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브런치] 상견례
사이드프로젝트 '창고살롱'을 함께 한 회사 밖 동료 H가 지난주 퇴사했다. 우리가 그동안 사이드 허슬로 진행한 딴짓의 주제 - 일 하는 여성, 엄마, 사람 - 을 중심으로 좀 더 다양한 일을 도모해 보기로 상의했다.
창업을 결심하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지금 속해있는 진저티프로젝트의 대표와 동료 J의 권유가 큰 계기가 되었다.
직원 말고 파트너로 일하면 어때요?
창업하세요.
당혹스러웠다. 워낙 조직 구성원 서로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개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부분이 많은 공동체라(가끔은, 이 조직이 회사라는 말보다 공동체라는 말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창업을 권유하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직감했다. 하지만 두려웠고 자신이 없었다. 경력단절에서 다시 내-일로의 동기가 창업가 교육 프로그램이었음에도 창업 말고 취업을 선택한 나였기에, 나는 온몸으로 창업이란 선택지를 거부했다. 권고사직 메시지를 전하는 건 아닌지 항의하듯 따져 묻기도 하고, 창업을 할 의지도, 용기도, 비즈니스 모델(BM)도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창업을 할 수 있냐고 반문도 해 보았다.
'여성과 일' 주제로 책을 만들고 관련 기획,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 문제이기도 했던 '여성 커리어' 이슈에 점점 깊이 몰입하며 그 폭과 깊이가 확장되었다. 내 인생 주제가 된 '여성의 커리어', '경력단절' 이슈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기존의 일 관계로 알던 동료나 선후배, 그리고 오랜 친구와도 다른 맥락, 신선한 각도로 그들의 친구, 또 지인으로 계속 연결되는 전에 없던, 새로운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면서 차츰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마침내 창업을 결심했다.
내게 창업을 권한 현재 회사 대표에게 막 퇴사한 회사 밖 동료 H와의 점심을 제안했고, 흔쾌히 응해 주셨다. 뭔가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지만, 구체적으로 정한 주제나 목적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H가 멤버로 참여하고 있기에 그 둘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었다.
초반 대화는 7년 차 소셜벤처인 우리 조직에 대한 대표의 창업 스토리가 주제였다. H는 그 간 궁금했던, 하지만 외부에서는 잘 알기 어려운 창업가로서의 고민과 조직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며 대표의 대답을 경청했다. 그 과정에서 H가 시도했던, 미디어 스타트업 '마더티브'의 지난 2년간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울컥하는 장면에서, 나도모를 대견함과 안쓰러운 마음에 우리가 앞으로 함께 만들어 갈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당장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자세한 BM을 고민하기보다, 서로에 대해 매우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라는 대표님의 조언이 H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렇게, 현 직장 대표와 예비 공동창업자 H의 상견례가 마무리되었다.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을 빗대에 H에게 나에 대한 신신당부를 하는 대표님이 더없이 감사했다. 그리고 휴가 중인 동료 J가 돌아오는 대로 H와 내가 함께 만나 더 깊은 회고의 대화를 나눌 것을 주문했다.
이제 나는 사업자와 법인명을 고민하려고 한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려운 부분이 많지만, 이제는 한층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새로운 내-일을 함께 할 공동창업자 H와, 전 직장 대표 및 동료를 함께 만나,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고민해 결과물을 만들어 볼 수 있음을 기대하게 된다.
최대한 작고 가볍게 시작해 보려고 한다. 창업을 사이드프로젝트 하듯, 그렇게 주제에만 집중해 우리만의 경험과 콘텐츠, 그리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