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연실의 이야기
인생은 보쌈의 맛이라고 지금 연실은 생각하고 있다. 푸짐하게 삶은 돼지고기 삼겹살과 앞다리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한쪽에서는 노오란 배수 속 잎을 붉게 물들여 겉절이를 만들고, 그 옆에서는 빨간 무생채를 윤기나게 버무린다. 맛도 맛이지만 이렇게나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으니 이것이야 말로 잔치다. 그리고 잔치에는 역시 돼지고기 보쌈이다.
연실은 햇님 보육원의 원장이다. 벌써 30년 넘게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원래 연실은 수녀가 되고 싶었다.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정해 집을 떠났고 수련기를 거쳤다. 첫 서원을 지나 유기서원기를 보내던 중 보육원으로 자원봉사를 나갔는데, 그 이후로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그녀는 환속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햇님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수천 명의 아이들이 연실의 눈과 마음에 머물렀다. 꼬물거리는 아기 때 만났던 아이들이 반항기 가득한 눈빛을 내뿜다가 이곳을 떠날 때 즈음이 되면 눈물을 글썽거리는 일은 흔했다. 그리고 13년 전 이 아이들도 그랬다. 말없이 고기를 굽던 학규와 그런 학규를 아련하게 바라보던 현경, 그리고 모든 감정을 침묵으로 흡수하며 학규에게 고기를 먹여주던 봉구. 그래도 봉구와 학규는 형제보다 진한 사이니 괜찮겠지, 하며 두 아이를 먼저 보냈다. 도리어 나중에 졸업을 한 현경이 걱정스러웠지만, 현경은 자신만의 명랑함으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원장님! 저 학규 오빠랑 결혼해요!!!!”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현경의 전화에 연실은 말 그대로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얼마나 놀랐던지 옆에 서 있던 연희의 팔을 얼른 잡아야 했다.
“네가, 학규랑 결혼을 한다고?”
연실의 되묻는 말에 옆에 있던 연희도 놀라 휘청거렸다. 두 자매는 가까운 벤치에 앉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랬다.
“네!! 그래서 말인데, 저희 보육원에 가려고요!”
원래부터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래도 기념이 될 만한 일은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생각 끝에 현경과 학규는 자신들이 자라고 만난 여기 이 햇님 보육원에서 잔치 음식을 해 먹으며 결혼식을 대신하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연실은 기쁜 마음으로 허락을 했다. 그리고 잔칫날이 다가오자 하루가 멀다 하고 갖가지 재료들이 보육원으로 배달되어 왔다.
양파와 파, 무가 잔뜩 실려 왔고 길다란 바게트와 스파게티 면이 한 박스 도착했다. 약속한 잔칫날 하루 전에는 돼지고기와 토마토를 비롯한 이름도 어려운 양념들이 문 앞에 높여졌다.
“아니, 나보고 이걸 다 어쩌라는 거야?”
지난 30년 간 보육원의 주방을 맡아온 연희가 인상을 팍 쓰며 투덜댔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재료를 날라다가 냉장고와 팬트리에 채워 넣었다.
“학규 이 놈은 내가 라면에 콩나물이랑 소시지 넣을 때부터 알아봤어. 라면을 왜 그냥 먹질 못하고 콩나물을 넣고 지랄이냐고. 아우, 먹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말은 그렇게 해도 늘 학규에게 주방 열쇠를 맡기던 연희였다. 그 덕에 학규가 요리사가 되었다는 건 당시 보육원 아이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경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지. 한동안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다들 소식은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봉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봉구의 말 없음은, 그 블랙홀 같은 침묵은 연실에게도 늘 어려웠다.
그런 봉구가 잔칫날에 와서 칼을 들었을 때,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연희였다.
“봉구가 요리를 한다고? 먹을 수 있는 거야?”
“실장님, 봉구 오빠 요리 잘 해요. 기대해보세요.”
