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연희의 이야기
인생에는 가끔 야식의 맛이 들어가야 하는 거라고, 지금 연희는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 어른들만 조용히 모여 주방에 불을 켜 놓고는 매콤한 음식에 맥주를 한 잔 기울이는 것이다. 그럴 때면 이제껏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하나 둘씩 흘러나오고 그 덕에 마음도 풀어지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은 이런 야식의 밤에 연결된다는 것을 연희는 이 순간 깨닫고 있다.
일의 시작은 당연히 학규와 현경의 결혼식(이라기에는 너무 조촐했다. 하지만 너무 행복했다.)이었다. 현경과는 이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한동안 뜸하기에 사는 게 바쁜가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학규와 연애를 했단다. 아니, 연애는 대충 건너 뛰고 그냥 같이 살기로 했단다. 결혼식은 딱히 하고 싶지 않으니 햇님 보육원에서 밥이나 한 끼 같이 해먹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보육원에는 갖가지 재료들이 배달되어 왔다.
“아니, 나보고 이걸 다 어쩌라는 거야?”
커다란 돼지고기와 양파자루, 바게트와 스파게티 면이 도착했을 때 연희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간신히 자리를 만들어 재료들을 쑤셔 넣어놓기는 했지만 영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희도 이 보육원 주방 실장이다. 언니를 따라 보육원에 몸을 담기로 했고, 그 후 쭉 주방을 맡아 어림잡아도 수천 명의 아이들을 먹여왔다. 그런데 학규 이 놈의 녀석이 이런 식으로 내 주방에 침입하다니.
때늦은 고백이지만, 연희도 알고 있다. 연희의 요리 솜씨가 썩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연희의 요리는 간신히 간만 맞추는 수준이었다. 30년을 넘게 요리를 해왔으니 어느 정도 늘 법도 한데, 요리 실력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먹으려면 먹을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이 있으면 당연히 뒤로 밀려날 음식들만 계속 만들어졌다. 김치도 그랬고, 된장국도 그랬으며, 도라지무침이나 소시지 볶음도 그랬다.
그래도 연희는 열심히 만들었다. 나름 요리책도 보고 최근에는 유튜브도 찾아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맛이 썩 좋아지지는 않았다. 결국 연희는 어느 정도 체념을 했다. 체념을 했다지만 성실까지 포기하진 않아서 아이들은 늘 균형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판 한 쪽에는 꼭 고기 아니면 생선, 또는 계란이 올라갔고 푸른 나물과 묵은 나물 그리고 김치나 짭쪼름한 밑반찬까지 야무지게 올라갔다. 그 덕에 아이들이 잘 자고 잘 일어나고 잘 크는 거라고, 연희는 스스로 다독이며 여태 주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연희의 주방에 학규의 재료들이 쳐들어왔다. 그리고 때가 되자, 드디어 주인공도 쳐들어 왔다.
“실장님! 안녕하셨어요?”
학규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손을 내민다. 연희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맞이한다.
“퇴소한 지 십 년이 넘도록 찾아오지도 않으면서, 잘 지냈냐고? 그래, 잘 지냈다! 매일 밤 주방에 숨어드는 쥐새끼 같은 놈이 없어지니까 내가 아주 두 발을 쭉 뻗고 자요!”
“하하하하하”
연희의 얄미운 소리에도 학규는 웃기만 한다. 털털하고 수더분한 그 웃음에 연희도 웃고 말았다.
그날 점심은 봉구와 학규, 현경이 준비한 수육 보쌈에 난생 처음 보는 브루스케타라는 예쁜 요리와 파스타, 샐러드였다.
“구봉구, 너 제법이다?”
연희는 봉구 맞은편에 앉았다. 수육을 먹으며 연신 감탄에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촉촉하고 잡내 없이 돼지고기의 육향이 은은했다. 달큰하고 시원한 겉절이와 무생채와 함께 먹으니 그야 말로 꿀맛이었다.
“우리 아빠, 요리 엄청 잘해요!”
옆에 앉은 서린이가 엄치를 세워 들며 말한다. 연희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심장 한 구석이 막 가려웠다.
사실 연희는 아이들에게 막 살가운 편은 아니다. 언니 연실은 늘 아이들 가까이에서 함께 웃고 울곤 했지만 연희는 한 걸음 뒤에 떨어져 있으면서 주방 일을 도맡아 했을 뿐이었다. 늘 앞치마를 멘 채로 칼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연희를 무서워했다. 그런 서먹함이 쌓이고 쌓여 연희는 그저 차가운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연희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역시 봉구 덕분이었다.
