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젠가 May 15. 2024

암 수술과정과 별거 과정의 공통점

겪고 보니 비슷한 과정이네요.

삶을 살며 우리는 수많은 행복과 더 많고 깊은 고통을 경험한다.

고통 속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고 괴로워하는 건 이미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 배움 자체가 사실 인생에서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괴로운 시간들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사실 살아가는 것은 고통의 순간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아이들과  잔잔한 바다의 윤슬을 바라보거나 글을 읽고 쓰거나 나의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에 도취되는 시간들같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 더 많고 그것들이 주는 기쁨에 감사하면 된다. 

내가 결혼을 선택하며 겪는 고통. 나의 연고지에서 벗어나 매 순간순간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남편에 대한 사랑과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채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시간들에 대한 회한들은  부질없다. 

 일상을 살아가며 순간순간 느껴지는 작은 기쁨과 평화. 남편이나 결혼생활이 주지 않는 내가 이룬 나만의 것들로 채워가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어리석게도 결혼생활을 벗어나면 내가 이룬 나만의 것들도 무너질 수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막연하게 두려워했다. 




수술을 마치고 부산에 오니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5월은 왜 이리 휴일이 많은지 아직 덜 회복되어 힘든 몸으로 휴일의 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끌고 바다로 산으로 축제의 공간으로 다녀야 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라도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게 아이들 전화는 받고 아빠는 오늘 집에 못 간다는 이야기는 해주던 사람이 나의 전화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전화도 받지 않고 잠적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정말로 그는 그가 원하는 돈이 나올 때까지 나를 괴롭힐 작정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미움과 원망의 마음은 나를 좀먹고 나의 남은 에너지 마저 빼앗아서 이대로 나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직 어린 둘째는 아빠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래서 그 아이의 마음에는 아빠란 존재가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큰 아이는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 아이의 마음에 원망과 속상함이 남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그를 용서해야 한다. 나를 피 마르게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가 이만큼 뿐이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서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나는 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찬란한 가정의 달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이 외롭고 서럽지 않게 ,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게 나는 더 분발해야 했다. 아직 누워있고 싶은 시간이 더 많지만 힘을 내서 일어나야 한다,


 연휴 전날 저녁 바다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와 바닷가에서 놀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이는 이미 지칠 만큼 충분히 놀고 에너지를 발산해서 기분이 좋은 상황이었다.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 학원가를 지나는데 마침 큰 아이도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다 우리를 발견했다. 큰 아이는 반갑게 우리를 향해 다가와 놀이를 마치고 집에 가는 동생의 모래 뭍은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었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연휴 전날 5월의 밤거리는 북적이고 흥겨웠다. 학원이 끝날 시간 학원가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바로 한 블록 옆에 식당가는 테라스자리 마다 연휴 전날의 봄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큰아이에게는 초코 라테를 작은 아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줬다. 달달한 음료를 하나씩 쥐고 손을 잡고 봄이 가득한 거리를 걷는 우리는 행복하고 충분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아빠의 부재, 집을 줄여서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미 아빠가 차도 들고 가서 차가 없어져서 휴일에도 멀리 놀러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모습이 관찰되어서 무엇보다 안심되고 기뻤다. 우리 셋이 있으면 가끔 들어오는 아빠와 넷이 있을 때보다 아이들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느낌에 용기가 생겼다. 세상 모두가 흥겹고 여유롭고 느긋한 연휴전날 거리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만 외롭고 쓸쓸하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우리들도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참 좋았다. 


 암투병과 수술의 과정은 매번 새로운 경험이었다. 많은 검사가 기다리고 있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그 이후 치료과정, 수술 후 약물치료를 할지 동위원소 치료를 할지 같은 불확실하고 무서운 예측들이 나를 압도시킨 순간도 있었다. 수술 전 검사들을 위해 하루종일 금식을 하고 힘겹게 버스를 타고 상경해서 많은 피를 뽑고 빈혈로 쓰러지기도 하고 CT를 찍으려고 조영제를 넣었을 때 조영제 부작용 때문에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과정을 거치고 수술을 무사히 받았고 수술 후 피검사 결과가 매우 좋았다.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말도 함께 들었다. 

 이 과정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외롭고 화가 나고 피가 마르는 순간순간들이 이어지지만 아이들이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에 압도되어 주저앉을 수가 없다. 내가 단단하게 서면 아이들도 단단해 진다. 내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흔들릴 것이다. 나는 단단해지기로 결심했다. 가정이 해체될지도 모르는 과정을 거치는건 운이 좋은게 아니다. 암으로 수술을 받는 것도 운이 좋은게 아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기존의 위험이 제거되어서, 두려움 때문에 암 세포를 모른척 하며 살아가는게 아니라 수술로 제거를 했고 다행히 그로인해 앞으로 예측되는 위험이 줄어들어서 그런것이겠지. 이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 이다. 두려움 때문에 많은 위험 요소들을 참고 견디고 그럭저럭 고식적인 치료에 그치며 살아온 나는 이제는 제거 라는 결단을 내린다.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전신마취를 하고 살을 찢는 고통만큼 아프고 괴로울 것이다. 그러다 통증을 못이겨 쓰러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이겨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