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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서 달린다, 러닝 스토리

성격은 좋아지지 않았다 

시작은 이 비슷한 짤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장 너그러웠던 때가 체력이 좋았을 때,라고 말했다. 그 글에서 나는 어떤 희망을 봤다. 나도 성격이 여유롭고 너그러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나는 매우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대충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살고는 있으나, 가족들에게는 유난히도 까칠하다. 나는 오랫동안 내 이런 성격이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문득, 


혹시 나, 에너지가 부족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장 예민해졌던 시기가 다름 아닌 '출산 이후 5년'이었기 때문이다. 몸은 몸대로 상해 있었고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다 보니 정신도 피폐해져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마치 내 뒤에 캠핑카를 하나 매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상당히 부담이 되는 존재. 암튼, 그러다 보니 나는 하루하루 어두워져 갔다. 시간이 나면 그저 눕기 바빴고 그 결과 내 체력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람이 그 상태가 되면 상당히 까칠해진다. 피해의식도 생기고(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거야?) 자존감도 떨어지고(세상은 나를 빼고 돌아가고 있어) 실제로 멍청해지는 것 같은 기분(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나도 못 알아들음)이다. 그러면 남편과 아이에게 좋은 말,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가 힘들어진다. 방심하는 순간 짜증을 내고, 여차하면 폭발한다. 


그런 상태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가장 크게 괴롭혔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낮버밤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낮에는 버럭하고 밤에는 반성한다. 

는 뜻이다. 아직 이성은 남아 있어서 아이가 잠든 밤에는 반성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게 또 참 괴롭다. 그렇게 괴로운 밤, 지치는 낮을 몇 해 동안 반복을 하다가 나는 저 비슷한 글을 보게 되었고, 일단 움직이자는 결론을 내렸다. 


1. 아이 공부방 가는 시간에 공원 돌기


내가 처음 시작한 '움직임'은 '걷기'였다. 당시 7살이던 아이를 잠시 공부방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학교 가기 전에 책상에 앉아 있는 연습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50분 동안 나는 근처 공원을 뺑글뺑글 돌았다. 겨울이라서 두꺼운 패딩에 털모자를 쓰고 걸었다. 그러다 힘이 좀 있는 날에는 살짝궁 뛰기도 했다. 


2. 아이 학교 보내놓고 뛰기 


걷는 걸로는 뭔가 운동이 되는 느낌이 부족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건 운동이라기보다는 '움직임'에 가깝다. 그래서 아이가 입학을 한 봄에는 집 근처를 뛰기 시작했다. 뛰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내 비루한 몸뚱이를 땅에서 5cm 들어 올리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싶다. 내 몸이 마치 지구 전체인 듯, 아니 지구 전체의 중력이 나한테만 미치는 듯 무겁고 무겁고 무겁다. 

처음에는 100m도 뛰지 못하고 헉헉 거렸다. 매운 침이 나왔고 목은 따가웠다. 그래서 결국 잠시 포기를 했다. 


3. 아이 학교 보내놓고 등산하기 


나는 다른 운동을 찾다가 가까운 산에 오르기로 했다. 그래도 걷는 건 좀 해봤으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오르막은 또 다른 문제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내 몸에 있는 모든 핏줄이 자기주장을 시작한다. 관자놀이부터 귓속에 있는 핏줄에서도 쿵쿵 박동이 울린다.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숨은 엄청 가쁘고. 

그래도 올라가는 건 어떻게 시간이 걸려서라도 하겠는데, 내려오는 건..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 진짜 후들거려서 힘들었다. 그걸 견디기가 힘들어서 스틱을 샀다. 그랬더니 좀 나아서 한 동안은 그렇게 산에 다녔다. 


4. 다시 뛰기 


어느 정도 체력이 갖춰지자 나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 좋게도 집 근처에 천변이 있어서 환경은 좋은 편이었다. 애플 워치로 기록도 재어가며 야심 차게 시작한 나는, 딱 3km가 한계였다. 역시나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어질어질했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발생한다. 


5. 10km 마라톤 등록 


남편이 덜컥, 마라톤 대회에 등록을 해버린 것이다. 등록비는 대략 4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5km는 기록이 안 나온다길래 10km를 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시 예민함과 까칠함이 올라왔다. 


"나한테 뭘 어쩌라는 거야? 그런 대회를 나갈 수도 없고, 안 나갈 수도 없잖아?" 

"지금부터 같이 연습해 보자." 


해맑은 남편. 그러니까 나랑 사는 거겠지. 


나는 엄청난 중압감으로 거리를 늘려갔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그래 한 번 뛰어나보자' 싶어서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뛰기도 했다. 그게 내 마지막 훈련이었다. 


6. 마라톤 10km 완주 


주머니에 초코바를 챙기고 나는 달렸다. 이어폰에서는 송은이 장항준의 팟캐스트 '씨네마운틴'이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사람들을 제치기도 하고 추월도 당하면서 나는 달렸다. 그 결과 무사히 기록 안에는 골인. 


하지만,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지. 


7. 성격은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고 까칠하다.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도 잘 낸다. 아직 운동이 부족한 건지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 일단 몸 움직이는 게 싫지 않다. 예전에는 틈만 나면 눕기 바빴는데 이제는 뭐 할 거 없나 두리번 거린다. 이건 가족과의 생활에서 나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시간이 나면 같이 어딜 나가기도 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도 하고 빨래도 탁탁 털어서 넌다. (예전에는 이런 사소한 일을 하는 것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거나 외면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좀 더 활기차졌다. 아이도 활발해진 것 같고. 남편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려고 한다. 지금은 일단 이것으로 만족. 



평생 까칠한 엄마로, 아내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은 운동 따위로는, 체력 개선 만으로는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달린다. 요 며칠 동안도 수시로 날씨를 체크하면서 적당한 날에는 러닝화를 신고 나간다. 잘 달리고 돌아온 날에는 반성이 아니라 뿌듯함이 내 안에 남는다. 


아이는 모른다. 엄마가 달리는 이유를. 내가 자신에게 짜증을 한 번이라도 덜 내기 위해서 땀범벅이 되도록 뛴다는 걸 모른다. 효과는 썩 좋지 않지만 그래도 그 한 번을 줄이기 위해 나는 달린다. 한 번이라도 더 아이와 함께 움직이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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