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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얘기를 왜 했을까

관계 연습 #5

by 인생짓는남자

부장님, 제가 많이 버는 방법 알려드릴까요?”

지난주에 우리 회사 부장님께 건넨 말이다. 돈을 많이 버는 특급 비밀이 있는데 궁금하시냐고 물으니 눈이 ‘동글동글’ 그게 뭐냐며 내 입을 쳐다보셨다.

아니고요. 어쩌구 저쩌구~ 아내도 이제 일을 예정인데요. 만약에 아내도 그만큼 벌게 되면 저는 회사 그만두고 전업 주부 하면서 아들 보려고...”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끝을 흐리고는 얼른 말을 바꿨다.

근데 정말 그렇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제 곧 2020년 임금 협상을 한다.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퍼트리면 임금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건 뻔한 일이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연봉은 올려 받고 나가는 게 좋지. 그리고 그만둘지 계속 다닐지 아직 전혀 알 수 없는데 괜한 말을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부장님과 속마음까지 터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그저 잡다한 얘기만 하는 사이이다. 당연하지. 상사니까. 상사와 얼마나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겠는가. 그런데도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할 때가 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편해서 그런 게 아니다. 부장님이 내 업무를 자주 지원해 주셔서,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대화를 많이 나누는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을 하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꺼내는 것이다. 속 얘기를 할 때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했지’ 후회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지난 월요일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내 친구네 집에 저녁을 얻어먹으러 갔다. 아내와 아내 친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 실업 급여받게 해달라고 건데 해줄지 모르겠어. 해줄 같긴 한데, 해준다고 하면 동료한테 뭐라고 말하지? 나랑 맨날 붙어 있는 동료한테 해줄지도 모른다고 했거든. 근데 부장님이 고민 해볼 테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직원이랑 친하지도 않은데 괜히 말했어. 사람은 나한테 얘기 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얘기를 해버린다. 괜히 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가 회사에 소문 내면 나만 곤란해질 텐데. 둘이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까 할 말 할 말 하게 . 붙어 있으니까 친한 것처럼 느껴져서 속에 있는 하게 .”

마지막 말을 듣고 속으로 열광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옆에서 속으로 물개 박수를 쳤다.맞아요. 맞아! 정말 그래요! 그래서 저도 부장님한테 말실수할 뻔했어요!’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아내 친구 말을 듣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만큼 관계의 거리를 측정한다. 다시 말해서 직장 동료나 학교 친구와 같이 누군가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말이다. 속마음을 터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도 붙어 있는 시간이 길다고 가까운 사이로 착각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속마음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그래 놓고아차한다.

그뿐 아니다. 그 상대가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듯한 인상을 받으면 그 착각은 더 심해진다. 붙어 있는 시간도 긴 데다 속마음까지 허심탄회하게 고백하는 것 같으면, ‘나를 그만큼 가깝게 느끼나’ 싶어서 나도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게 된다.

그러한 착각 속에 빠져 아무 말이나 다 했다가는 큰일 난다! 그가 내 말을 듣고 뒤통수를 치는 일이 발생하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분명히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는데, 그래서 속마음을 얘기한 건데, 허락도 없이 내 얘기를 소문내다니!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였나?’


충격과 함께 관계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다시는 속 얘기를 아무에게나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속 마음을 털어놓으면 또 착각하게 된다. ‘그만큼 나를 신뢰하나?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건가?’ 게다가 그 누군가와 하루 종일 붙어 있다면? 지난번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우리는 붙어 있는 시간만큼 관계가 가깝다고 착각한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친한 사이라고 착각을 하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한다.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Key Issues

1. 붙어 있는 시간과 관계의 거리는 비례하지 않는다.
2. 붙어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3. 그 착각으로 인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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