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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21. 2024

문자가 들려주는 여름의 소리

: 시각적 표현을 통한 청각 효과

글/그림 박선정, 『여름 소리』(풀빛, 2023)




파란 바다 위로 하얀 파도가 출렁이는 그림책 표지가 청량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듯한 ‘여름 소리’라는 글자가 여름에 대한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궁금하게 만든다.



‘우리가 여름에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무엇일까?’



제일 먼저, 한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떠올랐다. 시골집 마당 한쪽에 놓인 평상 위에 모기장이 쳐져 있고, 그 안에 아이들이 배를 드러내며 곤히 자고 있다.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수많은 별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것 같고, 그 어둠 속의 작은 벌레들은 아름답게 혹은 시끄럽게 울고 있는 그림 한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한 편의 동화 같은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다. 색감과 문자만으로 여름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것은 그려진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상상으로 상황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여름의 대표적인 과일은 수박이다. 수박은 그 자체로 여름이다. 이 수박을 고르는 소리, 자르는 소리, 먹는 소리를 녹색을 주요 색깔로 하여 수박 속을 연상시키는 빨간색을 포인트로 사용해서 신선한 수박의 향기와 달콤한 수박의 맛이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



여름 장마 소리도 들려준다. 우산을 그리지 않았지만, 비 내리는 소리로 우산이 보이고, 한낮에 갑자기 내리는 파란 소나기 빗줄기 속에 그려진 묵직한 글자에서 그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비가 그친 뒤에 들리는 처마 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서 비를 피해 처마 아래 잠깐 서 있는 여유가 묻어난다.



푸른 숲 속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의 울림이 초록색으로 써진 점점 커지는 글자 속에서 들리기도 한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뻘건 화면 위로 ‘지글지글,’ ‘이글이글’ 떠오르는 문자가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여름 한낮의 무더위를 느끼게 한다. 물속에 갇힌 듯한 ‘첨벙’이라는 글자가 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숨 막힐 듯한 붉은 무더위가 싱그러운 파란 물방울로 해소되는 듯하다.



그리고 한밤중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 폭죽이 터지는 소리,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까만 화면 위로 그 자취를 남기면서 여름밤의 한가로움을 더 느끼게 해 준다. 그 한가로움의 끝에 곧 가을을 만날 것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이러한 모든 소리들이 타이포그래피로 들리는 듯하다. 이것이 이 그림책의 큰 매력인 것 같다.



‘그림’에 대한 편견을 깨는 동시에 시각을 통한 청각의 표현이 사람의 오감을 자극해 평면적인 그림책의 매질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 준 것 같다. 그리고 그 보이는 다양한 소리를 들으면서 한여름 속에 푹 빠져 있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여름이 나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나의 아이들도 이 여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여름의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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