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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하다 Mar 24. 2021

씁쓸한 첫사랑의 맛

<콩나물하다>시즌 1 - 10화


콩나물은 동창회에 갔어요. 오랜만에 홍고추 치장도 하고 귀한 지리산 약수까지 챙겨서요. 도착하기까지 거울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몰라요. 사실 콩나물은 단 한 번도 동창회에 참석해본 적이 없어요. 시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얼마 전 인스타그램으로 첫사랑 콩나물이 유학 후 귀국했다는 것을 봤어요.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소식도 봤죠. 오랜만에 콩나물의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콩나물은 첫사랑 콩나물이 보고 싶었어요. 


이미 여러 번 만나 온 콩나물들은 서로 대화하기 바빴어요. 학창 시절도 조용히 보냈던 콩나물에게는 다들 한 번 인사를 마치고는 관심이 없었어요. 창피한 마음에 모자를 더 깊숙이 눌러쓰고 있을 때 첫사랑콩나물이 등장했어요. 매끈한 얼굴, 번쩍이는 미국산 고추 보타이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여전히 귀공자처럼 생겼다.’

 첫사랑콩나물은 단 번에 콩나물을 알아보고 다가왔어요. 환한 얼굴로 잘 지냈냐고 묻는 첫사랑 콩나물에 콩나물은 몸이 배배 꼬여 즙이 다 나올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첫사랑 콩나물 옆에 앉아 그에게 팔짱을 껴요. 콩시루에서 제일 잘 나가던 아름다운콩나물이에요. 아름다운콩나물은 첫사랑 콩나물에게 

“자기야”

라고 불러요. 첫사랑콩나물이 아름다운콩나물에게 콩나물을 소개해요. 아름다운콩나물은 관심이 없어요. 콩나물은 아름다운콩나물의 물을 봐요. 에비앙이에요. 동창회의 다른 친구들의 물을 봐요. 다들 이름 있는 값비싼 물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 자기만 지리산 물이에요. 콩나물은 얼굴이 붉어져요. 모자를 더 깊숙이 눌러쓰고 자리에서 일어나요. 첫사랑콩나물이 어디 가냐고 물어요. 

콩나물은 대답해요. 

“화장실 좀 다녀오려고.”

화장실은 실내에 있지만 콩나물은 문 밖으로 나가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해요. 




오디오 클립 링크 - 10화 씁쓸한 첫사랑의 맛


* <콩나물하다>는 오디오 클립을 통해 음성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오디오 클립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글. 허선혜, 고권금

그림. 신은지

구성.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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