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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Jun 03. 2021

일곱 여성의 죽음에 관한 소설, 오네이론

Laura Lindstedt, Oneiron (2015)

라우라 린스테드는 불과 세 권의 소설로 핀란드의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고 '핀란드 문학계의 락스타'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첫 소설 Sakset(가위, 2007)로 헬싱긴 사노맛 지 문학상을 받았고, 8년 후 두 번째 소설인 Oneiron으로 핀란디아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 나온  세 번째 소설 My Friend Natalia는 사실 야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찾아봤는데, 소문대로 꿀잼이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두 번째 책의 제목 Oneiron은 작가가 부모님과 핀란드 북부를 여행하던 중에 머릿속에 우연히 떠오른 단어로, 그리스어로는 '꿈'을 뜻한다고 한다.

 일곱 명의 각기 다른 국적과 상황의 여성들이 죽어서 만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림보 같은 곳이 바로 오네이론이다.

당신의 눈이 반쯤 멀었다고 상상해 보자.


절망적인 상황에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노력은 일부러 시력검사를 한없이 미루는 것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딴생각을 하는척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시력 검사실의 희미한 칠판은 어느덧 편안한 의자와 영화관 스크린으로 바고, '당신', 그러니까 독자는 일곱 명의 여성 중 마지막으로 합류한 오스트리아 십 대 소녀 울리케가 되어서 뉴욕의 행위예술가 슬로미스, 모스크바의 알코올 중독자 폴리나, 브라질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싱글맘 로사, 쌍둥이를 임신한 프랑스 마르세유의 니나, 식도암으로 투병한 네덜란드인 윌스, 슈퍼모델이 되고 싶은 세네갈인 마이무나와 함께 죽음의 춤(danse macabre)을 추기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으로.


영어를 비롯한 13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된 439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스포일러가 싫은 분은 피해 가세요!) 림보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던 그들은 서로의 죽음을 목도하며 환송하는 끝에 하나씩 빛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의 죽음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도 아니었으며, 약간의 우연의 일치도 놀라운 수준은 아니다. 한 여성이 사라질 때마다 신문기사가 그들의 죽음을 요약한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기사로 나타난 죽음의 무게는 같지 않다.


폴리나의 죽음은 직장에서 그녀를 대체할 사람을 찾는 반 페이지짜리 구인공고로 마무리된다. (참고문헌으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과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이 언급되기도 하고, 짧은 러시아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러시아에 대해선 피상적으로 다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작가가 일곱 여성의 삶을 다 살아볼 수는 없을 테니 상상력으로 메꾼 부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이 세계에 가장 먼저 등장해 가장 마지막에 퇴장하는 슬로미스의 죽음은 뉴욕 타임스에 장장 세 페이지의 기사로 그 의미가 서술된다. (이 책에는 유대이즘과 거식증에 관한 슬로미스의 논문이 실려있는데, 그 부분은 나의 관심사와는 너무도 달라 한 마디로 노잼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위협해 온 병마의 그늘에서도 가발을 포기하지 않았던 윌스의 죽음은 평범한 부고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간병인들의 대화와 윌스의 어린 손녀에게 그 어머니가 죽음을 설명하는 대화는 삶의 참 많은 부분의 진실을 그리고 있다.

 연극무대의 주인공 같은 죽음을 맞은 로사의 경우는 그녀의 죽음이 가진 여러 미스터리하고 선정적인 요소들이 강조되어 지라시를 읽는 기분이다. 르 몽드 지는 니나의 사연을 또 다른 희망으로 풀어나간다.


작가 소개

오네이론 북 토크 (영어) 따르면 1976년 생인 라우라 린스테드는 네 살 때부터 바깥세상과 글자의 존재, 그 둘 사이 관계를 생각했다. 알파벳을 배우기도 전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라 필기체 같이 휘갈긴 무언가를 어머니에게 편지로 주곤 했다. 12살 때 100페이지짜리 SF 소설을 썼으며, 청소년기엔 시 대신 산문으로 전향했고, 1993년부터는 꾸준히 일기(요즘은 주기)를 써 왔다. 헬싱키 대학교에서 역사와 문화유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의 존재를 믿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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