보는 거지

한밤중 나 자는 동안에 오는 것도 아닌 거지

내일 눈떠도 옆에 엄마 없는 거지

그 다음날로, 그 다음날도 못 보는 거지

그게 정말인거지


아내도 우는 아이를 꼭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인이 엄마 너무 보고 싶을 텐데 엄만 갈 수 없는 거지

오늘밤, 내일밤도 엄만 못가는 거지

엄마 이해 못하겠지

엄마 너무 밉겠지

가인이 보고 싶어 엄만 어떻게 하지..

많은 말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그렇게 아이와 엄마는 서로 꼭 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렵게 출발한 차 안에서도 엄마가 작아지다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아이는 간신히 멈췄던 울음을 다시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지만 운전석의 아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다행히 차 안에서의 울음은 길지 않았다. 휴게소에 들러서 화상통화로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아이의 안정을 위해 3번의 휴게소와 3번의 영상통화, 3번의 뽑기, 1번의 간식이 소요되었고 우리는 6시간의 운전 끝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떠나간 집은 더 이상 어제의 집과는 다른 온도가 되어있었다.


그날 이별의 순간 아이와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부모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로 애달플 순간을 어물쩍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아이에 더 좋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연하던 엄마와의 헤어짐이 바로 지금임을 알고 차 옆에서 그렇게 서럽고 분하게 우는 아이를 목도하게 되자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굳이 엄마와의 생이별이라는 큰 슬픔을 온전히 느끼게 했어야 했는지. 그 순간이 아이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 것은 아닌지.


다행히 석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경험이 엄마의 부재를 견디는 데에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만약 이별의 결정적 순간을 속임수로 모면했다면, 그래서 엄마와 아이가 서로의 뜨거운 눈물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엄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이는 감정적으로 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지 않았을까.


그날 밤 자는 아이 옆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나이 때의 나. 어스름이 지는 저녁, 베란다에 매달려 목을 빼고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던 내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다. 아직 엄마가 세계의 대부분인 시절. 그 나이 때의 아이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인 것이었다. 오늘 하루 고생한 잠든 딸아이의 머리를 한번 더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 옆, 어제까지 엄마의 자리였던 곳에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세계의 대부분이 비어버린 아이. 영어도 봐주고 같이 등산도 다니고.. 거창했던 아빠표 육아 계획이 머릿속에서 녹아내리며 그냥 아프지나 않게 케어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다 싶었다. 아빠 욕심부리지 않을게. 아프지만 말아줘..


육아휴직 첫날이 밝았다.
첫날도 좋았고 둘째날도 좋았다.
10일째 되던 날 밤 새벽, 아이가 숨을 못 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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