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지수: 말 걸지 말아 줘

서로가 서로에게 짓궂은 날씨가 되는 날

by Hsun


불쾌지수는

기온과 습도를 함께 고려해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을 수치로 나타낸다.


이 표현은 아직도 종종 쓰이지만,

이제는 기상청 예보에서 보이지 않는다.

감정이라는 것이 수치화하기 어려운 만큼

예보로 안내하기엔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수치가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가 느끼는 불쾌함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불쾌지수는 이제 뉴스보다,

우리의 얼굴과 말투

그리고 침묵에 더 자주 나타난다.



출근길,

버스 내부는 아침부터 숨이 막혔다.

고장 난 에어컨에서는 뜨거운 바람만 나왔고,

잦은 급제동에 멀미가 밀려왔다.


창밖을 보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던 그때,

옆 사람의 가방이 급제동마다 내 머리를 쳤고,

앞사람이 휘청이며 내 발을 밟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더위에 지쳐 있었고,

잦은 울렁임 탓에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무언의 반응이,

오히려 더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누구 하나 탓할 수 없는 날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점심시간엔 말이 줄었고

회의에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꾸만 작은 일에 신경이 곤두섰다.


누군가 키보드를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고,

회의 중 누가 쓱 쳐다본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마음이 철렁했다.


그날은 모든 게 예민하게 다가왔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유독 어떤 날은 마음이 꼭 물에 젖은 장작 같다.

불을 붙이려 해도 쉽게 타오르지 않고,

눅눅해진 마음은

다시 뽀송해져야 불씨가 붙는다.


그런 날에는

감정이 서서히 차올라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 든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투에도 기분이 흔들렸고,

흐릿해졌던 감정이 다시 천천히 번져 나왔다.

불쾌지수는 사람 사이의 온도도 높인다.


표정은 쉽게 굳고,

말투는 평소보다 짧아진다.


회의 끝나고 나누던 농담도 웃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때론 혼잣말처럼 튀어나온 말이

괜히 누군가를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는 ‘불쾌지수’라는 회차가 있다.

짓궂은 날씨는 단지 흐린 하늘,
예고 없이 내리는 눈, 비,
거센 바람과 태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괜한 짜증을 유발하거나
이유 없이 싸움을 붙게 한다.
그렇게 뜻하지 않았던 순간에,
짓궂은 날씨의 공격을 받는다.


그 말을 기억하는 건,

이유 없이 예민해지던 내 하루와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상하게 하는 건

언제나 크고 격한 일들만은 아니다.

작고 무심한 말과 사소한 표정 하나가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말을 아끼게 된다.


사람을 피하는 건

상처받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꺼내 보일 힘조차

남지 않은 날이 있기 때문이다.

불쾌지수는 사람 사이에도 번진다.


감정은 소리보다 먼저 전해진다.

표정 하나, 숨결 하나에도 기분은 묻어난다.


모두가 예민한 날엔,

마치 감정의 레이더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처럼

서로의 감정을 더 잘 감지하게 된다.


말을 하지 않아도

공기 하나로 분위기가 바뀌고,

그 공기에 따라 하루의 결도 달라진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하루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불쾌지수는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사회적 지표일지도 모른다.


더위 속에서 감정까지 가라앉는 날엔,

서로의 말 한마디가 더 예민하게 스며든다.


이런 날의 감정은 가볍게 떠다니지 않는다.


긍정보다 부정이 앞서는 감정은

물기를 머금은 것처럼 천천히 가라앉아

차곡차곡 쌓인다.


습도가 높을수록 공기는 무겁고 끈적이듯,

예민함도 서로에게 달라붙는다.


이럴 때는 공기의 순환이 필요하다.

때로는 내가 열고,

때로는 누군가가 대신 열어주는 것.


하지만 눅눅해진 마음이 다시 마르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여백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다정하기 위해 거리를 두기도 한다.

다정하게 대할 여유도 없지만,

상처는 주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조용히 혼잣말처럼 되뇐다.

‘오늘은, 제발 말 걸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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