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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ul 02. 2021

변화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시작법

<행동>에 접근해서 우울해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



우울 극복을 위해 사고(생각)에 개입하기 방안을 소개했습니다.


우울에 빠져서 경험하게 되는 무력감은 감정적으로 압도되는 고통입니다.

마치 늪에 선 것처럼, 발버둥 칠수록 더욱 아래로 아래로 침전하는 이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사람이 지닌(일부는 타고난) 기본적인 정서적 특성이 우울해질 위험을 더 높이기도 하지만, 이미 우울을 겪고 있다면 그 후의 무력감, 원인을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 절망감, 삶에 대한 무망감('삶이 의미 없음')은 우울로 인한 증상이기 때문에 직접 없애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감정 대신 사고에 개입해서 우울한 감정을 가중하고 지속시키는 파국적인 생각에 직접 반박하고, 그 반증을 찾음으로써 습관적으로 반복해오던 사고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언어에 습관이 드는 것처럼, 유사한 '투'로 생각을 하다 보면 습관이 들게 됩니다. 상담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스키마(schema)라고 불렀고, 우울한 사람의 전형적인 스키마에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절망적 사고 패턴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더 선호하는 방향에 따라 제안 순서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고로 접근하는 길보다 행동에 접근하는 길이 덜 가파르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느 길로 가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어디로든 가느냐, 그 자체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역대에 그 어떤 저명한 심리학자, 상담자도 백이면 백 모든 사람들의 우울에 정통한 치료를 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우울은 주관적인 사유와 사회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저마다 다르고, 효과적으로 극복하려면 취향과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대개 효과가 좋았던 보편적인 방안들이 존재하고, 그 중의 몇 가지로서 오늘은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에 변화를 기하는 방식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C는 자신이 패배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C는 유독 자신을 또래 친구와 비교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곧잘 하고 선생님들에게도 사랑 받아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비교하는 습관으로 인해 종종 열등감을 느꼈지만 순간적인 질투가 날 뿐, 친구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더 노력해서 성과가 더 나아진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견딜만 했습니다. 원했던 대학에 입학해서 안정적이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해보니 주변에 똑똑한 동년배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개인 공부도 잘 하면서 주변 인맥 관리도 능숙하게 해내고, 또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능한 모습에 움츠러들었습니다. 현명한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들의 SNS를 염탐하게 되고, 고급 식당에 간 사진을 보고 '집안 배경이 빵빵해서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 같은 걸 받았나?' 하는 생각까지 다다르면 자신이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암담함,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앞서 나가있는 사람들은 절대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절망이 밀려옵니다.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되고 학교에 나가기도 싫습니다. 


D는 우울해서 "먹토(먹고 토하기)"를 합니다.

원래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고 식탐이 있는 편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우울해지기 전에는 적어도 폭식하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가 너무 고돼서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러다가는 내가 나 자신을 잃겠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지만 쉬면서도 정신적인 에너지가 회복되지 않아서 계획보다 더 오래 쉬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표면적으로 재취업 준비를 하는 척 하지만 사실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D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마음이 가벼워질 때는 먹을 때 뿐인 것 같습니다. 이마저도 눈치가 보여서 몰래 먹는데, 특히 부모님이 긴 외출을 하신 날에는 치킨, 피자, 떡볶이, 과자를 가득 차려 놓고 먹으면 정신이 마취되는 것처럼 우울한 기분은 잊혀지고 오롯이 먹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유혹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먹고 나면 폭우같은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이대로 건강마저 잃어서 취업은커녕 완전히 도태되는 게 아닐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 엉킨 실타래가 어디서부터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전부 잘못 된 것 만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일단 이 정크푸드들이 소화되면 안된다는 위기감에 토하기 시작합니다. 찌르는 두통이 오고, 구토 하느라 얼굴에 힘을 줘서 눈 주위에 실핏줄이 터져서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더 우울해집니다. 



가장 첫 편에서 우울한 사람이 어떤 파도와 같은 감정 경험을 하는지 묘사했었습니다.

C와 D의 사례에서도 우울한 사람의 전형적인 극단적이고 파국적인 사고가 발견됩니다.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암담함, 아무리 노력해도 앞서 나가있는 사람들은 절대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절망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 엉킨 실타래가 어디서부터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전부 잘못 된 것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대학원 사람들이 나보다 잘난 존재로 기정사실화 되면서, C를 자동적으로 '남들보다 못난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D의 폭식도 분명 건강하지 않은 행동이지만 이것으로 말미암아 곧 건강을 다 잃게 될 것이고, 삶이 망가졌다는 생각에는 파국적인 비약이 섞여 있습니다. C가 정녕 두려워하는 것이 뒤처지는 것이라면 행동적으로 무언가 자기개발적인 노력을 기해야 하고, D가 폭식으로 인해 건강을 잃을 것이 극심하게 걱정된다면 행동적으로 폭식을 멈춰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습니다.  