“사실 제가 봉구 씨랑 결혼할 수 있었던 게 다 실장님 덕분이거든요. 실장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생선을 구워주셨다고 하던데요? 그 덕에 제가 봉구 씨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평소 웬만한 일에는 감정 기복이 없는 연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가 시큼해졌다. 결국 그녀는 잠시 자리를 피해 파란 하늘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저 주방에서 얼마나 많은 생선을 구웠던가. 사실 생선은 아이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반찬은 아니다. 먹기도 불편하고 자칫하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도 손도 많이 가고 몸에 냄새가 많이 배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래도 연희는 부지런히 생선을 사다 구웠다. 비록 솜씨는 없어도 최대한 많은 요리를 먹이고 싶었다. 그런 연희의 마음이 오늘 보답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연희는 봉구가 편하게 느껴졌다. 녀석, 내가 구워준 생선을 먹고 여자한테 작업을 걸었단 말이지? 그 생각에 혼자서 속으로 키득거리며 연희는 부지런히 보쌈을 먹었다.
그날 저녁 메뉴는 치킨이었다. 어제 한 가득 배달되어 온 닭 정육을 봉구가 손질해서 먹기 좋게 잘랐고, 현경이 튀김 반죽을 입히면, 그 옆에서 학규가 부지런히 튀겼다. 그러는 동안 지연은 언니 연실과 함께 아이들 방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지도했다. (지연은 정말이지 장군님 같았다. 그 예쁜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카리스마가 나오는 걸까.) 저녁때가 되자 아이들은 청소에 지친 것 같았지만, 주방에서 피어오르는 치킨 냄새에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식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삭하고 고소한 치킨, 거기에 학규가 집에서 미리 담가온 수제 피클, 언제 했는지 모르겠지만 짠, 하고 나타나듯 완성된 주먹밥까지. 또 거나한 한 상이 차려졌고 아이들이 배불리 먹었다. 아이들이 방으로 돌아가고 어른들끼리 남아서 또 한바탕 뒷정리를 하자 어느 새 시간은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실장님, 오랜만에 야식 해 먹을까요?”
“니들끼리 해 먹든가. 오랜만에 학창시절 추억도 떠오르고 좋겠네.”
이상하게도 학규의 말에는 자꾸 뾰족하게 답을 하게 된다. 그러자 현경이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실장님~ 실장님이 같이 있어주셔야 재밌죠. 우리 야식 모임의 시작이 실장님이었잖아요.”
“알긴 아네! 내가 학규 저 놈 담배 안 피게 하려고 여기 열쇠 준거잖아.”
그 말에 졸려서 눈이 감기던 서린이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학규 삼촌! 담배 피워? 담배 피우면 안돼! 폐가 썩어!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그랬어! 담배 안돼!!”
“아니야, 삼촌 지금은 안 피워. 그때 잠깐 피우고 서린이 말처럼 폐가 아픈 것 같아서 얼른 그만 뒀어.”
학규의 쩔쩔 매는 모습을 보며 다들 한참을 웃었다.
“실장님, 진짜예요? 진짜 학규 오빠 담배 끊게 하려고 주방 열쇠 주신 거예요?”
“응.”
그때 학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박박 깎은 짧은 머리에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반항기 어린 눈빛. 누구 하나 걸려봐라, 하듯 골목을 휘젓고 다니던 학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 가스 불로 담배를 피우다가 연희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평소 무섭기로 소문난 연희에게 걸렸으니 학규도 잔뜩 긴장을 했다. 하지만 연희는 혼내기는커녕 주방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거 피울 시간에 라면이나 끓여 먹든지.”
그 뒤로 학규는 담배를 끊고 부지런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보육원에서 받는 용돈으로 온갖 라면을 섭렵하다가 지겨워지면 콩나물도 넣다가 몰래 냉장고에서 소시지를 꺼내 넣어 먹기도 한다는 것을 연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냉장고 속 재료가 아깝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이들 먹이려고 사둔 것이었으니 먹는다고 혼낼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마음 한켠이 편하지 않았다. 학규가 밤마다 음식을 해 먹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봉구로, 현경으로 늘어날수록 연희는 주방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원래도 못하던 요리를 더 못하게 된 것만 같았다. 학규의 요리가 훌륭해질수록 그것이 모두 솜씨 없는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민망했다.
시간이 흘러 학규와 봉구, 현경이 모두 떠나고 난 후에도 연희는 이 자리를 지켰다. 무탈하게 아이들을 먹이고 키워서 내 보냈지만 그럴수록 죄책감이 자꾸 늘어갔다. 더 좋은 음식을 먹이지 못했다는 것, 더 맛있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연희는 자신의 비밀을 하나 폭로해버렸다.
“그런데 말야, 사실, 그 때 나도 담배를 피려고 주방에 들어왔었어.”
“네에?????”
연희의 말에 가장 놀란 건 바로 학규였다. 학규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황 그리고 배신감이 떠올랐다.
“왜? 나는 담배 피우면 안 되냐? 그때 넌 미성년자였고 난 어른이었어.”
