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까 과연?
프라하에 와서 첫 두 달 동안 한인 민박집 스탭으로 지내기로 했다. 프라하를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무작정 한국에서 집을 구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프라하 한복판에 있는 민박집에서 일을 하며 프라하와 친해져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스탭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서 민박집 스탭을 한다고? 왜 굳이?
“민박집 스탭을 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주변에 말했을 때 대부분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어른들은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민박집 스탭.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일명 ‘집안일’을 하는 일. 하루 종일 손님들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종. 그러니까 꽤나 고된 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박집 스탭이라는 직업. 비싼 돈 들여 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와서 곧바로 취업해 회사도 잘 다니다가 뜬금없이 그만두질 않나 이젠 나이도 먹을 대로 먹고 저 멀리 체코라는 나라에 가서 굳이 하겠다는 일이 스탭이라니!
초면인 프라하와 낯가림을 극복하기 위해 첫 두 달을 민박집에서 지내며 이 도시와 친해지겠다는 내 계획에 ‘유학생’이라는 타이틀은 필요하지 않았다. 비싼 돈 들여 곱게 공부한 유학생은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한단 말이지? 유학생은 과거의 내 모습이었고, 현재의 나는 자발적 백수다.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면 회사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겠지만, 나는 이번 쉼표 동안 여행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민박집 스탭’은 프라하에서 스타트를 끊기에 가장 적절한 안이었다.
대부분의 프라하를 들르는 한국인 여행객들은 한인 민박에 묵는다. 런던, 파리 등 물가 비싼 대도시를 돌다가 집밥이 그리워 민박을 찾는 이들도 있고,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숙소에서만큼은 맘 편하게 한국말을 들으며 여독을 풀고 싶어 찾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한인 민박은 조선시대의 주막 같은 느낌이랄까? 프라하에 처음 온 손님들을 위한 사장님의 프라하 이야기, 이곳저곳에서 온 여행객들의 지난 여행 이야기,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 한인 민박이다. 민박도 여행인 셈이다.
물론 민박집 스탭의 하루 일과는 쉽지 않다. 집안일은 끝이 없고, 원래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 제일 힘든 법이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혼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라서 더 겁도 없이 스탭을 하겠다고 한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음가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가 과거에 뭐하던 사람인가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어?”
꼰대들의 명대사 아닌가
이걸 안 하겠다는 거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내 의견을 지지해주셨다. 주변 어른들이 뭐라 하건 부모님 또한 흔들리지 않는 분들이었고 이 부분은 참 많이 감사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리고 어떻게든 혼자서 꼭 하고 만다) 나를 아시기에 이번에도 ‘쟤야 뭐 알아서 하겠지’ 하고 믿어주시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의 많은 이들은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불안정한 삶을 살겠다고 떠나는 나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걱정을 해준 것이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혼자서 돌연변이가 된 것 같은 나도 처음엔 많이 불안했다. 이래도 되나 싶은 (어디서 나온지도 모르는) 출처 불명의 죄책감도 느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건 나는 내 인생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고민들 속에서 내린 결정이다. 뿌리 깊은 사람이 되기로 하지 않았는가, 흔들리지 않기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