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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보다생명을 Jul 05. 2018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런데 병원엔 많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보건의료노동자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가 붙으면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공짜'란 말 뒤에 '노동'이 붙는다면? 그걸 좋아할 사람은 없겠죠. 우리 모두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공짜 노동'이란 일은 했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 불합리한 일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2위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장시간 노동 국가입니다. 

(관련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5/0200000000AKR20170815071000002.HTML )


위 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OECD 평균보다 1.7개월, 미국보다 1.6개월, 일본보다 2개월 더 일하고 독일보다는 무려 4개월을 더 일하는 수준입니다. (축구 말고 독일을 이긴 게 또 있었네요^^;) 그런데 임금은 독일의 70% 수준에 그칩니다. 여기에 병원노동자들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주관하여 한 2018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응답자 수 29,620명)에 의하면 근무시간 내 수행할 수 없는 업무량으로 인해 연장노동이 일상화되어있고 그중 80%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일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 결과 : http://bogun.nodong.org/xe/index.php?mid=khmwu_5_4&document_srl=496269 )     

간호사의 일상(출처 : 시사저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보건의료노조는 조사 결과를 좀 더 현장성 있게,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조합원, 간부를 초청하여 집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집담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병원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절대적인 인력부족 문제를 포함한 병원 현장의 현실을 가감 없이 꺼내 놓았습니다. 특히 인력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무분별한 연장노동이 가져오는 악순환의 고리는 길고도 깊어 보였습니다.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웃픈 집담회. 그래도 우린 웃는다! (출처 : 보건의료노조)


밥을 마시고, 시간을 달리는 병원노동자들


드라마 속 간호사들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지적이 많다 (출처 : MBC드라마 병원선 홈페이지)


드라마 속 간호사들은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있습니다. 수다를 떨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현장의 간호사들에게 회사원의 일상과도 같은 점심시간 커피 한 잔의 여유도, 동료와 담소를 나눌 공간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너무 바쁘고 환자도 많고, 한 명이 바이탈 하려면 70명에서 8~90명까지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병동은 그래도 베드 수가 정해져 있는데 응급실은 오는 대로 다 받아야 하니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쌈닭이 되는 거예요"

"쭉 액팅만 하고 인수인계 다 주고 3시 반부터 EMR기록실에 가서 5시 반까지 2시간 동안은 차팅만 한대요"

"보통 신규들이 물품 카운트를 하려면 30분 이상 걸려요. 그나마 숙련된 1년 차 정도 되어야 2~30분 안에 해결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4~50분 걸리죠. 그러니 미리 출근해서 물품 카운트하고 7시에 인수인계 시작해요. 오히려 일찍 와야만 마음이 편한 거예요"

쉴 새 없는 장시간 노동은 간호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예외가 없습니다.


"(영양팀) 이분들도 마찬가지로 다섯 시 반이 출근시간이면 적어도 네시 반, 다섯 시에 아침부터 그걸 미친 듯이 준비하지 않으면 못 맞추니까. 점심도 마찬가지, 점심 먹을 새도 없이 일을 하시고, 2교대 하시는데 13시간씩 장시간 근무해서 노동조합이 문제 제기해서 개선하긴 했는데...(후략)"

"치료사들은 환자를 한 사람당 특수 파트는 부가치료를 하면 30분 인정되거든요.. 그렇게 30분씩 하루 열넷 타임 보면 치료사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그 시간이 환자입장에서 보면 내 치료시간에서 5분이 빠지는 거니까요. 그럼 8시 반부터 시작해서 12시까지 치료할 때마다 시간 내에 30분씩 다 채워야 하는데, 환자가 늘어나면 내 점심시간은 줄어드는 거예요. 그렇게 하루가 되면 EMR차팅을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럼 남아서 EMR 넣어야 해요"

교육, 콘퍼런스, 행사, 인증... 숨 막히는 업무 외 업무(?)들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다양했습니다. 특히 업무 외에 해야 할 수많은 일들로 말미암아 노동시간이 무한정 길어지면서, 오히려 본연의 업무인 안정적인 환자 치료에 지장을 주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죠.


