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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담화하려거든 차라리 뒷담화를 하세요

관계 연습 #3

by 인생짓는남자

뒷담화보다 앞담화가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앞담화도 하기 나름이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하는 앞담화는 뒷담화보다 나쁘다.




아내들은 왜 그렇게 남편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남편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잔소리, 이렇게 해도 잔시로, 저렇게 해도 잔소리다. 결혼 전에 부모님에게서도 그렇게 잔소리를 듣지 않았는데, 남편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아내도 내게 “이래라 저래라” 종종 잔소리를 한다. 아내의 잔소리, 참을 수 있다. 아내 입장에서는 내 행동이 못마땅해 보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앞담화는 못 참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흉을 보는 거 말이다.

아내는 지인들과 모인 자리나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 흉을 볼 때가 있다. 뜬금없이 말이다.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갑자기 고발한다. 그럼 나는 아무 말 못 한다. 그 자리에서 반박하면 자칫 부부 싸움이 되니까. 부부 싸움까지 번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말씨름을 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아무 항변을 하지 ‘못한다’.

아내의 고발에 사람들은 배심원이 되어 아내 편을 들어준다. 아내의 고발 내용이 타당하든 타당하지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내가 고발했으니 무조건 아내 편이 되어 준다. 내 편을 들어주면 아내가 무안해질 테니까. 아내가 그걸 노리고 사람들 앞에서 내 잘못을 드러내고, 내 흉을 보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게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두들겨 패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내가 사라들 앞에서 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언젠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하지 마. 내가 없을 때 내 욕을 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사람들 있을 때 내 욕을 하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잖아. 나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무안당해야 하잖아. 그러니 그렇게 내 행동이 못 마땅하면 나한테 직접 말하든가, 아니면 차라리 내가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를 해.”

내 말에 수긍을 했는지 아내는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답만 했을 뿐 그 후로도 기회만 생기면 앞담화를 했다.




남편이든 아내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배우자의 흉을 보는 건 바른 행동이 아니다. 칭찬은 못할 망정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배우자 흉을 보는 건 나쁜 행동이다. 그건 상황에 따라 인격 모독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것은 꼭 부부 사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한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간혹 앞담화가 벌어진다. 누군가 옆에 있는 한 사람 흉을 봐서 밑도 끝도 없이 무안을 주거나 상대적으로 자신을 높인다.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을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얼굴로 흉을 보든지, 다니는 회사나 연봉으로 흉을 보든지, 교제하는 이성 친구 흉을 보든지, 아무 걸로 꼬투리 잡아서 무안을 준다. 그만 하라고 눈치를 줘도 계속 흉을 본다. 눈치가 없는 건지 안면이 두꺼운 건지, 그만 하라는 사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멈추질 않는다. 흉을 봐도 정도껏 봐야지.

그렇게 입이 근질거리면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흉을 보자. 앞에 앉혀 놓고 인민재판은 벌이지 말자. 재판을 꼭 해야겠으면 항변할 기회를 주자.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고, 악소리도 못하는 상황에 상대를 몰아놓고, 일방적으로 때리지 말자. 그건 정신적 폭력이다. 상대를 일방적으로 때리려거든 차라리 뒷담화를 하자. 뒷담화도 나쁜 것이긴 하지만, 앞에서 때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 둘 다 나쁜 것이지만, 굳에 비교하자면 뒷담화가 그나마 신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상대를 흠집 내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고, 의도적으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려는 뒷담화는 무조건 나쁘다).




그제 우리 집에 아내 지인 부부가 놀러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 갑자기 내 흉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항변을 하자 지인 부부 중 아내가 내 아내 편을 들었다. 아내 편을 들며 ‘아싸’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자기 남편 흉을 봤다. 역시, 저쪽 남편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을 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두 아내의 융단 폭격에 두 남편은 항변을 멈추었다. 계속 항변하려니 찌질하게 느껴져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앞으로 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내 흉을 보겠노라고 말이다. 찌질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옐로카드를 내밀었는 데도 소용이 없었으니까. 다 아내가 자초한 일이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혀과적일 애가 있다. 시청각 교육과 충격 요법으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안 좋은 행동이었는지 참 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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