연희의 불안한 눈빛과 현경의 확신에 찬 눈빛을 번갈아 보며 연실은 생각했다. 봉구가 드디어 찾았구나. 세상에 말하는 방법을.
봉구는 아기 때부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고 칭얼거리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열이 39도가 넘어갈 때에도 붉게 충혈된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연실은 그것이, 울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아이의 체념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연실은 봉구를 안고서 대신 울어주곤 했다.
“울어야지, 봉구야. 힘들고 아프면 울기도 해야지. 아무리 하느님이 다 아신다고 해도 울어야 엿을 하나 더 먹을 거 아니냐. 넌 왜 울지를 않아.”
봉구는 주는 대로 밥도 잘 먹고 쑥쑥 자랐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모든 말과 희노애락의 감정을 깊은 눈 속에 담아둔 채 매일 밤 어딘가 저 먼 곳에 숨겨두고 오는 것만 같았다. 어릴 때 심리 검사도 받아보게 했지만 검사 결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런 저런 말을 부지런히 시켜보기도 했지만 봉구는 늘 단답형이었다. 하는 수 없이 연실이 봉구에게 적응하기로 했다. 애써 말을 시키기보다는 함께 침묵하며 시간을 보냈고, 봉구의 고요함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봉구를 키웠다.
학규를 통해 듣기로 봉구는 무탈하게 대학을 졸업했고, 무탈하게 취업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학규도, 그 말을 듣는 연실도 알고 있었다. 그 무탈함이 오히려 봉구를 딱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굳어진 땅에는 아무런 꽃이 피지 않듯이 봉구가 결국 마른 땅이 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오늘 보니 그 걱정은 모두 무의미했던 모양이다. 연실은 먼저 지연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햇님 보육원 이연실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마음 같아서는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지연은 밝고 단단해 보였다. 그간 봉구가 세상에서 끊어지지 않은 것은 지연이 단단한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서린이. 서린이는 빛나는 구슬 같은 아이였다. 누구보다도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봉구가 결혼을 잘했네.”
연실은 연희 옆으로 가서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어떻게 저렇게 참한 아가씨를 만났대?”
그때였다.
“혹시 주방 실장님이신가요?”
지연이 연희에게 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런데요?”
연희의 뾰족한 반응에도 지연은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아유, 안녕하세요! 꼭 뵙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봉구 씨랑 결혼할 수 있었던 게 다 실장님 덕분이거든요.”
“내 덕에 봉구랑 결혼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지연의 말에 의하면, 지연은 봉구가 생선을 바르는 모습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조기를 정성스레 해체하고, 또 정성스레 먹는 모습에 완전히 빠져버려서 다음 학식에 생선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봉구를 만나러 갔다고. 그랬더니 봉구가 갈치를 정성스레 발라줘서 이 남자랑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장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생선을 구워주셨다고 하던데요? 그 덕에 제가 봉구 씨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흠흠.. 뭐 그런 걸 가지고. 애들이 잘 크려면 골고루 먹어야 하니까. 큼큼. 고춧가루를 버무렸더니 눈이 맵네.”
연희는 괜히 눈가를 소매로 찍어내며 자리를 피했다. 아마 지연의 그 한 마디에 지난 30년 동안 주방을 지키며 겪었을 수많은 서러움이 녹아내렸으리라.
그 사이 봉구는 한참동안 갈던 칼을 깨끗이 씻고 수육용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삼겹살을 길고 도톰하게 잘랐고 앞다리 살도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누었다. 그 후 파와 양파, 마늘을 꼼꼼하게 손질해 큰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 사라졌던 연희가 붉은 눈을 하고는 주방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장독대에서 퍼온 된장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봉구는 말없이 된장 그릇을 받아들어 된장을 푹 떠서 수육 솥에 넣었다. 금세 고소한 향이 주방에 퍼졌다.
