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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주고 상처 받지 않는 방법

관계 연습 #6

by 인생짓는남자

잘해주고 상처 받는다면 잘해준 걸 아까워한다는 뜻이다. 잘해준 걸 후회한다는 것이다. 베풀기로 했으면 거기서 끝내야 한다. 더 나아가면 안 된다.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 왜, 이런 영화 대사도 있잖은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 영화, 부당거래 중에서

“설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 할게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형, 줄 거 더 없어요?”

예전에 친한 동생이 나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평소에 그 녀석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저란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해줬는데 모자라다는 얘긴가? 아니면 뜯어먹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됐나? 호의가 베풀었더니 호구가 된 순간이다.

저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어, 없어...”라고만 말했다. 다른 말을 할 정신이 없었다. 그저 속으로 ‘이놈 봐라’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 자리에서 한 마디 했으면 좋았을 텐데. 소심해서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못 한 채 헤어진 후에 다시는 그 녀석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 걸로 화내는 걸 대신했다. 그 뒤로 그 녀석이 아무 말 없던 걸 보니 나는 정말 호구였나 보다. 나에게 뽑을 걸 다 뽑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호의란 친절한 마음씨를 가리킨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보통 받을 걸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뜻에서,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베풀고 싶어서 베푸는 것이다. 받지 않고 베풀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러서 베푸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하지만 상대가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호의를 베푼 사람은 상처 받게 된다. 마음을 다친다. 그동안 베풀었던 게 아까워지고, 할 수만 있다면 그동안 잘해준 걸 다 받아내고 싶어 진다. 그러나 마음만 그럴 뿐이다. 줬던 걸 뺏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니까. 애인과 헤어질 때 그동안 사줬던 선물을 다 달라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 사람이 되겠는가. 그동안 베푼 걸 일일이 세며 갚아내라고 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되니, 실제로 달라고 하지는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자 기분만 상하게 된다.




잘해주고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이 있다. 애초에 잘해주지 않는 것이다.

내 아내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베풀고, 사람들을 챙기는 걸 좋아한다. 베풀었을 때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받은 사람들이 받을 때는 아무 말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이러쿵저러쿵할 때 아내는 후회한다. 괜히 베풀었다고 말이다. 후회하며 다시는 베풀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베풀고도 욕먹는 아내가 하도 미련해 보여서 언젠가 쓴소리를 했다. 베풀고 욕먹을 거면 차라리 베풀지 말라고 말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호의를 받아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니,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회는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누군가에게 베푼다. 베풀고 챙기는 게 천성인가 보다.

잘해주고 상처 받는 건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처음부터 잘해주지 않으면 되는데 뭣하러 잘해주고 상처를 받는다는 말인가.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잘해주지 않는 게 낫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잘해주고 잊는 것이다. 잘해준 것 자체를 잊는 것이다.


잘해주고 상처 받는다면 잘해준 걸 아까워한다는 뜻이다. 잘해준 걸 후회한다는 것이다. 베풀기로 했으면 거기서 끝내야 한다. 더 나아가면 안 된다. 상대가 고마워하는 기색도 없든 아니면 더 누리고 받으려 하든, 그건 상대의 잘못이고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이다. 그 잘못을 내가 고쳐줄 수는 없다. 상대의 도량을 넓혀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상대의 반응은 신경 쓰지 말자.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잘해준 걸 잊는 것이다. 잘해준 걸 잊어버리면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보다, 시원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잘해준 측면에서 그리고 시원하게 넘어간 측면에서 대인배가 될 수 있다.



Key Issues

1. 잘해주고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이 있다.
2. 상처 받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자.
3. 잘해준 후에는 잘해준 걸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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