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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Dec 29. 2021

그림자와 서늘함

Quynh Tran, Varjo ja viileys (2021)

루넨베리 문학상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시인 루넨베리의 이름을 딴 상으로, 1986년부터 매년 루넨베리의 날(2월 5일)에 상금 2만 유로와 함께 시와 소설 작가에게 주어지고 있다. 매년 8~10명의 후보가 발표되는데, 2022년 후보 중에 아시아인처럼 생긴 사람이 있어 호기심에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다. (첨언: 이 작품은 2022년 루넨베리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이름은 Quynh Tran(1989~). 핀란드 서부 연안의 오울루와 바사 중간쯤 위치한 피에타르사리(스웨덴어로는 Jacobstad)에서 자라 스웨덴 말뫼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인물이다. 11월에 이미 핀란드 공영방송 Yle의 스웨덴어 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의 원본은 스웨덴어(Skugga och svalka)인데, 나는 스웨덴어를 조금 배우기는 했으나 어휘가 많이 부족한 관계로 핀란드어 번역본을 읽었다.


작가가 자라난 피에타르사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엄마인 마, 형 히에우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를 중심으로 베트남 가족의 핀란드 정착기를 그려낸다. 마는 좀처럼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은 당찬 인물로, 작은 아들을 내세워 세탁소에서 일을 구하는가 하면 사진과 영화에도 관심을 가진다. 흡연자인 그녀는 카드 도박과 블루베리 따기에 몰두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그녀의 빅픽쳐다. 가죽재킷이 잘 어울리는 큰아들 히에우는 아주 가끔 놀랄 만큼의 천재성을 보이기도 하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꽤 있지만, 종종 엄마 돈을 뽀린다든지 경찰이 등장할 만한 말썽을 피우다 엄마에게 흠씬 두드려 맞는 아슬아슬한 청소년이다. (히에우는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이가 나오는 인물인데, 가족의 정착 초기부터 그의 15세 무렵이 이 책이 다루는 시간대다.) '나'는 형이 상의 위 단추만 채우고 다니는 걸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형의 여자 친구 라우라를 남몰래 짝사랑하기도 하지만 크면서 자꾸 엇나가는 형을 보면서 공부에 몰두하게 된다.

사실 '나'의 어린 시절 엄마는 어린 '나'를 지인들에게 맡겨둔 채 형만 데리고 다른 아줌마 아저씨들과 함께 블루베리를 따러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종종 이때의 일을 비롯해 어린아이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일들을 '영혼의 눈'으로 상상하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라우라를 갈망한다. 또한 누군가는 이 책에 영화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화양연화>를 보러 가거나,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스토리>의 포스터에서 아버지의 게다 신에 햇살이 내려쬐는 모습이 서술되는 식이다. 아예 영화 <탐포포>의 이름을 딴 소제목도 있다.

아마도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과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했을 이 소설은 베트남 식당과 사진관, 세탁소에서 일하는 아시아인을 본 적이 있는 내게는 꽤나 실감 나게 다가왔다. 범상치 않은 표지 때문인가 이거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 하고 탐독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야기는 별다른 일 없이 저 하늘에 떠가는 구름처럼 잔잔하게 흘러간다. 물론 관점에 따라 중학생인 히에우의 자유분방한 이성교제가 좀 충격적일 수는 있지만.


핀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핀란드에 거주하는 베트남어 사용자는 11,562명으로, 중국어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언어 비중을 차지한다. 이 중 베트남 국적자는 절반이 조금 넘는 6,630명에 불과하다니 1979년 8월 보트 난민(Boat People)들의 핀란드 도착 이후 그 후손들이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책에는 베트남인들의 정착을 도와주지만 그들에게 잊히고 외면당하는 군넬, 엄마에게 빌린 베트남어로 더빙된 일본 영화에 푹 빠진 떼이떼이 아줌마, 엄마에게 고급스러운 콘셉트의 아시안 식당을 개업하자고 바람을 넣는 란 팜, 일본과 일본 영화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떼오 씨 등 다채로운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책의 제목 "그림자와 서늘함"은 떼이떼이 아줌마가 잠도 못 자고 블루베리를 따다 한밤중에 보았다는 표범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의 소제목이기도 하다.(물론 추운 나라 핀란드에는 표범이 없다.)

Bibliography(2021)

Quynh Tran, Varjo ja viileys (원제 Skugga och svalka, 핀어 번역 Outi Menna), Teos & Förlaget, 2021


Movies

오즈 야스지로, <도쿄 스토리>(Tokyo Story), 1953

왕가위,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2000

이타미 주조, <Tampopo>,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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