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을 표현하는 것과 쓸모있음을 표현하는 것
맛픽은 내가 맛본 음식을 촬영하고 평가하여 기록하는 서비스인데요,
자물쇠 걸어 책상 서랍에 꼭꼭 숨겨놓는 비밀일기가 아니고서야
온라인 서비스에서 무언가를 생성했다면 누군가로부터의 피드백을 바라는게 인지상정이죠.
그래서 맛픽도 부랴부랴 기다리고 기다리던 피드백 기능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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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 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알랭드보통 [불안]
사람은 관심을 필요로하고, 확인 받고 싶어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지위를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그것이 대단한 성취이든 하찮은 놀음이든 그것에 대한 누군가의 피드백을 원한다.
로켓을 쏘아 올렸다면 수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를 기대할 것이고, "나 배고팡" 했을 때에는 "우웅 나두나두~" 하는 대답을 원할 것이다.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우리는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것 보다는 차라리 부정적 피드백을 선호하고, 대체로 지위가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행위에 피드백이 많아지기 때문에 지위를 차지하려고 아둥바둥이다.
얼마전 예고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후, 그들에게 '내 친구를 위한 일기 어플 만들기' 과제를 내 보았다. 일기쓰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정리해서 발표를 하는 것이었는데, 문제라고 정의된 것들의 저변에 공통적으로 '일기는 쓰면 좋으나 쓰기 싫은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내 친구가 '어떻게 쓰고싶게 만들까'가 해결해야하는 주요 이슈였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너무나 친숙한 친구들이고 자신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집단인데 왜 일기쓰기가 싫을까? 학생들은 어려워서,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등으로 이유를 분석해놓았던데, 이들은 유튜브 영상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릴 기술과 정성과 시간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이유가 어떻게 파악되었든 거의 모든 제시된 해결책들을 보니 답은 정해져있었다. 피드백이었다. 유튜브는 하면서 일기는 안쓰는 이유. 명백했다.
읽씹 혹은 혼잣말을 기본전제로 하고 있는 혼자 일기쓰기가 재미있으려면 대단한 상상력과 자아성찰, 신독의 자세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재미있을리 만무하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을 일기장을 열쇠로 잠궈놓고 누가 읽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음은 실은 누군가 읽고싶어 할 것이라는 망상과 읽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 아닐까?
필자보다 훨씬 이전 세대의 학장시절에 일기 돌려쓰기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도 예쁜 다이어리를 사서 개성있게 꾸미고, 속지를 서로 한 장씩 바꾸어 글도 써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스티커사진도 붙여주며 누구 다이어리가 가장 두껍고 예쁜지 평가하며 돌려보기가 유행했다. 얼마나 많이, 어떤 친구에게 피드백 한 장씩을 얻어냈는지가 다이어리 주인의 인기의 척도였다. 인기 많은 친구는 다이어리가 너무 뚱뚱해져서 닫히지 않을 정도였고, 친구에게 무언가를 써줄 때에는 깜지 수준으로 빽빽하게 한 장을 채워주는 것이 예의였다. 친구에게 좋은 컨텐츠를 받아내려면 일단 내 다이어리가 알차야 했음은 물론이다. 다이어리를 잘 꾸미려면 인기가 있어야 하고, 인기가 있으려면 다이어리를 잘 꾸며야 했다.
다이어리 꾸미기는 오프라인 시절의, 좁은 범위의 끈끈한 인간관계와 리치한 컨텐츠로 중무장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미니홈피였다.
사람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비슷비슷한 것이라 사람들은 언제나 혼잣말이 아닌 소통하기를 원하고, 본인이 생성한 컨텐츠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고, 피드백을 받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던 것이다.
온라인 서비스에서 피드백이라는 이벤트가 1회 일어났을 때, 이 이벤트는 피드백을 준 자(갑)와 피드백을 받은 자(을) 양쪽에게 영향을 준다.
갑은 을에게 피드백을 주어 자신의 관심을 표한다.
그 관심은 을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을의 컨텐츠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떤 것을 향한 관심이냐에 따라 갑의 피드백이 갑과 을에게 미치는 영향, 특히 갑에게 미치는 영향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을에 대한 관심인 경우를 보자.
