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Jun 21. 2021

연약한 마음을 관리하며 사는 법

우울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을 때 체크해야 할 것



변화의 장입니다.


사실 이 글 몇 편을 가지고 변화를 이끌겠다고 하면 그건 욕심이자 비현실이고, 그보다는 변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장이라고 하는 것이 걸맞을 것 같습니다.


먼저, 앞서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우울은 기분 장애. 힘차게 생활할 수 있는 기분이 아닌 것 자체가 우울의 증상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무리하지 말 것. 타인을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그가 우울함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놓아버리지 않도록(예. 우발적인 퇴사) 가능한 만큼만 도움 주기 

남들보다 우울해지기 쉬운 타고난 유전 소인이 존재, 첫 번째는 스트레스성 자극에 보통보다 더 격렬한 부정정서를 느끼는 신경증. 아울러 유전적 영향 밖에도, 아동기에 차갑고 냉담한 양육환경을 겪었거나, 관련해서 자신이 타인의 기준과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랑 받지 못할 것이라는 조건화된 가치감을 가지고 있으면 우울해질 위험성


이를 통해서 우울한 사람이 전형적으로 어떤 감정경험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심리학 연구들을 통해 일관되게 밝혀진 주 사유("우울의 원천")는 어떤 것들인지 전했습니다. 



이제 How to로 넘어가서 변화 방안을 취하기 위한 제안을 시작하기 전에 꼭 강조해 말하고 싶은 건,

이 모든 걸 전부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취향과 상황에 맞는 단 한 가지 방안을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울의 주축은 무력감입니다. 

부정적인 오오라가 몸 전체를 잠식해버린 것처럼 전혀 어떤 의욕과 힘도 나지 않고, 

삶에 대해 설레거나 기대되는 것 하나 없는 육중한 무기력. 

깊이 침체되어 지속되어 온 무기력을 실험적으로 꺠는 것 만으로도 분명한 변화의 첫 발입니다.






우울은 기분 문제 

노력해서 그 기분을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우울증 극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원론적으로 생각해서, 우울증 극복이 "노력해서 기분이 우울해지지 않게 하기"라면 이것은 거의 비현실에 가깝습니다. 기분이 침체되는 것이 우울의 대표 증상인데, 노력해서 증상이 제발로 사라진다면 세상 많은 심리질환 치료가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우울한 사람과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주변인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기분 문제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기분전환을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우울한 사람의 의지력을 의심하지만,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경험되는 고통스러운 정서를 전혀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고 무력감을 호소합니다. 

실감을 돕기 위해서 신체로 예를 들자면, 원인미상으로 다리가 마비되었는데 오직 걸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마비 증상에 대한 치료는 하지 않고 의지력을 논하는 셈입니다.




기분 자체를 어떻게 하기 어렵다면 어디로 접근해야 할까


우울한 기분은 증상이자 우울증으로 인한 결과. 기분으로는 진입로가 없기 때문에 다른 경로를 이용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사람의 상태(condition)를 설명할 때 크게, 


- 정서/감정

- 생각/사고

- 행동 


세 가지로 구분하곤 합니다. 가장 첫 째인 정서/감정(즉, 기분) 이외에 생각 또는 행동에 접근해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안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때, 우울한 감정이 개인의 노력 여하 때문이 아니라는 점과 더불어서 기억할만한 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시든 꽃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꽃이 자력으로 생기를 되찾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듯이,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생활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자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심각하지 않은 경도 증후군(syndrome) 정도의 기분부전은 시간이 흘러서 자연스레 나아지는 사례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계절성 우울이 여기에 속합니다. 소위 "가을 탄다", "장마가 너무 길어서 우울하다"고 하듯, 날씨 변화로 인해 잠시간 우울감이 들었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개 우울이 오롯이 시간의 흐름에 의지해서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여타 다른 상황과 생활환경은 다 만족스러운데 오직 직장 때문에 우울해졌다면 이직을 통해서 우울이 사라질 수 있을테지만 많은 경우 우울해진 사유가 다양한 삶의 요소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앞선 편에서 소개한 신경증적 성격 특성, 과거에 경험한 충격적인 사건 등등 그 원인이 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만으로 기분이 호전되기 어렵습니다. 무언가 기존과는 다른 새 방안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극도의 무기력에 빠져있는 사람이 갑자기 파이팅!을 외치면서 대범한 변화 도전을 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감정을 다루고, 부정정서 수준을 경감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안을 취해볼 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춘 방안이 효과가 있고 현실적입니다.


첫째, 성공할 확률이 거의 100%인 쉬운 것 

둘째, 실패하더라도 부정적인 여파가 없는 것 

셋째, 건강한 것 


무조건 쉬운 방안이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며 무기력한데, 당장 채비를 해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서점에 가서 특정 책을 사서 집중해서 독서하고, 책에 기술된 스무 단계를 따라서 어떤 기분전환 방안을 취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옷을 챙겨입고 외출하는 것 부터가 대단히 부담되고 힘에 부치는데, 나가서 책을 사와서 가뜩이나 우울로 인해 흐린 집중력을  붙들고 독파하라니요? 이런 방안은 우울에 걸맞지 않습니다.


우울한 심정 상태에서 시도할만한 방안은 방 안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겁니다. 

