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 뒤에 숨은 무게
고기압은 주변보다 기압이 높은 지역으로,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오며 생성된다.
맑고 바람 없는 날씨를 만들어내지만,
공기가 움직이지 않아 때로는 답답한 정체감을 느끼게 한다.
요즘, 나의 일상은 고기압의 맑음과 닮아 있다.
흐릿한 구름 하나 없이 파랗게 펼쳐진 하늘처럼
겉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날씨는 조금 다르다.
맑게 펼쳐진 하늘 아래 움직이지 않는 고기압처럼
나도 움직임을 멈추고 고여 있다.
바람 한 줄기 없어서 오히려 더 답답한 날들이 계속된다.
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대학교 수업 시간에 처음 들었을 땐
그저 단순한 개념 중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과 사람 모두를 아우르는 그 가치가
내 삶의 방향성이 되었다.
최근엔 사주에 관심이 생겼다.
인목일주인 나는
성장과 발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살아가며 꾸준히 자라나는 이야기들에
늘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정작 자기 계발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성공이 정말 ‘성장’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따라가기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작은 발전이라도 찾아내려 애썼다.
스스로 뿌듯해하고, 또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얻곤 했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런 성장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멈춰 선 것 같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 걸까?
정답을 알 수 없기에
고민은 깊은 고요 속에 조용히 쌓여간다.
장기하의 노랫말처럼 별일 없이 산다.
사실 다들 알겠지만
별일이 없다는 건 진짜 행복이다.
직장에선 문제없이 일하고,
일상은 특별한 사건 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너는 참 편안해 보여.”
“걱정 없어 보여서 좋겠다.”
그럴 때마다 미소를 짓지만,
이따금씩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다.
남들이 보기에 평안한 삶 속에서도
내 안에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쌓여간다.
직업적 성취에 대한 불안,
삶의 목적에 대한 의문,
나라는 사람의 본성적 기질과 현실 사이의 거리까지.
무언의 압박이라는 게 있다.
소리도 없고, 형태도 없지만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를 느리게 짓누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 생긴다.
그리고 종종 그 벽을 보고 선다.
무엇을 해야 이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엔
꼭 넘어야만 하는 걸까?
때로는 부숴버리는 것도 길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나는 평온한 길 위에 멈춰 서 있다.
조금씩 더 나은 길을 찾아 움직여 보려 애쓰면서도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고기압의 하강기류에는
구름도 머물지 못하고 깨끗하게 비워진다.
구름조차 머물지 못하는 고기압의 맑은 날씨.
그렇게 조용한 하늘 아래,
나 역시 한때 안정을 되찾은 줄로만 알았다.
치열하게 버티고, 견디고, 때로는 헤매기도 했던
폭풍우 같은 날들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평온함은 아주 귀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고요가 너무 오래되면,
멈춰있는 평온이 버거울 때가 있다.
맑고 고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체는
오히려 나를 더 깊이 가라앉게 할 때가 있다.
고기압 아래,
홀로 고여 있는 내 마음이
언젠가 다시 흐르기를 바란다.
이 답답한 고요의 시간이
그저 머무름이 아니라
다음 성장을 위한
긴 숨고르기였기를.
나는 오늘도
바람 한 줄기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런 작은 기대를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