피드백은 갑이 을을 팔로우, 친구맺기 등으로 자신과 연결하는데서 시작된다. 을은 갑이란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갑은 자신이 을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이유가 있으므로, 을이 어떤 방식과 퀄리티의 컨텐츠를 생성하든 적당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친구가 인스타에 셀피를 올렸을 때 하트를 누르거나 '블러셔 어디꺼임? 짱이뻐!' 정도의 댓글을 달아주는 것이 이에 해당하겠다. 이 이벤트에서 갑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을과의 친분유지, 본인이 을과 친분이 있다는 표현, 내가 이렇게 피드백을 했다는 성취감 등등이다.
을의 컨텐츠에 대한 관심인 경우는 어떨까?
갑은 을의 컨텐츠에 피드백을 주기 위해 꼭 팔로우, 친구맺기 등을 할 필요는 없다. 갑은 을의 온라인 친구여서 을의 컨텐츠를 접했을 수도 있지만 온라인에서 떠돌던 을의 컨텐츠를 우연히 보았을 수 있다.
해당 컨텐츠가 본인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피드백을 주리라 마음먹게 된다.
페이스북, 브런치, 미디엄, 핀터레스트 등에서 업무 관련 잘 쓰여진 아티클을 보고 저장/좋아요/공유/크랩/핀 등을 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하겠다.
갑은 본인에게 의미있는 컨텐츠에 대한 칭찬, 그러한 컨텐츠를 제공한 을에 대한 응원, 이런 훌륭한 컨텐츠를 소비한 본인에 대한 표현, 그리고 미래에 본인에게 효용이 될 정보로 써먹기 위한 기억/저장의 용도로 피드백을 하게 된다.
물론 을이 어느정도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컨텐츠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는 있다. 을이 유명하거나 신뢰할만한 사람일 수록 을의 컨텐츠도 가치가 높아지고, 피드백 할만한 이유가 더욱 충분해지게 된다. 더불어 컨텐츠의 훌륭함으로 말미암아 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을의 컨텐츠가 본인에게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판단한다면, 을을 팔로우하거나 을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을은 본인의 컨텐츠에 대한 피드백을 보고 컨텐츠 생성 행위에 대한 성찰과 본인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하게 된다. 갑이 을이 아니라 을에 대한 컨텐츠에 피드백을 했음에도, 을은 컨텐츠와 본인을 완전히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림
갑이 을이나 을의 컨텐츠에 피드백을 했다면, 그 사실은 을에게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 몰래 하는 피드백은 읽씹과 다를 바가 없다. 피드백 자체만 알릴 수도 있고(ex. 조회수, 공유수...), 누구의 피드백인지와 함께 알릴 수도 있다(ex. 00님이 회원님의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 서비스에 따라 위상이 좀 다르긴 하겠지만, 좋아요나 댓글 정도 되면 이 또한 컨텐츠이기 때문에, 갑은 자신이 생성한 피드백이라는 컨텐츠를 을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피드백 할 욕구가 저하된다.
맛픽의 사용은 내가 맛본 음식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행위를 기본으로 한다.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기록하는 컨텐츠의 주제가 음식이고, 음식이름, 식당이름, 주소, 맛본 상황 등등 퍼블릭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는 데에서 널리 공유할 가치가 충분하다.
음식 맛에 대한 개인의 평가가 들어가는데 이 또한 한 음식에 대한 다수의 평가가 쌓이게 되면 정보로써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가치있는 컨텐츠를 생성했다면, 다른 사용자의 피드백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바, 맛픽도 피드백 시스템을 우선순위로 반영하기로 했다.
첫 시작은 feed 패널을 만드는 것이었다.
피드백을 줄 사람에게 나와, 내가 맛보고 평가한 음식 컨텐츠가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피드백의 대상과 방식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그 다음 이슈다.
맛픽은 다음 네 가지 피드백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 사용자를 팔로우한다
어떤 사람이 맛보고 평가한 것인지에 따라 평가의 신뢰도가 달라질 수 있고, 그 사람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과 음식 선호도가 나와 맞을 때 나에게 가치있는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컨텐츠를 일정량 파악한 후 팔로우 해놓으면, 나에게 가치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팔로우 당한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신뢰도와 인기 정도를 체감할 수 있다.