"간호부서는 월 단위, 주 단위로 직무교육 있고, 콘퍼런스 있고, 병원 행사 있고, 저희가 종교재단이라 종교활동을 해야 하니까 D번이 3시에 퇴근하면 그날은 밤 10시에 집에 가는 거죠" 

"교육도 직무랑 관계있는 것도 아니고 명사특강, 간호사들이 데이 끝나고 퇴근하는 직원들이 머리수 채우려고 가는 거니까. 요즘 신규들은 의외로 '일 있어서 안 갈래요'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그래요. '선생님 괜히 그랬나 봐요. 듀티(근무표)가 거지 같아요.' 이러는 거예요. 보복성이요. 수간호사가 인사고과나 듀티 짜는 거 다 하니까 밉보이면 힘들어진다는 게 있으니까"

 "일곱 시 반부터 세시까지 대부분 그 안에 퇴근을 시키고 팀장들은 또 회의를 해야 하는 거예요. 인증하면 인증 준비 남아서 해야 하고요. 팀장들이 어떻게 하면 팀장 자리 내놓을 수 있냐고 해요"

장시간 노동은 직책과 경력을 가리지 않는, 보건의료노동자라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노동은 하지만 임금은 받지 못하는 '공짜 노동'의 천국 병원


또 다른 문제는 장시간, 연장노동을 해도 그에 따른 수당 청구는 그림의 떡이라는 데 있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시간 외 근무에 따른 수당을 다 줘야 한다고 하니까 병원이 (연장근로수당 청구 형식을) 보고서 형식으로 바꾼 거예요. 육하원칙에 의거해 다 써야 하니까, 그러다 보니 이걸 쓰는데 시간을 할애하느니 퇴근을 빨리 히야겠다하고 시간 외 수당을 청구하지 않는 분위기로 잡아가고 있는 거죠" 

"왜 간호사는 (연장수당 청구서) 안 올리냐고 물어보면 수간호사는 '우리 병원 간호사들이 시간 외 수당 다 올리면 병원 망해' 이런 식이다"

이렇듯 보건의료현장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의 관행은 아주 거대한 악순환을 가져오게 됩니다.


악순환(출처 미상)


"시간 외 수당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은 약간의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중략) 정말 간호사들이 너무 착한 게, 그냥 자기가 허투루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그 환자를 위해서 시간을 보낸 것이기 때문에 나름 뿌듯함을 가지고 그냥 하는 거예요" 

"실무를 하면서 교육을 전담하거나, 따로 있거나 이렇게 안되다 보니까.. 경영진이 그런데 투자를 안 하다 보니까.."

"시스템이 바뀌고 기계가 도입돼도 인력은 변화 없잖아요. 근데 우리들은 그걸 다 해내. 너무 신기해! 그렇지만 환자들에게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잖아요. 그러니까 환자들이 고충처리 쓰면 당사자가 다 해명해야 하고, 환자들에게도 잘해야 하고, 바뀐 시스템에도 적응해야 하고, 모자란 인력도 '땜빵'해야 하고. 중소병원은 간호사 수급이 안되고 서로서로 힘드니까 네가 먼저 퇴사하는 게 낫겠다. 네가 제일 힘들어. 이번 달은 너를 보내줄게. 이렇게 되는 거죠. 퇴사 순번제"



집담회를 통해 전해 들은 병원 현장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 같습니다. 간호사들이 스스로를 백의의 천사가 아닌 백의의 '전사'라고 자조 섞인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되려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최근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S병원 화재사건, E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A병원 신규 간호사 자살사건 등)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아닙니다. 썩을 대로 썩은 보건의료현장의 병폐가 안타까운 사건으로 그 속살을 드러낸 것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추모의 마음과 함께, 사건 이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래도록 보건의료인력을 확대하고 '공짜 노동'으로 대변되는 병원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보건의료노조가 발의한, 보건의료인력을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도 제정을 앞두고 있죠. 그리고 지난 6월 27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의 조합원들이 모여 <환자안전 병원, 노동존중 일터 만들기 보건의료노동자 대행진>을 개최하고 병원 현장에서 네 가지(공짜 노동, 태움 갑질, 속임인증, 비정규직)를 아웃시키는 4 OUT운동을 시민들에게 알렸습니다.


인력확충을 요구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넘치지만, 병원과 의료기관은 아직도 전쟁터"라며 "더는 비정상적인 병원을 용납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보건의료노조는 4 OUT운동과 함께 오는 7월 26일까지 한 달간 '안전한 병원 만들기 국민청원'을 진행합니다. (국민청원 바로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86176?navigation=petitions ) 또한 7월 한 달간 각 병원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 공짜 노동 근절을 위한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체불임금 진정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정의란 각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_드라마 <슈츠>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인력확충과 식사시간보장등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묘사되어있다.(출처 : KBS 화면갈무리) 


2015년 메르스로부터 자신을 불태우는 희생과 헌신으로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장시간 노동에도 무엇이든 또 해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탱되는 시스템은 정상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 비정상적인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노동자로서, 국가에게 그 책임을 묻고 책무를 다 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보건의료노조가 6만 조합원과 함께, 먼저 하겠습니다. 일터를 바꾸고 국민건강을 지키는 길에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해 주세요! 우리 스스로가 나서면 할 수 있습니다.  


[함께해주세요!] '안전한 병원 만들기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86176?navigation=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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