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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May 13. 2024

암을 이기는 것

암도 이길 수 있는 것은 돈이었다. 



휴직을 하고 서울로 수술을 하러 올라가기 직전에, 타로카드를 공부한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타로점을 봤는데 펜타클 킹 카드를 뽑았다.

선생님은 이 카드는 안정과 성공을 의미하는 카드라서 수술이 너무 잘될 거라며 수술을 앞둔 나에게 수술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셨다.


비록 그 무렵 남편은 집을 나가서 막무가내로 사업 자금을 요구하며 나를 힘들게 압박하는 상황이었고, 어디론가로 나가서 연락이 안 되곤 했다. 나는 늘 불안했다. 그리고 병들었고 비참했다. 그런데 수술은 잘 될 것이고 암도 이겨내는데 나를 괴롭히는 남편하나 못 이길까 싶은 자신감이 들었다. 

남편에게 울며 그래도 우리가 이십여 년을 살았는데, 내가 당신과 결혼하며 당신과 당신 부모뜻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으로 와서 시부모에게 모진 대우를 받아도 참고 살며 가정을 이루고 직장생활 잘하고 당신이 날려먹을 뻔한 집을 지키고  당신이 위기일 때마다 참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줬는데 어떻게 당신은 나에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자. 

너는 네가 아프다고 하면 수술할 병원을 알아봐 주는 친구에,  비급여 수술비를 대줄 수 있는 부모에,  치료를 받으라고 유급 휴가를 주는 좋은 직장까지 다 가지고 있지 않냐며, 그런데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고 하고 있는 가게도 접을 판이니 암에 걸린 나보다 자신이 더 불쌍하다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며 모든 문제는 돈이니 여전히 집을 줄여서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 순간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와 애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불쌍함과 연민만 남았다. 

 배우자란 나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이여 한다는 첫 번째 명제는 지워버리고 나에겐 배우자의 역할보다 아이들의 안정과 아이들에게 아빠란 존재가 필요하니 내가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해도 그냥 살아야겠다는 지난날의 다짐들이 물거품이 돼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결국 남은 감정도 다 소진하고 이제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연민만 남았을 때. 나는 몸이 병들었지만 당신은 왜 아픈 나보다 더 아픈 것 같을까? 그런데 이제 나는 당신을 돕고 변화시키고 참고 버티며 당신을 구원해 줄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혼녀가 된다는 막연한 두려움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아픈 몸을 추스르며 망가져가는 남편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는 나에게 돈만 주면 다 해결된다고, 결국은 돈이 필요하다고 아직까지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집을 줄여서, 6년 전 그렇게 어렵게 지켜낸 이 집을 내놓고 줄여서 이사를 하고 그에게 그가 그렇게 원하는 돈을 해 주기로 결심했다. 지난 20년간 몰래 처자식이 사는 집을 말아먹는 사고를 치고 뒷수습을 하게 하는 남편, 내 아이의 돌반지를 훔쳐간 남편, 늘 쪼들리게 하고 힘들게 한 사람이지만 아이들의 아빠이니 완전히 망가져 원망과 남탓으로만 사는 사람이 되게 버려둘 수는 없다. 또 그가 늘 사고를 치고 불안정했기에 내가 아이들을 건사하려면 일찍 정신차리고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독하게 공부를 하고 임용을 보게 한 자극원이 되었기에 그를 원망만 하기엔 그리고 미워만 하기엔 어찌보면 고마운 면도 있다. 무엇보다 부부간의 인연이 끊기더라도 아이들에게는 한번이라도 성공한 아빠로 남길 바란다. 그 방법이 그의 요구대로 돈이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은 그것이다. 이상하게도 그와 살아온 시간들을 보면 오히려 위자료를 청구하고 내가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마음이 타들어가며 사는 것이 더 두려웠다.


 사실이었다. 남편 외에 병원예약, 휴직, 보험, 수술 전 준비 같은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모든 것이 어떤 순서가 있는 것처럼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도 동요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엄마가 수술을 하기 위해 집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고 내가 수술하러 간 사이에 둘째를 돌봐주겠다며 친구가 자청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사실 갑상선 암은 전이가 느리고 공격적인 암이 아니라 순한 암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요즘엔 진단 연령이 어려지고 있다. 이 암자체는 전이는 느리지만 막상 수술 이후 재발률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암이 전이되거나 재발이 되지 않더라도 갑상선은 호르몬과 대사 기능을 조절하는 기관이라서 이 질병은 평생 안고 가며 생활과 식습관 전반을 고치고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체온조절의 기능이 떨어져 추위나 무기력감 같은 증상을 느끼게 되고 금방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을 받는 등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암을 진단받기 이전의 삶을 돌아봤다.


예민하고 걱정이 많고 지나치게 노력하고 참고 견디는 성격. 이게 암의 원인이라면 이걸 바꿔야 내가 살 수 있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내 결혼생활을 하며 늘 걱정과 불안을 깔고 살아왔기에 그만큼 노력했고 열심히 뛰었다. 그래서 내 집과 아이들, 내 가정이 유지될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내가 참고 내가 노력해야만 유지되는 가정과 결혼생활. 아이들과 함께 하고 남편의 존재가 집에 있는 것 만으로 안심이 되는 걸 결혼생활의 행복이라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엔 내가 노오력 해야지만 하는데 그 노오력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비로소 나를 먼저 선택하기로 했다. 

결혼생활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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