- 음식을 팔로우한다
특정 음식을 팔로우 해놓게 되면 해당 음식의 트렌드나 다양성, 최고수준을 어떻게 어디에서 맛볼 수 있는지, 어디에서 먹으면 안되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음식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컨텐츠를 생산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피드백이라 느껴지진 않을 것이고, 팔로우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해당 음식에 대한 컨텐츠 생산자가 많을 수록 좋은 것이지 컨텐츠 생산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피드백이라기 보다는 기능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 컨텐츠에 좋아요 한다
해당 컨텐츠가 나에게 쓸모있거나, 맛있어 보이거나, 컨텐츠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매력이 있을 때, 심심할 때 등등의 상황에 가벼운 감사, 칭찬의 의미로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정도의 피드백을 할 수 있다. 컨텐츠 생성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컨텐츠가 어느 정도 인기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 피드백 한 사람 입장에서는 생산자에게 좋은 일을 했다는 만족감, 자신이 이런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표현, 내가 이런 컨텐츠를 좋아했었구나 하는 히스토리 관리가 가능해진다.
- 컨텐츠를 스크랩(저장, 핀 등으로 표현가능)한다
스크랩을 한다는 것은 내 공간에 해당 컨텐츠를 담아놓는 것을 뜻한다. 타인이 생성한 컨텐츠가 내 영역에 컨텐츠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므로 좋아요 보다는 피드백 결정에 신중함이 요구된다. 해당 컨텐츠가 나에게 충분한 정보와 가치를 제공하는 동시에 미래의 어떤 시점에 해당 컨텐츠를 꺼내어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해야 스크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컨텐츠 생성자 입장에서는 누군가 내 컨텐츠를 충분히 쓸모있게 여겨 자신의 공간에 저장했다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같은 피드백을 많이 받으려면 어떤 컨텐츠를 생성해야 하는지 연구하게 된다.
사실 모든 방식이 함께 구현되면 참 좋겠으나, 우리에게 개발자양반은 단 한 명이고,
우선순위는 내일 타노스의 손가락 똑딱임 한방으로 전 우주 개발자의 반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데 하필 우리 개발자가 먼지쪽에 속해있을 때를 가정해서 정해져야 하는 것이다.
팔로우는 우선의 우선은 아니어 보인다. 맛픽은 친목도모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정보 구축과 획득, 추천을 위한 서비스에 가깝기 때문에 지금으로써는 컨텐츠가 사람보다 중요하다. 음식을 팔로우하는 기능은 컨텐츠 생성량이 충분히 많을 때 유효해보인다.
좋아요는 받는 사람에게는 의미 있고 그 총량은 많아질 수 있겠으나 행위자 입장에서는 휘발성이 강하고 의미가 얕다. 컨텐츠 퀄리티 유지 측면에서도 유리하지 않다. 먹어 볼 만 한, 먹으면 안되는, 꼭 먹어야 할 음식들을 기록하고 그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 단지 예쁘게 찍었거나, 웃기게 찍었거나, 평을 자극적이게 해서 좋아요를 받는 것은 지양해야 할 방향이다.
결과적으로 스크랩 형태가 맛픽에 가장 적절한 방식이었다. 서비스 탄생의 이유도 무엇을 먹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데이터를 쌓는 것이었으므로, 내 데이터 뿐 아니라 다른 사용자의 데이터를 잘 골라서 쌓아놓는 것은 무척 의미있는 작업이다.
pick이라 이름지은 스크랩 형태의 피드백 행위는 feed에서 이루어진다. feed에서 컨텐츠를 보다가 내가 맛보고싶은 것 혹은 절대 맛보고싶지 않은 것을 만나면 pick버튼을 선택한다. 그러면 피할래 / 맛볼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pick을 하면 ma'at 패널의 pick ma'at 탭에 해당 컨텐츠가 저장된다. 저장된 pick들은 지금 내 위치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리스팅이 되며, 해당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pick을 하면 컨텐츠 생성자에게는 notification push가 가게 되고, 생성자는 본인의 컨텐츠가 몇pick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직은 누가 pick을 했는지 알려주는 기능까지는 개발되지 않았는데, 이는 사용자에 대한 팔로우 기능과 함께 묶어서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pick기능이 추가되면서 리텐션이 높아지고 헤비유저쪽으로 이동하는 사용자가 많아진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더불어 본인이 컨텐츠를 생성하지 않더라도 feed를 잘 보고 pick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내 컨텐츠를 갖게 되니 서비스 사용부담을 줄여준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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