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참 어렵게 도착했다.
경유지에서 15시간을 보내야 했고 낯선 곳에서 주소만으로 숙소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와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그랬다는 것이다. 도착하고 나니 여기도 그저 사람이 사는 곳일 뿐인데 이곳까지 오는데 왜 그렇게 힘이 들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야 어렵게 온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다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딸이 눈에서 잠시 멀어졌다고 마음에서 멀어질 리가 없다. 도착한지 하루도 안 된 시점이라 더 그렇겠지. 여러 가지 루트로 딸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것을 계속 확인 받으면서도 불안하고 또 불안한 것이 이쯤 되면 그냥 병인 것이다. 홀가분해 지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미친 듯 놀다 올 거야’ 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성격이 그렇다. 휴양지에 있는 클럽에 가서 신나게 흔들다가 오면 머릿속이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쩐지 전혀 내키지가 않는다. 유명한 관광지를 꼭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편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자주 가지 않는 박물관을 여행지라고 해서 꼭 들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관광지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끌리지 않는데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아무런 제약 없이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걷고 또 걷다가 힘들면 앉아서 쉬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한량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다시 타이트하게 살아갈 이유와 힘이 생길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나는 더 낯선 사람이지만 낯선 사람이 아닌 척 그곳 사람들과 생활을 공유하다 보면 몰랐던 것들을 깨닫기도 하고, 운이 좋을 경우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뜬금없는 순간에 아무렇지 않게 해결되는 경험도 하게 될 수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도 이렇게 채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마음은 여전히 무겁지만 내 입 꼬리는 어느 새 중력을 거스르고 있다. 이렇게 나는 5년 만에 여기 스페인에서 진짜 휴가를 맞이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