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연습 #1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얼마나 쉽게 칼을 들이대고,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마음에 얼마나 많이 상처를 내는지 모른다. 한쪽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하면 남도 하지 않는, 누구보다 배우자가 가장 먼저 정죄하고 비난한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기는커녕 도리어 짐덩어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아내에 시시콜콜 말한다. 내 일상은 아내의 일상이기도 하니까. 내가 겪는 일은 아내가 겪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우리는 시간을 공유하고, 인생을 공유하며, 경험을 공유하는 사이니까. 그래서 둘이 떨어져 있는 시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매일 조잘조잘 말한다.
“여보, 오늘 상사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 이렇게 저렇게 했어. 정말 어이가 없더라.”
“아니, 그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을 해. 왜 당하고만 있어! 자기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당하는 거야.”
아내는 다른 이야기에는 다 좋게 반응해 주었지만, 안 좋은 일에는 늘 이렇게 반응했다. “왜 맞받아치지 못하느냐”고 말이다. “당하지만 말고 할 말을 해”라고 말했다.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말한 게 아닌데, 내가 기대한 반응은 ‘공감’과 ‘위로’다. 나는 아내가 이런 말을 해주길 원했다.
“그 사람 진짜 나쁜 사람이네! 도대체 자기한테 왜 그러는 거야? 자기 같이 열심히 일해주는 직원이 어디 있다고, 고마운 줄 모르네. 정말 짜증 나는 사람이네!”
내 편이 돼서 함께 욕해주길 바라며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내 편이 되어 주기는커녕 상사 편이 되어 내 행동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그래서 어느 날 작정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자기한테 회사 얘기한 건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도 알아. 나는 정답을 원한 게 아니야. 위로를 원한 거지. ‘그랬어? 그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네! 자기 정말 힘들었겠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회사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런 말을 해줄 수 없어?”
이렇게까지 말했는 데도 벽을 보고 말한 게 되었다. 아내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여보, 나도 자기를 위로해 주고 싶고, ‘수고했어. 고생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하지만 일부러 하지 않는 거야. 왜, 아무도 자기한테 정답을 말해 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자기는 강해지지 않을 테니까. 자기는 가장이니까, 강해져야 하니까, 강해졌으면 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성정이 약한 사람이다. 아내는 내가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해졌으면 해서 일부러 내가 원하는 대로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다. 아내 말대로 나는 ‘가장’이니까. 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강해져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가족을 책임질 수 있으니까. 그래, 아내 말이 맞다. 아내 말을 100% 이해한다. 하지만 틀렸다. 아내 말이 맞긴 하지만 부부는 그러면 안 된다.
설왕설래, 이후에도 아내는 한결 같이 나를 강하게 푸시했다. 앞으로 회사 얘기는 하지 말까, 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회사 얘기를 하지 않으면 무슨 얘기가 있을까? 참다참다 한참 후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말했다.
“자기 말이 맞아. 그렇게 하는 게 좋지. 하지만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 모든 회사에서 자기 말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냐. 그리고 자기처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말을 못 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 그러니 자기 말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야.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가 더 잘 알아. 아는 대로 행동하든 못하든 말이야.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자기는 나에게 위로를 해줘야 한다는 거야. 왜? 자기는 내 아내니까. 영원한 내 편은 자기뿐이니까. 다른 시람은 내 잘못을 지적할 수 있어도 자기는 그러면 안 돼. 내가 아무리 못나고 잘못했어도 자기는 내 편이니까. 내가 범죄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 이상 자기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해.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줘야 해. 그게 부부니까. 공감해주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을 거면 뭐하러 결혼했어? 자기가 나를 위로해 주지 않으면 나는 어디서 위로를 받아? 자기가 나를 위로해 주지 않으면 나는 어디서 스트레스를 풀어? 자기가 회사에사 스트레스 받은 일을 얘기할 때 내가 자기한테 뭐라고 한 적 있어? 자기가 어떤 얘기를 하든, 회사에서 자기가 잘못하거나 부족했던 게 보여도 나는 항상 자기편이 되어 주었어. 내가 더 많이 욕해줬어. 근데 왜 자기는 나한테 그렇게 해주지 않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자기가 나를 위로해 주지 않고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자기한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 자꾸 정답만 말할 거면 앞으로 다시는 자기한테 회사 얘기 안 할게. 그럼 좋겠어? 그렇게 서로 속 얘기도 안 하고, 대화도 안 하면 좋겠어? 그런 게 부부야?”
도대체 부부란 뭘까? 부부는 어떤 사이일까?
‘이 세상 어떤 친구보다 가장 친한 친구’
‘(부부는 0촌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 자식 사이보다 더 가깝고 끈끈한 사이’
‘영원한 동지, 영원한 동반자’
‘서로의 진심을 나누는 사이’
‘서로 희생하는 관계’
‘서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관계’
‘반쪽의 두 개가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부부를 정의하는 말은 수도 없이 나온다. 부부를 수식하는 말은 정말 많다. 부부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은 끝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만큼 부부는 오묘한 사이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이다.
얼굴을 마주 볼 때는 내 분신이 될 만큼 한없이 가깝고, 등을 돌리면 태양계 이끝에서 저 끝보다 마음이 멀어지는 게 부부다. 부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몸을 썩을 수 있는 사이고, 혼연일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관계이다. 또한 부모와 자식, 친구, 선후배, 직장동료, 사제지간 등 이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긴밀하고 가까우며, 독특하고 신비한 사이이다. 부부와 견줄 수 있는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벽도 없고, 허물도 없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서일까? 때론 남보다 더 막대하는 게 부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가장 큰 힘과 도움이 되고,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받아야 함에도 원수보다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원수도 하지 않을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부부는 참으로 신비롭고 오묘한 사이이다.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부는 끝까지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서 모든 사람이 아내 혹은 남편에게 돌을 던져도 남편 또는 아내만큼은 돌을 던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끌어안고 같이 돌을 맞고, 함께 신음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부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지나고 나서 “그때 왜 그랬어?”, “그때는 말을 못 했지만 자기가 잘못한 게 맞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장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절대적으로 서로의 편이 되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둘이 아닌 하나를 이룬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얼마나 쉽게 칼을 들이대고,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마음에 얼마나 많이 상처를 내는지 모른다. 한쪽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하면 남도 하지 않는, 누구보다 배우자가 가장 먼저 정죄하고 비난한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기는커녕 도리어 짐덩어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내 마지막 말을 듣고 아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아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노력했다. 내가 원하던 대로 ‘공감’ 해 주고, ‘위로’ 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주지 않은 게 아쉽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내 힘과 위로가 되어 주기 시작한 게 어딘가? 늦었지만 그래도 고맙다. 드디어 내 편이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