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빔밥의 맛이라고 지금 봉구는 생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묵은 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 말이다.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나물들이 햇빛에 바싹 말라 있다. 그러다 봉구의 손에서 다시 물에 담가져 불어나고, 물기를 꼭 짠 다음 양념을 조물조물 무쳐서 볶아지는 것이다. 그 나물(시래기도 있을 것이고 우거지도 있을지 모르겠다. 취나물이나 곤드레도 섞여 있을 것이다.)들을 차례로 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얹고 계란 노른자와 고소하게 볶은 소고기를 얹은 다음, 그 위에 벌건 약고추장을 넣고 빛나는 참기름을 부어 살살 비빈다. 이것은 하나의 완전한 음식이라고 지금 봉구는 생각하고 있다.
일의 시작은 며칠 전 학규와 현경의 결혼식이었다. 지연이 그렇게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국 보육원에서의 식사로 결혼식을 갈음했다. 봉구 입장에서야 서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보육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고나서부터 마음이 싱숭생숭 하기 시작했다.
워낙 살가운 성격이 아니다보니, 봉구는 보육원을 떠난 후로 연실 원장님이나 연희 실장님에게 따로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학규는 종종 연락을 하는 것 같았고, 그런 학규가 별 말 없으니 다들 무탈하게 지내시나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봉구가 결혼할 때에는 두 분 다 결혼식을 보러 오셨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래서일까. 봉구는 보육원으로 향하는 걸음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라도 학규에게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봉구는 힘들게 참아냈다. 그렇게 보육원에서의 1박 2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주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좋은 분들이시더라.”
그날 밤 일찌감치 서린이를 재우고서 지연은 봉구에게 맥주 한 캔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옆 자리에 앉아 봉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자.”
“......”
봉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지연이 고개를 들고 봉구를 바라봤다.
“왜? 혹시 봉구 씨 마음이 어려워?”
“지연 씨...”
봉구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응. 말해봐. 봉구 씨, 하고 싶은 말 다 해.”
“나는... 누굴까...”
봉구의 그 말에 지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봉구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 지연은 자신의 흔들림이 봉구에게 겁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봉구를 껴안았다.
“사랑하는 우리 봉구 씨지. 봉구 씨는, 봉구 씨야. 멋진 남자, 멋진 남편, 멋진 아빠 구봉구.”
지연은 그 상태로 한참을 있었다. 이럴 때 자신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준비가 되자 지연은 다시 봉구를 안았던 팔을 풀고서 봉구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좋은 아들이야, 구봉구 씨는.”
그러자 봉구의 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마중이라도 나오듯이 눈물이 떨어졌다. 지연은 다시 봉구를 안아주었다.
“좋은 아들이지. 잘 컸고 나랑 결혼도 잘 하고 예쁜 딸도 낳아서 잘 키우고 있는, 좋은 아들이지.”
봉구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꺽꺽 대며 울었다. 지연은 알고 있었다. 이 눈물이 이 남자가 흘릴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라는 것을.
다음 날 아침 봉구는 여느 날과 같이 새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지연과 서린이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지연은 찐-한 입맞춤을 남기고 출근을 했고, 서린이는 나팔꼿 같은 손을 흔들며 유치원 안으로 사라졌다.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봉구는 항상 그랬듯이 믹스커피를 두 봉지 털어서 커피를 타 식탁에 앉았다. 피할 수 있으니 피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감정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물음이었다. 호르몬이 불균형하게 쏟아지는 사춘기 시절이 아니라 하더라도 보육원 아이들은 이 물음을 심장 한 구석에 꽂은 채 살아야 했다. 아주 어린 시절, 나와 타인을 구분하기 시작할 때부터 말이다. 나는 저 아이와 달랐다. 부모님이 있는 아이들과 나는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봉구는 자기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학규에게 물어봤지만 학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봉구는 어떤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서 그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하루에 두 세 번씩 샤워를 했다. 모든 빨래를 햇볕에 널어 말렸고 방 청소도 지독하게 깨끗이 했다. 그럼에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봉구는, 그것이 외로움의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냄새는 봉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있는 아이들에게서 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 고심해서 고른 바디 샴푸의 냄새, 엄마가 손수 발라준 로션의 냄새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보육원에도 섬유유연제가 있고 바디 샴푸를 쓴다. 하지만 뭔가 비어있었다. 그 비어있음이 바로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것을 봉구는 천천히 깨달았다.
