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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Nov 25. 2018

반석천에서 인간의 위치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서울에만 첫눈이 내리는데도 주말 SNS는 눈 천지다. 대전에도 혹시 첫눈이 올지 몰라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는데 붉은 단풍나무가 반긴다. 심을 땐 적단풍이 었는데 옆의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가려 여름 내내 청단풍으로 살다가 초겨울에야 잠깐 붉은 단풍이 든다. 첫눈을 기대하다가도 단풍을 보며 애처로워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행히 눈은 오지 않았다. 비가 그친 틈에 보온재를 사 와 배롱나무를 싸주었다. 작년에 대충 감았더니 한 가지가 동해를 입었다. 그래도 잎이 나지 않을까 한 달을 기다리다 결국 잘라내었다. 붉은 꽃을 피우며 나무 균형을 잡아주는 줄기였기에 많이 아쉬웠다.


나는 고사한 가지, 시야를 가리는 가지, 멋없는 가지를 쳐낸다. 정원뿐만 아니라 반석천을 전정한다.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아카시아를 베어낸다. 아카시아는 생명력이 강하여 그냥 두면 다른 나무를 해친다. 밑동이 잘린 뿌리는 그래도 질겨 매년 새 줄기가 올라오고 하천 둑의 토양 유실을 막는다.


일 년 동안 가지를 자르느라 톱날이 무뎌졌다. 어릴 적에는 톱줄로 다시 날을 세워 사용했지만 요즘 톱은 특수 금속으로 제작되어 톱줄로 갈리지 않을 듯하다. 더구나 올해 톱은 끝날도 끊어져 짧은 톱이 더 줄어들었다. 새 톱을 구입하여 교대식을 거행하며 제목의 사진처럼 흔적을 남겼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 부모님들이 걱정을 하거나 혼이 난다. 20세기에 독일 철학자 막스 셸러도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다행스럽게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그를 철학적  인간학을 연 사람으로 기억한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신앙의 지배를 받고, 이성의 지배를 받고, 과학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다. 과학적  인간의 대표 유형이 톱을 사용하는 저 같은 사람이며 사실 도구의 사용을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성으로 여긴다.


셸러는 인간학에서 이질적 세 가지 행동 패턴을 통합할 원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는 식물, 동물, 인간의 특성을 비교하면서 본능에 의한 행동, 지성에 의한 행동, 정신에 의한 행동으로 구분했다. 정확하게는 5가지로 세분했지만 저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암튼 '네가 사람이냐? 개지' 이런  말 심심찮게 듣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의 이론을 이해 못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본능, 지성, 정신 등을 톱으로 삼등분하듯이 구분하기가 쉽지 않죠. 저는 이 구분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불충분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인간은 현재,  과거, 미래 기반으로 의사 결정하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현재형 인간은 본능을 따르고, 과거형 인간은 보은에 충실하고, 미래형 인간은 희망을 품는다. 물론 완성된 이론은 아니지만  톱으로 가지치기할 때마다 이 문제를 파고들고 있으므로 내년 가을쯤에 완성된 이론이 나올 겁니다.


그럼 저는 어떤 류의 인간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비하여 새 톱을 사다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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