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의 비행 끝에 내 몸보다 더 큰 킬리 배낭을 거북이 등딱지처럼 등에 짊어지고 프라하에 도착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 하나 딸랑 들고 무작정 와버린 프라하. 스물일곱의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그렇게 또 다른 모험을 시작했다.
막연하게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프라하
왜 프라하였는지는 모른다. 프라하에 뭐가 유명한지, 프라하에 오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내가 좋아하는 맥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코젤과 필스너 우르켈의 본고장이 체코라는 것뿐.
예전엔 참 밝아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너였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얼굴이 어둡니?
한국에서 제일 알아주는 PR 회사를 2년 정도 다녔다. 팀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신인상까지 받을 정도로 좋은 성과들을 거두며 인정받고 있던 신입이었다. 그리고 그만두었다. 대학 졸업 후 공백기 없이 바로 취업에 성공했고, 입사 후 동기들 중 담당했던 고객사가 제일 많을 정도로 쉼 없이 달렸다. 숨 가쁘게 달려오니 숨이 찰 수밖에.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체코? 동유럽? 갑자기 대체 왜?
체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은 후 만난 많은 이들의 걱정과 우려가 제일 첫 번째 반응. 물론 나도 걱정되지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로 내가 아닌 그들을 위로했다. 체코는 워킹홀리데이 협정 체결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래도 보편화된(?) 호주나 타 지역의 워홀보다는 생소할 터.
사실 실제로 체코에 있는 글로벌 회사들을 다녀볼까 싶었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여행에 집중하자'였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비교적) 아무런 걱정 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더 나이가 들어 내 커리어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되고 나면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아 질지도 모른다.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할 테고, 지금처럼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도 못하겠지. 그러니 아마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맞닥뜨려야 할 현실적인 요소들,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올 도전들도 떠안고 가는 것이다. 꽤나 부담감을 가지고 갈 것 같다. 직접 부딪혀보지 않고서야 모르는 거니까. 또 어떤 일들을 마주하며 성장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고생 사서 하는 타입.
반년 정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꼭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프라하에 거점을 두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려고 한다. 그리고 프라하에서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프라하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 그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그 세상 속에 살아가는 나의 여행 이야기를 다양하게 기록하려고 한다.
나와 있는 동안 많이 보고 배우고, 듣고, 기록도 많이, 내 콘텐츠도 많이 가져올 생각이다. 그리고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나가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선택은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며, 책임질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후회를 하는 것도 나 자신일 터. 연고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설레기도 하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지러 한 번 가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