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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May 08. 2024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라서

서울로 몰리는 이유는요,

외상이나 총상등을 제외한 모든 질병의 치유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소문난 명의? 시스템이 투명하고 치료과정에 오류가 없이 정확한 의료원이라는 하드웨어? 비싼 비급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본?


치료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내가 암을 진단받았다고 가정한다면, 전이여부, 이상 조직 증식의 진행속도, 이상 조직의 위치 등에 따라서 수술방법이 차이가 나고 이후 치료 계획도 바뀐다. 비교적 명확한 진단기준이 있고 프로토콜이 명확하며 진단인구, 수술과 유병인구가 많은 암인 갑상선 암을 예를 든다 해도 갑상선 암이라고 다 같지 않다. 


보통 초음파로 결절의 여부를 확인한 후 세침 검사를 기준으로 악성 여부와 1~6 단계로 진단을 받고 이후 총 조직 검사를 하여 정확도를 높인다. 그런데 이 조직 검사 과정이 꽤 힘들다. 마취를 한다고 하지만 꽤 아프고 굵은 바늘이 내 목을 뚫고 들어가 조직을 흡인하기 위해 이리저리 쑤신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고 이 과정이 정확해야 이후의 치료 방향이 잡힌다. 그런데 이 과정부터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그 이후의 방향도 잘못되어 버린다. 


환자가 서울의 빅 5 병원을 선호하고 명의를 찾아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환자는 최악의 경우라는 말을 듣더라도 정확하게 진단하여 치료 방법이 정해진다면 안심이 된다. 환자를 좌절시키는 건 애매한 진단이라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니 기다려봐라 라는 말 혹은 ,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많은 환자를 진단해 봐서 데이터가 근거가 되는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하게 되면 정확한 스킬로 수술을 할 집도의가 존재해야 한다. 또  많은 병리 검체를 다뤄봐서 병리과적 소견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는 병리과 교수가 협진을 해야 병리 조직의 조직 검사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뿐만아니라, 수술로 인해 파생되는 다른 기관의 합병증(갑상선 암의 경우 수술로 성대가 손상될 경우를 대비해 이비인후과 협진을 한다)도 협진할 수 있는 다른 진료과 교수가 존재 해야하며 무엇보다도 정확한 진단을 위한 최첨단 진단 장비를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의료원은 사실 많지 않다.


나는 부산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 내 조직 검사 슬라이드 원본을 찾으러 가자 검사한 병원에 내 조직이 없었다. 결국 그곳에서 위탁을 주었다는 다른 병리의원을 찾아가서 슬라이드를 반출해 왔는데 그 슬라이드를 서울로 가져가서 서울의 병원에서 등록하려 했더니 바코드가 없고 병리검사 결과 등록이 안 돼 있어서 신뢰도를 잃었다고 했다. 결국 급하게 조직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는 무조건 당장 절제 하는 수술을 권유했는데 서울로 가보니 로봇 수술과 내시경 수술등 여러 가지 수술방법에 대한 제안을 했다.


일차 전문 병원. 접근성이 편하고 수술대기가 없어서 좋다. 교수를 보기 위해 다섯 시간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고 긴 대기시간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엔 유방암이나 갑상선 암등 여성 호발 암에 대한 진단과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병원도 많고 그 병원들에서 수술받을 경우 긴 대기 없이 빠르게 수술을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암 수술은 수술 자체보다 그 이후의 삶의 질도 고려해야 한다.  백세 시대를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암 진단을 받을 수 있고 치료하고 몸을 달래가면서 관리해 가면서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 

comprehensive nursing care. 전인 간호라는 말이다. 학부시절에 매우 강조하며 배웠다.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라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으로 존재하기에 그 사람의 건강문제에는 밝혀진 질병과 진단명이라는 일차원적인 문제로 접근할게 아니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팀이 접근하여 이후 사회복귀와 남은 생의 삶의 질이라는 종합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환자가 되기 전까지는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론으로 배우긴 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임상에 있을 때도 환자를 그냥 어느 교수에게 어떤 수술을 받고 병동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의사가 내린 이런 저런 처방 오더대로 처치 해줘야 하는 대상자로만 여겼다. 그런데 내가 환자가 돼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나는 대상자가 아니라 하나의 종합적인 존재, 하나의 우주였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 내가 존재했던 사회의 구성원, 내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남은 삶을 나 자신 그대로  그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수술 그 이후의 그 삶의 역할을 다시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지방의 수술 전문 일차병원에서는 그런 전인적이고 조직화된 팀이 접근하는 전인적인 케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진단하고 수술할 실력 있는 의사가 있더라도 그 외 전인적인 케어를 할 수 있는, 그래서 이후의 삶의 질을 고려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현실이다.


의료자원의 배분 문제와 수도권 집중화 문제는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고 지금의 의정 갈등의 문제와도 닿아있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시간과 돈을 버리지 말고 접근이 쉬운 지방에 일차병원 전문 병원으로 분산하라고 이야기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내 인생을 건, 이후의 남의 삶의 질이 달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환자가 서울로 몰린다고 환자를 나무라며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 받으라고 개도할  대상으로만 볼게 아니라 양질의 의료원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의료자원들을 지방으로 재분배하며 수술을 할 명의들이 지방에서도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보상해주는게 더 중요하다. 

이전 04화 수술 받기 전과 수술 후의 나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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