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짓는남자 Mar 19. 2019

직원이 왜 퇴직금을 구걸해서 받아야 하나?

직장인에게 퇴직금은 그야말로 단비와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면, 퇴직금은 잠시 버팀목이 되어 준다. 퇴직금 지급 목적 또한 그것에 있다. 국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근로자 퇴직급여 제도의 설정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1조(목적)



근로자가 사정상 퇴직했을 때 다시 노동을 할 때까지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좋은 취지의 근로 복지제도를 악용하는 고용주들이 있다. 막무가내로 혹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미루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지난 글 - 연봉에 퇴직금 포함이라고?​)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에게 안내 한 번 하지 않고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해서 지급한 것이다. 얼마나 황당하던지. 연봉에서 퇴직금을 뺀 만큼, 내 실질 연봉이 적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받아야 할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안 받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사장님과 담판을 지은 끝에 퇴직위로금 조로 약소한 금액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런 일을 겪다니... 억울하고 황당한 이 일을 나만 겪었으면 좋으련만, 퇴직금과 관련된 분쟁은 누구든 흔히 겪는 문제이다. 가까운 지인도 그중 한 명. 지인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나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지인은 사고를 치거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회사에 잘 다니다가 건강 문제로 퇴사했다. 당연히 퇴직금을 알아서 지급해 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지급되지 않기에 사장님에게 연락했더니 깜빡했다며 보내주겠단다. 믿고 기다렸는데 다시 시간이 지나도 입금이 안 돼서 연락했더니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보내주지 않았고, 그렇게 몇 달이 흐른 뒤에 겨우 반만 보내줬다고 한다. 나머지 반은? 결국 떼였다고 한다.




퇴직금은 국가가 법으로 정하여 근로자가 누릴 수 있게 해 준 복지제도이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퇴직금제도를 설정하려는 사용자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퇴직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 제8조(퇴직금제도의 설정 등)



또한 근로기준법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

- 제36조(금품 청산)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가 퇴직을 하면 사용자는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14일이 지나면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사용자는 제36조에 따라 지급하여야 하는 임금 및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조제5호에 따른 급여(일시금만 해당된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아니한 경우 그 다음 날부터 지급하는 날까지의 지연 일수에 대하여 연 100분의 40 이내의 범위에서 「은행법」에 따른 은행이 적용하는 연체금리 등 경제 여건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이율에 따른 지연이자를 지급하여야 한다.  <개정 2010. 5. 17.>

- 근로기준법 제37조(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



하지만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 어디 그뿐인가. 14일 이후에도 지급하지 않고, 게다가 겨우 지급하더라도 지연이자는 쏙 빼고 지급한다. 악덕 사업주와 악덕 사업장이 많다. 물론 사업주 입장에서는 근로자가 얄밉게 느껴질 수도 있다. 딱 1년만 근무하고 퇴사한 후 퇴직금을 받아간다면 말이다. 하지만 근로자가 어떻게 느껴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불만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사업자는 근로자에게 무조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건 의무이다. 지키지 않으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37조 2항에 따라 천재지변이나 사변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에 해당한다면 일시적으로 지급을 미룰 수 있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사업주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고의로 불법을 저지른다.




우리는 왜 이렇게 퇴직금을 받기 힘든 걸까? 우리는 왜 퇴직금을 구걸해야 할까? 근로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퇴직금을 왜 제대로 받지 못할까?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제도를 왜 제대로 누리지 못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퇴직도 마음 편히 못 하고, 받아야 할 돈도 마음 편히 받지 못하고, 정말 불편한 근로여건이다. 연봉을 적게 받는 것도 억울한데 퇴직금마저 제대로, 제때 받지 못하다니, 근로자는 이렇게 계속 힘없는 을이어야만 할까?

앞서 말했듯이 어떤 사업주는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고약한 근로자가 많다고. 그건 피차 마찬가지이다. 고약한 사업주도 많다. 그건 할 말이 아니다. 사업자는 근로자 핑계 대지 말고 자신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한다. 법이 정한 바를 성실히 지켜 행해야 한다. 근로자도 마찬가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금 문제로 마찰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퇴직연금에 가입한 상태이다.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말 다행이다. 언제 퇴직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 퇴직하게 되면 아무 마찰 없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마음이 너무나 편하다. 회사든 나든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퇴직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연한 걸로 좋아해야 한다니, 참 웃픈 현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에게 연봉보다 중요한 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