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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입니다

관계 연습 #4

by 인생짓는남자

우리가 누리는 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권리만 누리고 져야 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면 권리를 누릴 자격도 없다.




“차 좀 이렇게 대지 마세요.”

어제 몰상식한 차주에게 전화해서 따질지 말지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우리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 산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세입자, 우리 회사 사장님은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다. 내가 건물주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장님 명함을 팔아서 얼마든지 갑질을 할 수 있다. 차 좀 잘 대라고 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건물주도 아닌 주제에 그래 봐야 “당신이 뭔데?”, “세입자 주제에” 옥신각신하며 서로 감정만 상할 수도 있으니 섣부른 일을 아직 벌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제 차를 세워놓은 꼴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이상하게 대놓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화가 한꺼번에 치솟아 올랐다. 골탕 좀 먹어보라고 스티커라도 붙여놓을까 싶었다.

한 번은 물류차가 도착해서 물건을 상차할 때까지 잠시만 차를 빼 달라고 부탁했다. 상차 시간은 길어봐야 10분, 보통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1234 차주 되시죠? 죄송한데, 잠시만 차 좀 빼주실 수 있나요?”
“맞긴 한데요. 차 빼 달라는 전화 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저도 이 건물에 사는데, 차 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전화 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청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저는 전화 처음 하는데요.”
“3층 회사 분이시죠?”
“3층에서 전화 여러 번 받았어요. 다시는 전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 한 번 알아볼게요. 일단 알겠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전후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다른 두 회사에서 차 빼 달라는 전화를 여러 차례 한 것이었다. 그리고 건물 관리를 사장님이 아니라 실장님이 대신하고 계셔서 두 회사의 민원이 들어왔고, 민원 처리 차 실장님이 두어 반 전화하여 옥신각신 했었다. 처음 전화한 내가 그 모든 걸 덤터기를 쓴 것이다.

그 차주는 꼭 우리 회사 창고 앞에다 차를 댔다. 한 칸만 옆에 대도 내가 전화할 일은 없는데, 엄한 데다 차를 대서 전화할지 말지 고민하게 했다. 물론 창고 앞에 차를 세우든 그 옆에 세우든 그 사람 마음이니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차를 곱게 세워놓으면 어디 덧나나? 제대로만 세워두면 전화할 필요가 없다. 그는 꼭 주차 구획에 삐뚤게 세워놓거나 주차선을 밟고 세워서 손수레가 지나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전화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싸우기 싫어서 매번 다른 회사 차를 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 최악의 모양새로 차를 대놔서 그동안 쌓인 화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왜 그 차주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할까? 자기가 그곳에 살아서 주차할 권리가 있다면, 우리 회사도 그 건물에 입주해 있기 때문에 차를 빼 달라고 할 권리가 있다. 자기 권리만 권리이고, 우리 권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게다가 차를 완전히 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손수레가 지나갈 수 있게 차를 반듯하게 다시 세워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인데, 그게 그리 어려운가? 그리도 기분 나쁜가? 좁은 주차장 상황을 감안해서 서로 양보하고 도와야 하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 차를 빼기 싫으면 애초에 주차를 제대로 해놓던지, 참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다.

우리가 누리는 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권리만 누리고 져야 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면 권리를 누릴 자격도 없다. 그 차주는 이기주의의 표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착각한다. 둘을 비슷하거나 같은 걸로 생각한다. 둘은 전혀 다르다.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가 가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남의 이익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반면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이익을 누리는 것이다. 둘 다 개인의 이익과 가치를 우선 시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는 점에서는 천양지 차이다.

많은 사람이 그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한다. 내가 우선이고, 남은 뒷전이다. 철저히 이기주의 행태를 취한다. 자기만 행복하고, 권리를 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기주의가 얼마나 저열한 태도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올바른 개인주의 자세를 견지한다고 착각한다. 이러한 우리의 무지와 이기심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매일 아침 회사 앞에 도착하면 그 차가 있나 없나, 차주가 차를 제대로 세워놓았나 또 대충 세워놓았나 확인한다. 대충 세워놨으면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다.

회사 앞에 도착하기 전에 이 글을 올릴 것이다. 글을 올린 후, 회사 앞에 다다르면 습관적으로 그 차를 확인할 것이다. 오늘은 과연 제대로 세워놓았을까? 부디 오늘은 스트레스받지 않게, 잘 세워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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