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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Dec 07. 2018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오는 설렘

도브리덴 프라하!

도브리덴! dobrý deň!


체코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내가 제일 처음 배운 체코어이자, 제일 많이 쓰는 체코어 '도브리덴'.





사실 가을에 갈지 겨울에 갈지 참 많은 고민을 하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을 프라하에서 보내보자는 마음에 예상보다 더 이른 시기의 비행기 표를 사고 프라하로 떠나왔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프라하에 도착한 10월 중순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감히 내가 지금까지 겪은 가을 중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







여행을 가면 정처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는 시간을 한 번은 꼭 넣는 편인데 (혼자 가거나, 이 일정에 공감하는 동행자와 함께일 경우) 거리거리 가을이 만연한 프라하의 골목을 이렇게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니 참 행복했다.







프라하엔 돌길이 많다. 아니 돌길이 대부분이다. 이 길이 프라하의 호불호를 가르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블로그 후기만 봐도 캐리어를 끌기에 혹은 오래 걷기에 돌길이 참 불편해 프라하가 취향이 아닌 사람들도 꽤 많다. 이 날 거의 2만 보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돌길이 불편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정돈된 듯 정돈되지 않은 투박한 돌길이 어쩌면 지금 나의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참 다행이었다. 사실 파란 하늘과, 내 옆을 감싸는 낯선 프라하 풍경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불편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 반년은 넘게 지내야 하는데 돌길에 무던했던 내 발이 참 고마웠다.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즐비한 프라하 거리를 걷고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 혼자서 프라하라니. 작년엔 생각도 못 했을 일이고, 아니 올해 초만 해도 내가 이렇게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프라하에 나와 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길거리엔 트램이 지나가고, 건물 간판은 내가 모르는 언어 투성이고, 심지어 3구역에서 1구역으로 걸어가던 길엔 동양인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철저히 이방인이 된 기분. 하지만 마음속엔 왜인지 모를 설렘이 가득 찼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묘한 감정,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오는 설렘
나를 벅차게 만드는 것들





걷기만 해도 참 좋았다.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골목들, 그곳을 따라 열린 가게들. 이제야 내가 프라하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6개월 (엄연히 따지자면 약 7개월)을 산다니. 초등학교 때 삼촌을 따라 뭣도 모르고 처음 북경에 갔던 날, 고등학교 때 새로운 교복을 입고 금발의 미국인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던 날, 대학교 때 허허벌판 버펄로에 도착해 처음 학교 캠퍼스로 들어가던 날. 나의 첫 시작을 알리던 날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오는 설렘인데, 난 그 기분을 참 좋아하나 보다. 이 날도 그 설렘을 느꼈고, 간질간질하니 참 좋았다. '좋다'라는 간단해 보이는 두 단어로 표현하기 아쉽지만, 그 단어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 그 순간 내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겠지. 할로윈이 다가오는 지금, 아마 할로윈 관련 시즈널 아이템을 찾느라 급급했을 거야. 가을 키워드도 짜내느라 또 이면지 두세 장은 가득 찼겠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젊은 순간인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프라하의 가을 풍경을 언제 또 눈에 담을 수 있을까. 그것도 굉장히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금 이 설렘 가득한 하루들을 잊지 말아야지.
내게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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