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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원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

관계 연습 #9

by 인생짓는남자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저지를 있는 최악의 실수가 있다. 그게 뭐가 힘드냐며 나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어떻게 해줘야 할까?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될까? 힘든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까? 둘 다 아니다. 옆에 가만히 있어주면 된다. 아무 말하지 말고 등을 두드려 주면 된다. 힘든 마음을 쏟아낼 때 잠자코 들어주면 된다. 그러면 된다. 다른 건 필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정답을 말해주거나 핀잔을 주는 사람이 많다. 정말 모질이들이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까? 아니다.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위로받고 싶어서 쏟아내는 것이다.




나와 친한 형이 있다. 수시로 연락하고, 자주 얼굴을 본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기에 그 형에게는 내 속사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형에게 속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후회했다. 그 형의 반응이 항상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저런 일로 힘들다고 말하면 늘 이렇게 반응했다.

“아휴,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지.”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었고, 내가 힘든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 터져 나온 반응이지만, 내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은커녕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반응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그런 반응이 아니었으니까.

그 형에게 내 속사정을 털어놓을 때마다 위로받길 원했다. 정확히 말하면 공감이다. 하지만 그 형은 항상 정답만 말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속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얘기해 봐야 나를 또 다그치고, 정답만 얘기할 테니까.

어느 날, 그럼에도 위로가 필요해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또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작정하고 한 마디 했다.

“형, 죄송한데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 그래.”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요. 제가 형한테 속사정을 얘기하는 건 정답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위로가 필요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정답은 저도 알고 있어요. 정답을 몰라서 얘기하는 거면 처음부터 형한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을 거예요. 저는 위로가 필요한데, 형은 맨날 정답만 얘기하시니 기분이 좀 그랬어요. 그냥 들어주시기만 하고, 공감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넉넉히 받아줄 만한 사이였기에, 다행히 형은 내 말을 좋게 받아들였다. 기분 나빠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사실 나도 네가 속 얘기를 할 때마다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 너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해서 그랬어.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고맙게도 형은 내 투정을 받아주었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지인처럼 정답을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어떡해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시험 문제 해설하듯 말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도움이 될 듯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폐만 끼칠 뿐이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 않는다. 해결할 방법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상황으로 인해 얻은 정신적 타격을 회복하고 싶어 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좋을 리 없다.

정답을 말하는 것은 그나마 낫다. 이보다 심한, 최악의 실수가 있다. 설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게 뭐가 힘드냐며 나무라는 것이다. 나는 더 힘든 일도 겪었다며 자기 무용담을 한껏 자랑하고 그 정도도 못 이겨내냐고 조롱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다.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앞서 언급했듯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위로다. 그가 넋두리를 쏟아낼 때 우리가 할 일은 잠자코 들어주는 것이다. 다른 건 필요 없다. 다른 게 필요하다면 알아서 말할 것이다. 원하는 걸 밝힐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잠시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고 싶다면, 기댈 수 있게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자. 그게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도움이다.



Key Issues

1. 힘들어하는 사람은 정답이 아니라 위로를 원한다.
2. 위로해 준답시고 아무 말 잔치하지 말자.
3.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게 최고의 도움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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