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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Dec 17. 2018

갖가지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 현대판 주막

한인 민박 스탭 살이하며 민박집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의 프라하를 들르는 한국인 여행객들은 한인 민박에 묵는다. 런던, 파리 등 물가 비싼 대도시를 돌다가 집밥이 그리워 민박을 찾는 이들도 있고,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숙소에서만큼은 맘 편하게 한국말을 들으며 여독을 풀고 싶어 찾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한인 민박은 조선시대의 주막 같은 느낌이랄까? 프라하에 처음 온 손님들을 위한 사장님의 프라하 이야기, 이곳저곳에서 온 여행객들의 지난 여행 이야기,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 한인 민박이다. 민박도 여행인 셈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고, 정든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민박집.

이곳을 찾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한아름씩 들고 온다. 한국에서 먼 타지까지 여행을 떠나오게 된 이유라던가 혹은 여행 중 경험한 일들이라던가. 모두가 이야기꾼이다. 이들과 맥주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캄캄한 프라하의 밤도 참 빨리 지나간다.



▲ 손님들과 함께 맥주 타임




이곳에서 지내던 두 달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세계여행을 하며 겪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주던 너구리를 키워본 적 있는 소년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던 3년 차 간호사도 있었다. 아, 알제리에서 근무를 하던 돼지고기를 꼭 사가야 한다며 빈 이민가방을 들고 온 손님도 있었다. 모두 치열하게 고민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보통 프라하에는 3박 정도 머무르는데 가끔 그 이상을 묵고 가는 일명 '장박' 손님들이 종종 있다. 그들과 밤새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언니, 동생 하며 스스럼없이 지내게 된다. 함께 밖에 나가 저녁을 먹기도 하고, 프라하 시내를 둘러보기도 하고, 같이 요가학원에 가서 핫요가를 하며 땀을 한 바가지 흘렸던 손님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민박집에 들어와 식탁에 둘러앉아 맥주판을 벌려놓고 얼굴이 빨개져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의 과거를 위로하고, 미래를 응원한다. 이러다 보니 꽤나 정들어 떠나는 것이 아쉬웠던 손님들도 많았다.




▲ 손님들이 주고 간 선물



다행히 나를 스쳐갔던 손님들 중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한다거나, 기본적인 예의가 없 손님은 없었다. 다들 내게 좋은 기억들을 남겨주고 갔고, 그 기억들은 후에 민박집 일이 슬슬 지쳐 갈 때쯤 다시 나를 웃게 해 주는 소중한 순간들이 되었다. 나도 그들이 프라하를 기억할 때에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 스탭의 일과

다만 그 쳇바퀴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나도 인도 여행을 다녀오고, 저 멀리 알제리에서 일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쳇바퀴 치고는 꽤나 넓은 세상을 바라본 셈이다.


전생이나 사후세계의 논리 등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인연과 운명은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보는  세상을 더 넓히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됐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민박집 밖, 꼭 프라하가 아니더라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마주칠 가능성도 있겠지?



▲ 손님들이 남기고 간 쪽지




프라하에서 스탭 살이를 하는 두 달 동안 나는 또 조금 성장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프라하에서 앞으로의 유럽살이를 위한 거점을 마련했다. 아직 프라하 구석구석은 잘 모르지만 처음엔 낯설었던 트램이 익숙해졌다. 맨땅에 헤딩한 것과 다름없는 프라하에서의 첫 시작은 분명 내게 많은 자신감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었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앞으로 무슨 일이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파이팅 넘치는 자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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