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리덴 프라하!
도브리덴! dobrý deň!
체코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내가 제일 처음 배운 체코어이자, 제일 많이 쓰는 체코어 '도브리덴'.
사실 가을에 갈지 겨울에 갈지 참 많은 고민을 하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을 프라하에서 보내보자는 마음에 예상보다 더 이른 시기의 비행기 표를 사고 프라하로 떠나왔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프라하에 도착한 10월 중순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감히 내가 지금까지 겪은 가을 중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
여행을 가면 정처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는 시간을 한 번은 꼭 넣는 편인데 (혼자 가거나, 이 일정에 공감하는 동행자와 함께일 경우) 거리거리 가을이 만연한 프라하의 골목을 이렇게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니 참 행복했다.
프라하엔 돌길이 많다. 아니 돌길이 대부분이다. 이 길이 프라하의 호불호를 가르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블로그 후기만 봐도 캐리어를 끌기에 혹은 오래 걷기에 돌길이 참 불편해 프라하가 취향이 아닌 사람들도 꽤 많다. 이 날 거의 2만 보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돌길이 불편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정돈된 듯 정돈되지 않은 투박한 돌길이 어쩌면 지금 나의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참 다행이었다. 사실 파란 하늘과, 내 옆을 감싸는 낯선 프라하 풍경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불편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 반년은 넘게 지내야 하는데 돌길에 무던했던 내 발이 참 고마웠다.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즐비한 프라하 거리를 걷고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 혼자서 프라하라니. 작년엔 생각도 못 했을 일이고, 아니 올해 초만 해도 내가 이렇게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프라하에 나와 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길거리엔 트램이 지나가고, 건물 간판은 내가 모르는 언어 투성이고, 심지어 3구역에서 1구역으로 걸어가던 길엔 동양인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철저히 이방인이 된 기분. 하지만 마음속엔 왜인지 모를 설렘이 가득 찼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묘한 감정,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오는 설렘
나를 벅차게 만드는 것들
걷기만 해도 참 좋았다.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골목들, 그곳을 따라 열린 가게들. 이제야 내가 프라하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6개월 (엄연히 따지자면 약 7개월)을 산다니. 초등학교 때 삼촌을 따라 뭣도 모르고 처음 북경에 갔던 날, 고등학교 때 새로운 교복을 입고 금발의 미국인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던 날, 대학교 때 허허벌판 버펄로에 도착해 처음 학교 캠퍼스로 들어가던 날. 나의 첫 시작을 알리던 날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오는 설렘인데, 난 그 기분을 참 좋아하나 보다. 이 날도 그 설렘을 느꼈고, 간질간질하니 참 좋았다. '좋다'라는 간단해 보이는 두 단어로 표현하기 아쉽지만, 그 단어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 그 순간 내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겠지. 할로윈이 다가오는 지금, 아마 할로윈 관련 시즈널 아이템을 찾느라 급급했을 거야. 가을 키워드도 짜내느라 또 이면지 두세 장은 가득 찼겠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젊은 순간인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프라하의 가을 풍경을 언제 또 눈에 담을 수 있을까. 그것도 굉장히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금 이 설렘 가득한 하루들을 잊지 말아야지.
내게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