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삼춘기, 자기 전능감과의 충돌

반항하는 여덟살에 대하여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이의 말투가 한층 반항기 짙어졌다. 


- 이제 방 정리 해야지 

- 이거 다 하려고 했는데 왜 자꾸 하라고 해! 


대부분의 대화가 이런 식이다. 내가 말을 하면 아이는 토를 달거나 싫다고 하거나 한숨을 쉰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은 어찌어찌 잘 달래서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분위기가 차가워진다. 나는 침묵하거나 아이가 달아놓은 대꾸에 또 다시 대꾸를 한다. 그러다보면 서로 마음이 상하는 건 시간 문제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 


[아이의 사춘기]

일춘기: 첫 걸음마를 떼는 시기.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찾아옵니다. 

이춘기: 흔히 말하는 미운 세살~ 미운네살. 

삼춘기: 빠르면 일곱살, 혹은 여덟살에 찾아오는 미운 나이. 

그리고 다들 아는 사춘기. 


나는 일, 이, 삼, 사춘기에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를 해놓은 글을 보니 내가 그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었는지도 기억난다. 

[자기 전능감]

나는 이 시기들을 '자기 전능감'의 시기라고 불렀다. 이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다. "자신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너무) 넘쳐나는 시기"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자라면서 이런 시기를 몇 번 겪는다. 일춘기 때에는 "이제 나도 엄마 아빠처럼 여기에서 저기로 걸어갈 수 이써!!!"라는 전능감을 느낀다. 몸을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이춘기 때에는 "나는 달릴 수도 있고 점프도 할 수 이쒀!!"라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맞딱드리고 있는 삼춘기 때에는 아마도 "나는 엄마 없이 친구, 선생님이랑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할 수 있다구!!"라는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런 느낌이 충만하기 때문에 엄마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더불어 엄마의 모든 말과 행동이 자신을 방해하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나도 다 아는데 엄마는 왜 또 잔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나 엄마의 시각으로 보면 고작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일 뿐이다. 선생님이 주신 안내문은 가방 바닥에 구겨져 있고, 치맛자락에는 늘 흙과 나뭇잎이 묻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주장하다가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눈물 범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잔소리를 안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건 아마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엄마도 참고 참고 참아서 그 한마디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우리 사이에 잔소리가 없는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큰다. 아이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나에게서 멀어지려는 것이 꼭 싫지만은 않다. 언젠가 아이는 정말로 나를 떠나 홀로 설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내 잔소리도 그치겠지. 잔소리 대신, 언제라도 힘들면- 넘어지면- 상처받으면- 엄마에게 오렴, 이라고 말하겠지. 


너는 알까. 사실은 지금 내 잔소리도 그 말과 다름 없다는 걸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오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