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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수 Sep 17. 2020

사람은 쇠약해져야만 한다

지난 봄, 코로나 19가 시작되어 남편의 하루 세끼를 해주던 때. 살집이 불어 저녁을 건너뛰었다. 끼니 말고도 사이 시간에 주전부리가 잦았었다. 하루 두끼만 먹었지만 실망스럽게도 몸무게는 그닥 줄지 않았다. 3주가 넘어서도 체중은 겨우 1킬로그램만 줄었다. 한달이 지난 어느 날부터는 옆구리가 예리하게 아파왔다. 담이 걸렸나 했는데 물집이 잡히고 통증이 거세졌다. 대상포진이었다. 


여름부터 한의원을 다닌다. 유명한 한의원들은 저마다 주종목이 있다. 이 한의원은 식이로 병을 고친다는 곳이다. 철저하게 식습관을 관리해서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다섯 가지 정도 추려낸다. 이로운 걸 먹기보다 해로운 걸 피하는 방식이다. 고춧가루로 안돼, 고기도 안돼, 밀가루도, 과일도. 안되는 식재료가 태반이었다. 어느 정도 잘 따라했는데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간지럽고 저려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을 꼬박 새고도 낮에도 못잤다. 서울대 신경과를 찾아 검사를 받았더니 심각한 철분 부족이라고 했다. 당장 철분 치료에 들어갔다. 한의원에서 절대 금기한 음식이 소고기와 달걀노른자였는데, 철분은 소고기와 달걀에 많다. 그날로 식이 조절은 때려치우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있다 . 나이가 들면 식습관은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배웠다. 


강아지가 늙으면 산책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내가 이 길을 걸어서 돌아올 수 있을까. 집을 나서며 걱정을 한다고 한다. 키우는 강아지는 이제 여덟 살 반이 되었다. 소형견은 여덟살 부터가 노령견이다. 노령견이 되자 마자 산책횟수와 시간이 줄더니 올 여름부터 잠이 부쩍 늘었다. 활동량이 줄고 늘어지는 모습이 사람과 닮았다.

 

개도 사람도 늙으면 눈과 귀가 어두워진다. 맛을 잘 못느끼고 담백한 음식을 찾게 된다. 덜 듣고 덜 말하고 덜 화내게 된다. 잘못하지 않아도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하고 쉽게 넘어가길 바라게 된다. 덜 억울하고 덜 분노하게 된다. 지금 나의 분노가 내 스물 둘의 분노와 모양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보단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만나거나 있는 관계의 유지에 힘을 더 쏟는다. 젊어서 실수한 사이일지라도 다시 얼굴을 보기도 한다. 용납하기도 한다. 지금 이 나이에 뭘 가리냐, 뭘 재고 따지냐,는 말은 앞 뒤 설명이 없어도 철학적 이해가 가능한 조언이다. 나이들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나이들어 그러는 거 추해"라는 말로 여러가지 단속이 가능하다는 거다.  


사십대 중반의 내 나이는, 젊음과 늙음의 한 가운데에 있다. 혈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일이 그런 거지 체념이 되지도 않는다. 다만 뭔가 조금 귀찮아지기는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조금 시들해졌다. 술마시고 노는 데에 흥미를 잃어버린지는 오래다. 술자리에서 만난 인연, 오래 가지 않는단 것도 배웠다. 어릴 땐 관계의 유지에 목숨을 걸었는데, 관계는 시간에 따라 자연히 모습을 달리한다는 걸 알고는 억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피곤한 사람과 같이 있고 싶지 않고 색이 너무 다른 사람에게 굳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어쩌면 다소 이기적이 되었다. 보기 싫은 꼴 안보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으니까. 


이 정도의 게으름으로 시작되는 거겠지. 시큰둥해지는 것이. 본격적으로 늙는 것이. 어릴 때 어른들은 왜 저럴까? 왜 신이 나지 않을까? 이 즐거운 명절에 왜 밤새워 놀지 않을까?라고 늘 궁금했었다. 놀자! 한마디에 영하 이십도의 날씨에도 종일 있는데 어른들은 왜들 귀찮다고 할까. 왜 엄마들은 바닷가까지 가서는 굳이 백사장에 앉아만 있을까, 이상했었다. 지금 어린 나에게 답을 해준다면, 얘아, 이미 다 놀아봤단다, 라거나 아니면 젖은 옷을 누가 빨고 뒷정리를 누가 하는지 아니? 바로 나란다, 라고 시니컬하게 답하겠지. 활기가 한풀 꺽인다는 건 분명 처량한 부분도 있지만, 요동치지 않는 안정감으로 상쇄되고 남는다.  그래서 묘한 기분이 있다.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를 많이 고민한다. 이십대의 나를 다시 만나면 그렇게 까지 분노할 필요가 없다, 네 안에 집중해!라고 말해줄텐데. 그럼 이십대의 나는 묻겠지. 그래서 어떻게 살으라는 건데요? 그럼 나는 답하겠지. 글쎄, 아직 나도 몰라서 찾고 있는 중이란다. 알게 되면 알려줄게. 네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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