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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Jul 11. 2020

그 무게를 견뎌라

더 넘어지고, 더 흔들려도 괜찮아

코로나 시대의 도래로 계획한 바와는 달리 여행지가 아닌 집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쉰의 고지에 이르는 기념일이었다.

30~40대에 비해, 인생 반백의 의미를 표현하기 복잡했음이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여정보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시작"보다 "끝"에 가까이 서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묘한 요동이 있었다.

때문에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50세 생일을 꿈꾸며 알찬 계획을 품었다.

하지만 예고 없던 팬데믹 사태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수포로 돌아간 계획처럼 오십 입문 시기를 피할 수는 없어도 조금 미루어 맞이할 수는 없을까? 괜한 억지가 솟았다.

코로나 발발과 거의 동시에 희귀 종양 판정을 받은 직후였기에 일상 공간이 아닌 여행지에 작은 마음의 짐 하나 내려두고 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모양이다.


찾아가는 병원 의료진들마다 워낙 희귀한 종양이라며 당혹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다행히 불치병은 아니라면서 "차라리 암이라면 알려진 케이스가 있는데…" 자신들도 민망한지 말꼬리를 흐린다.

논문으로만 접했던 질환, 전 세계 통틀어 동일한 케이스가 있는 지조차 확실치 않은 그런 질환자가 자신들 눈 앞에 서있는 상황을 두고 오히려 내게 "실제 상황 맞아?"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독일인의 지나친 솔직함이 이처럼 잔혹하게 느껴질 줄이야…

코로나로 방문객이 극히 제한된 종합병원의 텅 빈 복도를 되돌아 나오며 삶과 죽음이,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그 공간의 삭막함에 한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독일 내 의료진을 수소문하며 병행하여 한국행도 추진했다. 한국에서 전해오는 소식도 썩 희망적이지 않았다. 한국 의학계에도 알려진 케이스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의사들도 인정한 한국의 의술과 수술 스킬 아닌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제길...

잠시 정신이 혼미하더니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보다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기 막힌 타이밍 속 아이러니. 코로나로 인해 하늘문이 닫히다니!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그 누가 감히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이전에 없던 혼란 속 온 세계가 신규 바이러스로 벌벌 떠는 중에도 코로나 팬더믹의  공포는 내게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나를 맡길 병원과 의료진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그 난감한 상황이 더 공포스럽고, 끔찍했으니까.

 

수 주에 걸쳐 코로나 비상 속 엄격한 경비망을 뚫고 이 병원, 저 병원 문을 두드린 결과, 믿음이 가는 의사를 만나기에 이르렀다. 사전 경험이 없기에 예습을 철저히 해왔다던 창백한 얼굴의 외과의사는 상세하고도 매우 차분하게 내 상태와 심각성 등을 설명해주었다. 더불어 지향하는 치료 및 수술 방안도 제시했다. 최선을 다하려는 그의 선한 의지가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엇보다 희귀 질환을 연구 차원에서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는 진심이 읽혀 환자의 입장에서 믿음이 갔고, 집과의 거리도 부담이 없는 곳이라 안도감이 더 깃든 것도 사실이다.

"수술은 옵션이 아닙니다. 생명에 위독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수술 결과에 따라 평생 삶의 질이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함께 최선을 다해 봅시다. 무엇보다 강해져야 합니다."

 

종양 보드미팅이 소집되고, 해당 전문의들이 모여 내 케이스를 분석한 결과,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아 사전 치료로 종양의 크기 감소를 꾀해보자는 의견이었다. 더불어 코로나로 인한 긴장 태세이니 시간도 벌어 내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유레카!" 환호를 지를 수만도 없었다. 수집된 논문상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 이마저도 이전 사례를 근거, 당신에게도 긍정적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는 것이다. 그 친절한 설명이 확신 없는 위로로 다가섰다. 이런 상황 앞에서 강해지라고? 순간 믿음이 흔들렸다.


„왜 하필 나야? “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헛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정작 터진 것은 하염없이 얼굴을 적시는 눈물이었다. 그동안 힘겹게 이성을 지키려 누르고 숨겨둔 감정이 폭발해 한참을 통곡했다. 그러고 나서야 속이 살짝 후련해지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반면, 내가 당면한 상황에 대한 현실감은 더욱 멀어져만 가는 듯했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이뤄낸 의술은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경지에 달해있다. 그럼에도 불구, '신규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파악되지 않은 적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국경을 막고, 인류와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한 코로나인 만큼 전 세계가 이를 위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내가 앓고 있는 이 질환의 미래는? 이 지구 상에 이 질환을 인지하고 있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

 

긴가민가 의문 속 돌입한 사전 치료 4개월째.

큰 병과의 싸움은 다른 작은 병들을 일으킨다.

일상이 전 같지 않다. 부작용과 더불어 감수해야 할. 많은 것들이 따른다. 그 덕에 다행히 종양의 크기가 줄었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의 축복이라고 해야 하나?

재택근무가 장기화돼 비교적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환경 속에서 근무를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더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환자 입장이 되어보니 무척 의지가 된다. 지나갈 건을 알기에 고통도, 암울함도 견뎌질 힘을 얻는다.

힘든 상황은 지나가기에 다행이며, 끝이 있기에 고결한 것이 생명임을 새삼 되새겨본다.


눈높이부터 낮추고 삶을 대면해보자.

50년 인생에 잔병치레는 많았으나 단 한 번 병원 신세 져본 적 없다. 난치라지만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 함께하는 나보다 더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도 감사하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내가 절망하며 허비하는 이 순간순간을 살아내고 싶은 생명들의 절실함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면 내게 주어진 이 고통, 이 시련이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으며, 내게 허락된 오늘이 진정한 선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 치료를 얼마나 더 오래 받게 될지, 언제쯤 수술이 가능할지, 일상으로 완전한 복귀가 가능할지 예측할 수 없는 현재가 드리운 어둔 그림자가 짐스럽지만 그래도 숨이 쉬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50에 이르기까지 견뎌온 굴곡진 인생의 무게 아니던가?


난관에 부딪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횟수가 남보다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시련을 털고 일어나느냐 여부에  인생의 성패가 좌우될 것임을 간과했던 어제를 교훈 삼아, 시련과 고난 또한 인생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완주를 꿈꿔보자고 되뇌어본다. 남보다  넘어지고, 흔들려도 괜찮아, 인생은 그런 과정을 통해 단단해질 거야. 치료일 수가 길어질수록   안의 종양이 줄어들 ,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짊어진 두려움의 무게에서 조금은 홀가분해진 모습이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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