또는 15분 이상 긴 샤워를 하거나,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다면 집안에 방치해두었던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는 거지요. 이런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무조건 쉽고, 약간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시도하기만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일상적인 방안이어야 합니다. 

동시에 실패하더라도 (예를 들어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눈부심을 견디기 힘들어서 금방 창을 다시 닫더라도) 부정적인 여파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크게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신할 수 없는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는 것도 포함됩니다. 상담을 할 때, 우울한 내담자에게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권하기 이전에 상담자는 내담자가 가진 인적 지지체계(support system)가 어떤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가령 우울을 겪고 있는 청소년 내담자의 부모가 폭력적이고 알코올 문제가 있다면, 내담자가 용기를 내서 부모에게 도움을 구했다가 거절 당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로 기분이 더욱 침체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이 회복을 위해서 내딛는 여정의 시작 시기에 취하는 방안은 반드시 쉽고, 실패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후유증이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방안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특히 성인들은 우울을 일시적으로 마취할 수 있는 건강하지 않은 방안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폭식, 

술에 취하는 것, 

잦은 일회성 만남, 자극적인 관계에 뛰어드는 것, 

직장에 무단결근을 하거나 우발적으로 퇴사를 '지르는 것'. 


당장 우울함 때문에 보통의 생활을 이어나갈 힘이 나지 않고, 삶으로부터 도망쳐서 눈을 질끈 감고 싶기 때문에 이런 방안들이 유혹적으로 느껴지지만, 당장 몇 달만이라도 장기적으로 감안한다면 결코 나의 기분을 더 긍정적이고 안온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직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퇴사는 분명히 고려해봄직한 선택지이지만, 깊은 우울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감정에 치우친 퇴사를 감행한다면, 소위 '먹고 살 걱정'과 미래 계획의 부재가 우울한 사람이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아 회복하는 것을 도리어 방해하고 부담감이 더 가중됩니다.


맛보기를 했듯이, 한 사람의 상태를 범주화한 세 가지 영역 중에 우울의 증상으로 인해서 바뀌기 어려운 정서/감정 상태를 제하고, 생각/사고에 접근하는 방안과 행동에 접근하는 방안을 각각 소개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어오는 글에서 추천할 방안 중에 

'나에게 맞는 방안'은 무엇인가 


취사선택을 내릴 고려사항에는 다음 예시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만 효과가 있는 급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또, 우울은 자연히 '불안' 감정과 공존하고, 불안감을 유발하는 조급한 시도는 우울한 사람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취향, 성향과 현재 처한 상황을 개방적으로 고려해서 만일 각 방안을 취해본다면 어떤 이점(좋은 점)과 어려움(감수해야 할 부담)이 따를지 마음껏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1. 변화 여정이 녹록치 않아서 일시적으로 기분 상태가 더 다운되더라도 생활에서 반드시 놓치 않고 유지해야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예. 직장생활, 육아 


  2. 변화 여정동안 전적으로 지지해줄 주변 타인이 있는가? 누구인가? 시간/상황에 관계 없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대상인가(예. 함께 거주하는 사람인가)? 


  3. 변화에 도움이 될만한 나의 자원(resource)은 무엇인가?

        - '몸'의 건강은 어떠한가?

         - 다양한 인프라를 취할 수 있는 곳(지역)에 살고 있는가?

          - 경제적인 여유는 어느 정도인가?

           - 정해진 시간에 일해야 하는 직장인인가, 프리렌서인가? 퇴근은 규칙적인 편인가? ... 



세상에 신과 같이 전지전능한 의사, 100%의 치료효과를 보장하는 상담자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만인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우울증 극복방안은 없습니다.

 

A씨에게는 도움이 되었던 방안이 B씨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개인 심리상담과 (우울증 심각성에 따라 필요하다면 병원을 통한 약물치료도) 병행하면서 전문가가 상황에 맞는 방안을 권하고, 실제로 시도해본 뒤에 경과를 나누는 것이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약상 모두가 주기적인 전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변화를 위한 저의 글은 주로 가상 사례와 겸해서 전개하려고 합니다. 글에서 제시하는 상황이 현재 나의 상황과 얼마나 통하는지, 그리고 가상 인물의 상황에 나 자신을 대입했을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 여러분과 제 상상력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심리학 연구자들이 어떤 치료를 개발해서 실제 기분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시해보고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는지 검정할 때, 심리학 연구의 불분율은 비교 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비교 집단 대비 연구자들이 개발한 치료가 '특별히 더' 효과가 있었는지 알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기분장애에 '뭐라도 하기만 하면' 주로 이전보다 나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회복의 힘이고, 

내가 나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서 무언가를 시도할 때 긍정적인 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방안 '무얼' 취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당신에게 잘 맞는 것(정확히는 잘 맞을 거라고 느껴지는 것), 끌리는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차후의 이야기입니다. 


확실한 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안을 시도해본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우울 치료효과가 있고, 힘겨운 첫 시도 후에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는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기분이 나아지면 되찾은 힘을 빌어 더 과감한 변화를 꾀할 수 있고, 더 과감한 변화를 통해 기분이 더 나아지는 이 시점부터는 자연적인 선순환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본 값 정서가 보통 수준 이상으로 호전되면, 이처럼 우울을 이겨낸 경험이 앞으로 삶에서 고된 때를 보내게 된다고 해도 이미 한번 해본 것처럼 또 다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성공 경험이 될 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