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고 싶은지 묻는 내게 S는 "업투유!"를 외치며 저녁 메뉴 선택권을 넘겼다. 후보는 평양냉면과 미나리 전골. S가 평양냉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평양냉면을 선택했다. S의 인생 드라마가 내 인생 드라마로 되어버린 요즘, 때마침 극 중 두 남녀가 평양냉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니 괜스레 나도 S와 평양냉면의 맛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지난번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는 덤이고.
퇴근 후 우리는 필동으로 향했다. 필동에는 가장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이 있다. 냉면이 나오자 S는 내게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 물었고, 나는 가지런히 꼬여있는 면을 풀기 전에 국물을 먼저 마셔보라 권했다. S의 반응을 살피며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평양냉면은 면을 풀기 전과 후의 국물 맛이 다르다는 소소한 이야기. 평양냉면을 먹을 때 으레 국물을 먼저 마시긴 하지만 사실 큰 차이는 알지 못한다. 그저 이런 소소한 이야기조차도 S와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
식사를 마친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늦은 저녁이었기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 치즈 케이크를 먹으며 오늘 하루의 안부를 물었다. S는 출근 전 카페에 들러 신문을 읽고 일기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문득 며칠 전 내 일기를 함께 읽은 날을 떠올라 “나도 읽고 싶어, 공평하게”라고 말했더니, S는 싱긋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공평은 없어!”
나이가 들수록 '공평'에 집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많아진다. 동일 선상이라면 더더욱 손해 보는 걸 꺼려한다. 한두 살 더 먹으면 성숙해질 줄 알았는데, 어찌 더욱 계산적이게 되는 걸까. 이런 마음이 공평은 맞는 건가 싶어 대범해져야지 하면서도 결국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는 소위 말하는 현타를 맞이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런 내게 S는 다르다.
좋아하는 마음에 공평이란 단어가 자리할 수 있을까.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줘" 혹은 "너 그렇게 했으니까, 나도 이렇게 할 거야" 등의 계산적인 접근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공평을 논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손해 보기 싫어하는 난데 참 이상하지. 내게 주어지는 게 조금 모자라든 넘치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음 그대로를 주고받고 싶을 뿐.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흔쾌히 함께 먹은 S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는지.
S를 마주하면 유치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이 자라나 순백색이 되어 버린다. 감히 다짐해 보자면 S와 함께하는 시간, 모든 날에 마음 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는 마음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이 마음을 소중히 지키고 싶다. 그만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맞다, 우리 사이에 공평은 없다.
- 우스갯소리였던 “우리 사이에 공평은 없어!”라는 한 마디에 S와 한참 웃고 즐기다 문득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