학규는 잔소리를 대신해줄 서린이를 찾았지만 이미 서린이는 지연과 함께 자러 방으로 간 후였다.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억울함을 꿀꺽 삼키면서 학규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나도 그 때 끊었어. 내가 피우면서 너한테 끊으라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잘 하셨어요. 건강하셔야죠.”
현경이 다시 한 번 연희의 옆구리에 파고들며 말했다.
“건강해야지. 이 아이들 다 먹이고 키우려면.”
잠시 후 한 상에 둘러 앉은 봉구와 연실, 연희와 현경 앞에 학규가 벌건 음식을 하나 내려 놓았다.
“남은 재료로 만들었어요. 매콤한 토마토 스튜와 냉 제육입니다.”
매콤한 향이 식욕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연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날을 위해 아껴둔 게 있지.”
팬트리 안으로 사라진 연희는 잠시 후 양 손에 와인을 들고 나왔다.
“우와, 이거 디게 좋은 건데? 실장님,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여기 졸업한 아이 하나가 소믈리에가 됐잖니. 지난번에 와서 주고 갔는데 먹을 일이 있겠나 싶더니만, 먹을 일이 있네.”
그렇게 훌륭한 테이블이 차려졌다. 모두가 잠든 밤, 주방 한 쪽에만 불이 켜져 있다. 15년 전 어느 날 밤처럼. 세 명의 청소년은 어느 새 어른이 되었고, 그들의 모임을 모른 척 하던 두 명의 어른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거기에 지연까지 더해져 여섯 명의 어른이 이 밤을 밝히고 있다.
“건배!”
“건배~!”
잔을 부딪친 뒤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달콤 쌉싸름한 입맛 위로 학규가 만든 스튜가 올라간다. 눅진하고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다. 그 맛에 연희는 놀라면서도 감동을 했다. 학규는 이런 요리를 하는 사람이구나. 이토록 놀랍고 멋진 음식을 만드는구나. 그러면서도 자꾸 미안했다. 이렇게 좋은 요리를 하는 아이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지 못한 것이.
“제가요, 실장님. 실장님이 왜 요리를 못하는지 오늘 깨달았어요.”
그 순간 학규가 연희를 도발하듯 말했다. 그 말에 현경도, 지연도, 심지어 봉구까지도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연희가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뭔데, 그 이유가?”
연희는 오늘 내 요리 인생을 끝내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학규에게 물었다.
“조미료. 여기 조미료가 없어. 하나도 없어.”
“진짜?”
학규의 말에 가장 먼저 놀란 건 봉구였다.
“실장님, 조미료 없으면 안돼요. 요새 조미료는 몸에 나쁘지도 않고요. 다 발효된 콩이나 사탕수수로 만든 거라서 괜찮아요. 우리 실장님 그 동안 힘드셨겠네.”
봉구가 이렇게 길게 말한 것을 들어본 건, 연희도, 언니 연실도 난생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어벙벙하던 연희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래? 조미료가 나쁜 게 아니야? 나는 뉴스에서 하도 나쁘다고 해서.”
“그건 옛날 얘기고요, 요새는 다 괜찮아요. 그리고 많이 쓰실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조미료 없이 그 정도면 훌륭한 거 아냐? 우리 실장님 솜씨가 대단했네.”
현경이 연희를 띄워주며 웃는다.
“나 가끔 생각나잖아. 우리 실장님 김밥.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맞아. 실장님이 김밥 하나는 끝내줬어. 아침에 잔뜩 먹고 가야 돼. 소풍 가면 친구들이 다 달라고 하니까.”
이후로도 한참을 먹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부분 연희가 이 주방에서 해준 요리 이야기였다. 받아오는 된장이 그때그때 맛이 달랐던 이야기, 다 같이 담갔던 김치가 어떤 건 너무 짜고, 어떤 건 너무 싱거워서 한 해 동안 고생했던 이야기, 간식으로 끓인 라면이 한강이라 막막했는데, 그때 실장님이 김치를 후루룩 볶아서 맛있게 곁들여 먹었던 이야기.
야식을 먹으면서 연희는 생각했다. 인생에는 야식의 맛이 들어가야 한다고. 매콤함을 핑계 삼아 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 맛. 나와 너의 기억을 짜 맞추며 오해를 풀고 서로를 위로하는 맛.
투명하고 날씬한 와인잔을 잡은 연희의 손은 주름졌다. 얼마나 많은 배추와 콩나물, 생선이 이 손을 거쳐갔을까. 또 얼마나 많은 찬물을 흘려보내며 쌀을 씻었을까. 매끈한 와인잔을 잡기에는 너무 투박해보였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손이 참 예쁘다고 연희는 생각했다. 그리고 남은 날 동안도 열심히 요리를 해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