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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따를 당할 줄이야.

관계 연습 #2

by 인생짓는남자

왕따를 시키는 건 못난이들이 하는 짓이다.




전 직장에서 왕따를 당했다. 학창 시절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왕따를 말이다. 그때는 정말 황당했다. 왕따는 처음 당해봤으니까. 그리고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왕따를 당했으니까.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한 건 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가해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들이 왕따 시키던 동료 직원을 내가 챙긴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게 큰 잘못이었으리라.

가해자들의 우두머리와 왕따를 당하던 동료 직원은 입사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 아니, 그전에 같은 회사에 다녔고, 거기서부터 관계가 나빴다. 그래서 우두머리는 나이를 이용하여(팀원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팀원들을 포섭하고 휘둘러서 그 직원을 왕따 시켰다.

나는 왕따를 당하던 동료와 입사 전부터 안면이 있어서 합세하지는 않았다. 다만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관계만 유지했는데, 계속 당하는 모습을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가까워졌고,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도 함께 왕따가 되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팀원이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데 왕따라니. 그래도 상관없었다. 둘이 붙어 다니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왕따 당하던 직원이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다. 맙소사!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

그 직원이 나가고 새 직원이 들어왔는데, 우두머리와 친한 사람이었다. 우두머리는 왕따 시킨 직원을 내보내고, 자기와 친한 새 직원을 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왕따 시켰고, 팀장을 포섭하여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또 다른 문제가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기댈 곳이 없던 나는 노골적으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넷이 몰려다녔다. 점심시간에 항상 팀원들이 다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식사 후에 나만 빼고 카페를 간다거나 근무 중 티 타임 때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홀로 남은 나는 버티고 버티다 권고사직당한 직원과 마찬가지로, 우두머리의 계략에 휘말려 권고사직을 당했다. 나참 기가 막혀서...




어떤 경우라도 왕따는 나쁜 것이다. 누군가를 왕따 시키는 것에 대해 핑계 댈 것도 없고, 핑계 대서도 안 된다. 그건 무조건 나쁜 거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왕따 시키고,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왕따를 당한다.

나는 왕따는 준범죄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인격을 억누르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니까.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 나쁜 짓을 저지를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한 가지만 들고 싶다.

권력욕

누군가를 왕따 시키면 권력을 맛볼 수 있다. 한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 말이다. 그 권력은 꽤 달콤하다. 전능한 신이 된 기분을 맛볼 수 있으니까. 사회 구조에서 위로 올라갈 자신은 없으니, 엄한 데서 권력을 얻고 누리는 것이다. 참으로 못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왕따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가 왕따를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아래는 그때 했던 고민 중 일부다.

1. 삼십육계 줄행랑
2. 정공법
3. 안하무인

‘삼십육계 줄행랑’. 할 수만 있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문제는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학교라면 전학가기도 힘들고, 직장이라면 생업이니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 군대라면 탈영할 수도 없고. 그럼에도 가장 쉽고 빠른, 즉효약은 이것밖에 없다. 고민을 거듭한 후에 선택해야 하는 방법이다.

둘째로 ‘정공법’. 우두머리를 노리자. 들이받자. 학교라면 주먹다짐으로 우두머리의 기를 누르자. 기를 누르는데 실패했다면 그가 질릴 때까지 계속 덤비자. 그럼 언젠간 질려서 피할 것이다. 직장이라면 업무 능력을 높이거나 왕따 주동자보다 윗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이 방법은 깡다구와 강한 의지가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

‘안하무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내가 모두를 따돌린다는 생각으로 무시하자. 왕따 시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말자.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멘털이 강해야 한다. 계속 나를 건들고, 자극할 테니까. 멘털이 강하지 않다면 버티고, 버티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계속 그래라.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고 일만 할 테니’ 나는 ‘안하무인’을 택했다. 나와 함께 왕따 당하던 동료가 권고사직을 당한 후에 혼자 남아서 버티고 버텼다. 사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억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처자식이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니 그만둘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 둘 상황이 아니니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아니면 나도 권고사직을 당해야 했다. 열 받는다고 뛰쳐나오면 처자식이 굶으니까. 하루하루 제발 잘라주길 바라며 이 악물고 버텼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맙게도 나도 결국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때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물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암담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여서 기분 좋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시원했다.

만약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혹시나 다시 왕따를 당하게 되면 그때는 ‘정공법’을 택하리라. 홀몸이라면 마음 편히 ‘삼십육계 줄행랑’을 택하겠지만, 혼자가 아니니 그럴 수 없다. 도망갈 수 없다면 들이받아야지. 솔직히 말해서 내 성격상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그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왕따를 한 번 경험해 보니 (경우에 따라, 사람 성향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삼십육계 줄행랑’보다는 ‘정공법’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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