있음과 없음에 대한 감각은 있음을 기반으로 한다. 뭔가가 있어봐야 없다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둠은 빛의 없음이고, 배고픔은 음식의 없음이다. 때문에 봉구는 부모의 없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부모가 있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의 없음은 생각보다 지독하게 봉구를 쫓아다녔다. 세상은 봉구를 ‘부모의 없음’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놓고 말을 걸었다. 꼭 우리 안에 갇힌 동물처럼 봉구는 그 이름표를 달고 살아야했다. 그 우리에서 나가본 적 없는 봉구 입장에서는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어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봉구가 말이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다행히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는 부모 없음의 프레임이 점점 옅어졌다. 아무도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있는 부모조차 희미하게 지우고 싶을 만큼 청춘은 강렬했고 뜨거웠다. 그리고 그 뜨거움이 봉구 앞에 지연을 데려다 놓았다.
지연은 봉구의 ‘부모없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지연에게 부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봉구는 지연의 차고 넘치는 자신감 뒤에 숨어버렸다. 지연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 문제없을 테니까. 그렇게 결혼을 했고 서린이를 낳았다.
서린이의 탄생은 어떻게 보면 결혼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애써 마음을 다잡아오던 봉구도 막상 태어나 꼬물거리는 서린이를 보는 순간 온 우주가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 작은 아기를 내가 어떻게 기른단 말인가. 나는 부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한 가정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고작 세 명이서 어떻게 한 집에 살지? 우리 사이가 너무 가까운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봉구는 몇 년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서린이를 제대로 안아준 적이 없었다. 서린이가 앙! 하고 울면 그 순간 눈을 번쩍 떠서 분유를 타오긴 했지만 먹이는 것은 언제나 지연의 몫이었다. 작은 서린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욕조에 넣고 비누칠을 해주긴 했지만 토닥거리면서 재우는 것도 지연이 했다. 봉구는 늘 필요한 일을 했다. 하지만 아빠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덜컥 회사에서 잘렸다. 그러자 서린이와 단 둘이 남겨진 시간이 많아졌다. 겁이 많은 봉구와는 달리 서린이는 엄마를 닮아 거침이 없었고, 늘 먼저 다가와 손을 잡거나 품에 안겼다. 그것은 서린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서린이는 처음부터 부모가, 아빠가 있었으니까.
서린이가 손을 잡으면 봉구는 그 손을 살짝 쥐었다. 조금만 더 세게 잡았다가는 서린이의 손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서린이가 봉구의 목을 끌어안을 때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서린이의 몸에 익숙해졌고, 서린이의 힘에 대한 감각도 생겼다. 이제는 먼저 서린이를 안기도 하고 높이 던지기도 한다. 아빠가 된 것이다.
부모의 없음에 대한 감각은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봉구는 스스로 없음의 상태를 있음으로 만들었다. 그 뿌듯함이 지금의 봉구를 살게 했다.
그래서 보육원에 가기 싫었다. 그곳에 가면 다시 자신의 ‘부모 없음’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또 다시 달라붙을 것이다. 어쩌면 서린이가 낯설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봉구는 겁이 났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현관문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바로 문자가 왔다.
한국택배
귀하의 택배가 배달되었습니다.
보낸 이 햇님보육원 김연희
봉구가 나가보니 커다란 박스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부피에 비해 무겁지는 않았다. 박스를 뜯는 순간,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온 듯 한 흙냄새가 났다. 박스 안에는 묵은 나물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봉구 보아라. 지난 번 왔을 때 챙겨주려고 했는데 술을 진탕 먹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뒤늦게 택배로 보낸다. 때마다 여기저기서 얻기도 하고 내가 직접 따기도 한 나물들이다. 좋은 볕에 잘 말려 두었던 것이니 너 알아서 나물로 무쳐 서린이랑 지연이 잘 먹여라. 물론 너도 잘 챙겨 먹고. 학규랑 현경이한테는 따로 보낼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봉구는 울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여성 호르몬이 많아지나보다 생각을 하면서. 연희의 편지에는 그 흔한 인사 한 마디도 없었지만 봉구는 바로 그런 말들이 자신이 원하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봉구는 넘어갔다. 이제 없음의 감각은 더욱 뚜렷해지겠지만 그 저변에는 있음이 존재한다. 봉구에게는 연희가 있고, 연실이 있다. 좋은 날이 오면 찾아갈 곳이 있고 때마다 나물을 보내주는 곳이 있다. 오래 전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었던 외로움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 흙냄새가 봉구에게로 스며들었고, 볕에 말렸다던 이 나물들이 꽃처럼 포근했다.