그 솥을 곁눈질로 살펴보면서 봉구는 부지런히 배추를 다듬었다. 그러자 연희가 그 옆에서 무를 썰었다. 두 사람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고춧가루와 액젓을 주고받았고 마늘을 다져 함께 나누어 썼다. 그릇을 준비하던 연실은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올라와 몇 번이나 천장을 바라보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12시가 되자 모든 음식이 준비되었다. 봉구의 수육이 가지런히 썰려 큰 도마 위에 놓이면 지연이 부지런히 아이들 접시에 올려 주었다. 그 옆에서는 연희가 겉절이와 무채를 얹어주었다. 푸짐하게 접시를 채운 아이들은 잠시 후 이미 테이블에 놓인 브루스케타와 두 가지 맛 파스타, 그리고 색색깔의 샐러드를 보고 함성을 터뜨렸다. 그야 말로 잔칫날이었다.
“결혼 축하 합니다. 결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현경과 학규의 결혼 축하합니다.”
아이들이 현경과 학규를 향해 폭죽을 터뜨렸다. 두 사람 다 토마토소스가 잔뜩 튄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지만 어느 신랑 신부 못지않게 아름답고 화사한 미소로 가득했다.
그때 연실은 난생 처음 봉구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봉구는 지연과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고, 이어 서린이를 들어 안았다. 그 순간 연실은 자신이 옳고도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연실은 알고 있다. 하느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자 애를 쓰는 성직자들도 자신의 삶에 늘 의문을 품고 의심을 한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정말 신이 나에게 관심이 있기나 한 건지.
하지만 연실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품었던 의문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봉구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연실도 독신이다. 하지만 행복하다.) 봉구는 결혼을 통해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칼을 쥔 후부터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았다. 지연을 바라보는 봉구의 눈빛과, 봉구를 바라보는 지연의 눈빛에서 행복의 확신을 찾을 수 있었다.
보육원의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은 아니다.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도록 쓰라린 마음을 움켜쥐며 사는 아이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저런 사건에 휘말려 일찌감치 세상은 뜬 아이들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보육원을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연실은 늘 일주일 동안 금식을 하며 기도를 한다. 부디 안녕하길. 부디 좋은 사람들만 만나길. 부족했던 내 손길을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시길 빌고 또 빈다. 때로는 그 기도가 아픈 소식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오늘은 현경과 학규가 결혼을 하는 날이고, 봉구가 가족들과 환하게 웃는 날이다. 연실은 주책없게 자꾸 눈물이 났다.
구수한 보육원 된장 맛이 은은하게 감도는 봉구의 수육은 정말로 맛있었다. 설렁설렁 무친 것 같았던 겉절이와 무채도 시원하고 감칠맛이 돌았다. 참다못한 연실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오늘은 주님도 이해하실 거야.”
연실은 학규와 현경의 잔에, 지연과 연희의 잔에, 그리고 봉구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잘 컸다, 너희들. 정말 감사하다. 하느님께 너무 감사하다. 건배!”
누가 들어도 건배사를 해본 적 없는 자의 건배사였지만,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은 맥주보다 먼저 눈물을 삼킨 후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겉절이를 얹은 수육을 한 점 입에 넣었다.
“맛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분 좋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식사가 이어졌다. 연실은 서린이에게 고기를 먹여주는 봉구를 보며 오래 전 봉구를 떠올린다. 블랙홀 같던 침묵이 아직 저 안에 있다. 다만 이제는 그 침묵을 가두지 않고 세상을 간질이는 데에 쓰고 있다. 자신의 칼로, 자신의 요리로, 자신의 미소로.
봉구의 수육을 먹으며 연실은 생각한다. 인생은 정말이지 돼지고기 보쌈의 맛이라고. 오래 끓여 부드럽고 구수한 맛. 살코기와 비계가 적절히 섞여 쫄깃하고 담백한 맛. 이것을 함께 먹는 사람들 덕분에 인생이 잔치 같아지는 맛. 연실에게 오늘은 인생 최고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