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주인공에게 욕을 하고 싶은 적은 처음이다. 주인공 아르심의 고통에 좀처럼 공감할 순 없지만, 인정해야겠다. 잘 쓴 소설이라는 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아르심은 우연히 의사인 밀로스를 만나 욕정을 불태운다. 첫눈에 반한 두 남자의 불타오르는 연애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처음 만난 1995년은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긴장상태가 고조되며 1999년의 코소보 전쟁으로 치닫기 전이고, 아르심은 알바니아인이고 밀로스는 세르비아인이며, 아르심에겐 부인과 (밀로스와 처음 만난 순간엔 몰랐지만) 곧 태어날 자식이 있다는 것을 빼곤 말이다. 아르심이 이슬람교도라는 것은 이 모든 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문제다.
첫 부분은 좀 지루하다. 외동아들인 아르심은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명으로 사랑이라기보단 호감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말수가 적고 배움은 짧지만 현명하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셰와 스무 살에 결혼했다.아르심이 밀로스와 처음 만나 사랑을 느낀 날, 시모 간병까지 했던 아이셰가 임신 소식을 알리자 그는 아내를 팬다. 부인이 임신했다고 하는 아르심에게 밀로스는 아르심의 꿈,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소리 내어 말하게 한다. 아르심이 쓴 '소녀와 그것'이라는 눈먼 소녀와 초월적 존재(악마)가 나오는 이야기를 밀로스는 좋아하고 격려한다.
밀로스와 밀회가 잦아지면서 아르심은 점점 더 가정에 소홀해지지만, 그래도 부인이랑 할 건 다 했는지 아이셰는 둘째를 임신하고, 아이들로 인해 집은 더욱더 견딜 수 없는 곳이 된다. 알바니아인들에게 닥쳐온 위기를 예감한 아르심은 처형인 베스닉의 가족과 함께 프리슈티나를 떠나며 밀로스와도 작별하게 된다.
밀로스가 없는 곳에서 아르심은 공허한 삶을 산다. 그사이 셋째도 태어났고, 물질적으론 풍부하지만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두 아들들은 학교에서 자주 주의를 받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문제가 코소보를 떠나 이곳으로 온 것이라고, 두 언어와 문화, 종교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지금까지 순종하는 여성으로만 나타난 아이셰는 아이들 문제에 있어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는 아이들이 소외된다는 것을, 코소보에서 왔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일종의 낙인을 찍어 무시한다는 것을 안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권리가 없거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능력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을 거둘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교사들과 상담하고 다른 학부모들과 통역을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나눈다.(아이가 다섯 살일 때 남편 나라로 다시 온 나로서는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되어서 가장 몰입해서 읽은 부분이다.)
부인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르심은 무엇을 했는가? 그는 인터넷으로 어떤 젊은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잠시 파멸로 치닫는다. (응징의 쾌락이여!) 13개월 형을 받은 아르심은 감옥에서 다시 고전문학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감옥 같은 삶에서 그는 문학을 열망하고, 밀로스를 열망하지만 그의 열망은 항상 옆에 없는 무언가다. 그 공허한 실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셈이다.
작가 소개
1990년 생인 Pajtim Statovci는 2살 때 가족과 함께 정세가 불안하던 코소보를 떠나핀란드로 이민 온 작가다.첫 소설 My Cat Yugoslavia(2014)로 일간지 헬싱긴 사노맛의 등단 작가상을 받았고 무수한 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Statovci의 문학적 재능은 어마 무시하다(Prodigious)"고 표현했다.헬싱키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Crossing(2016)에 이은 세 번째 소설 Bolla(2019)로 최연소 핀란디아 문학상 수상자(29세)가 되었다. Bolla는 헬싱키 시립극장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