봉구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나물들을 맛있게 만들어서 지연과 서린이를 먹이자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다 식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은 봉구는 잘 마른 나물들을 물에 담가 불렸다. 그리고 오후에는 나물을 깨끗이 씻어 들기름과 국간장,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후 팬에서 달달 볶았다. 고사리에는 들깨가루도 뿌리고, 취나물에는 참깨를 부숴 넣었다. 그렇게 네 가지 종류(비록 이름은 다 알지 못하지만)의 나물이 완성되었다.
그날 오후 서린이를 데리러 간 봉구는 늘 그렇듯 재현이의 손을 잡고 나오는 서린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빠, 오늘 재현이 우리 집에서 놀아도 돼?”
“그럼.”
옆에서 난감해하는 재현의 엄마에게 봉구는 먼저 말을 걸었다.
“재현 어머니, 오늘 저녁에 저희 집에 와서 저녁 드세요. 제 고향에서 나물을 보내와서 저녁에 비빔밥 해먹으려고 하거든요.”
“어머, 비빔밥이요? 저랑 재현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집으로 돌아와 봉구는 지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저녁 재현이네 식구들이랑 같이 밥 먹자. 메뉴는 비빔밥. 고향에서 나물 보내주셨어.]
고향이라는 말을 쓸 때에 봉구는 잠깐 울컥했다. 그리고 그 문자를 받은 지연 역시 울컥했다. 하지만 지연은 울컥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응. 일 얼른 끝내고 갈게요. 나 바빠서 더는 답 못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는 지연의 말에 싱긋 웃으며 봉구는 쌀을 씻어 불렸다. 그리고 나물과 함께 온 된장을 푸욱 떠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온 집에 구수한 냄새가 가득 했다.
그날 저녁 서린이네와 재현이네 여섯 식구가 한 식탁에 모여 앉았다. 봉구는 커다란 그릇 여섯 개에 방금 지은 밥을 고르게 펴 담고 그 위로 나물을 가지런히 담은 다음, 볶은 소고기도 얹었다. 한가운데에 계란 노른자를 조심스레 올리고 어른들 밥에는 약고추장을, 아이들 밥에는 간장을 둘러 주었다. 구수하게 끓인 배추 된장국과 곱게 구운 조기 구이까지, 정말이지 완벽한 한 상이 완성 되었다.
“이거 정말 한정식 집에 온 것 같네요.”
재현 아빠가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저랑 너무 비교되는데요. 어쩜 이렇게 요리를 잘 하세요.”
재현의 엄마가 멋쩍어하며 말하자, 봉구가 얼른 답했다.
“재현 어머님은 책 좋아하신다면서요. 전 요리를 좋아하는 거고요. 사람마다 다 다른 거죠.”
한동안 모두들 말이 없었다. 비빔밥 속 나물들은 맛이 비슷하면서도 하나하나 달랐다. 모두가 고소했지만, 어떤 것은 씹어야 고소했고 어떤 것은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고소함을 남겼다. 약고추장 속 말린 버섯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존재감을 보였고 된장국은 비비느라 바쁘고 씹느라 바쁜 인간들을 한숨 돌리게 해주었다.
한 해 동안 부지런히 싹이 났다가, 누군가의 손에 거두어져 햇볕을 가득 머금었던 나물을 삼기며 봉구는 생각했다. 인생은 아무래도 비빔밥의 맛이라고. 갖가지 시간과 경험, 감정이 뒤섞여 결국 인생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맛.
인생은 봉구에게 없는 것을 가져다가도 반드시 무언가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부모의 없음에서 원장님과 실장님의 있음으로, 가족의 없음에서 지연과 서린이의 있음으로 말이다. 그 모든 시간을 매일 아침 떠오른 햇님이 지켜봐 주었고, 그 햇님이 키우고 말린 나물까지 인생은 봉구에게 선물한 것이다.
봉구는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손으로 지연과 서린이를 먹이겠다고. 그것이 인생에 대한 보답이라고. 언젠가는 직접 나물을 따 햇볕에 말린 다음,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나물 역시 멋진 비빔밥이 되어 인생을 가르치고, 즐거움을 가르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재현 아빠가 문득 말을 걸었다.
“서린 아버님, 저희 학교 급식 조리사로 와 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