우울한 사람 대부분 자신이 반복하고 있는 행동이 우울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방해물로 작용한다는 걸 알면서도 중단하거나 전환하지 못합니다. 가령 중증도 이상의 우울(주요우울장애, major depressive disorder)의 진단 기준 중 하나는 생활습관, 신체(예: 체중)상의 현저한 변화입니다. 체중이 현저히 줄거나 느는 것, 수면을 극도로 덜 하거나 더 하는 것 - 양방향으로 모두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내막을 들여다보면 C처럼 비교하는 생각을 되풀이하느라 고민이 깊어져서 마음이 소란하고 잠에 들기 어려울 수도, D처럼 폭식을 해서 토하더라도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체중이 는 것일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해버리는 사람, 잠으로 도피하는 사람, 방안에만 머물러서 자연히 잉여 에너지가 남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심하게 지쳤는데도 신체 에너지가 충분히 사용되지 않아서 쉽사리 잠들기 어려운 사람 ... 



우울의 지속과정은 복합적이지만 작용하는 핵심은 공통점을 관통합니다. 


내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앞서서 우울한 사람이 경험하는 "무력감"이 극심히 고통스럽다고 얘기했는데, 여기서 무력감은 power-less가 아닌, 영어로 hopelessness를 번역한 것입니다. 


Hope _ 희망이 

less _ 없는 듯한 경험


지속된 무력감은 한 사람의 마음가짐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우울해지기 이전이라면 "우와! 재밌겠다!!" 싶었던 일이 버겁고 두렵게 느껴집니다. 무언갈 해낼 만한 힘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란 일말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C와 D에게 "그럼 OO하면 되잖아?" 라고 제안하는 것은 무소용입니다.

자신감과 도전의식, 의욕이 제로 베이스로 돌아간 상태에서 추가 공부나 운동같은 부담스럽고 힘이 드는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 



단시간에 성공할 수 있는 아주 쉽고 구체적인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울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개입해서 기분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최대 30분 이내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도전해볼 만한 과제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과제로 삼는 이 행동이 지금껏 더 우울해지게 만든 행동과는 명백하게 다른 성격의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튀긴 치킨' 대신 '구운 치킨'으로 폭식하기는 두 가지 사이의 성격이 충분히 다르지 않아서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지금 당장 별도의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우울로 인해서 퇴사를 했고, 그래서 경제적인 여유가 부족한 사람이 '유럽 여행 가서 힐링하고 우울 극복하기'는 오히려 비현실성에 부딪혀 좌절감을 높일 수 있는 위험한 과제입니다. 별도의 특별한 준비물이나 숙고 과정 없이, 누구에게나 99.99% 성공 확률이 있는 아주 쉬운 행동과제가 필요합니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주변인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충분히 쉽고 명확하며 구체적인 행동을 골랐는지 우울 극복을 지지해주는 주변인의 의견을 구하고, 행동과제를 함께 떠올려볼 수도 있습니다. 





D의 경우에는 정크푸드를 과도하게 많이 배달시켜서 폭식을 하고 토하는 반복된 행동이 우울을 가중했습니다. 그렇다면 D가 취해볼 수 있는 행동과제는? <건강한 음식을 조금만 사와서 먹고 토하지 않기>는 30분 이내에 해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시간 내에, <기존에 보던 정크푸트 배달어플 대신 건강한 음식 무엇으로 식사하면 좋을지 자연식 레시피를 읽어보기>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재료의 측량 수치만 나열한 글 말고, 사진과 함께 흥미롭게 꾸며진 인터넷 블로그, 칼럼 글을 한두 편 정도만 가볍게 읽어보는 겁니다. 너무 길게도 말고, 보통 하루에 배달어플을 켜게 되는 시간대에 자연식 레시피 읽어보기 30분이면 충분합니다.


C가 타인의 SNS를 과도하게, 특히 잠들기 직전에 집착적으로 보는 행동이 상념이 들게 하고 우울을 가중했습니다. 그렇다면 C를 위한 단시간 행동과제는 <SNS를 적당히 수면시간이 아닐 때 보고, 밤에는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하기> ...? 이것은 효과적인 행동과제의 두 번째 조건에 어긋납니다. 정확히 어떤 행동을 말하는지 기준이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SNS를 적당히?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일까요?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 어떤 행동이 C의 수면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호한데, 일단 시도해보고 되는 것을 계속하는 건 우울한 사람에게 가용한 방안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실패를 하게 되면 뒤따라오는 좌절감이 C에게 "나는 역시 잘 안돼" 같은 절망적인 해석을 하게 하고, 실패한 기억으로 인해 다른 방안을 시도할 때 더 심하게 주저하며 위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령 스케이트 실력이 그저 그런 우울한 사람이 <스케이트 멋지게 타기>를 행동과제로 삼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발장에 스케이트가 있으니까, 꺼내서 스케이트 날을 깨끗하게 닦기>는 할 수 있습니다. 



성공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어린 아이도 지침을 주면 따라할 수 있을만큼 구체적인 행동이어야 합니다. 


C에게 보다 원천적으로 필요한 행동은 SNS 어플을 삭제하고 며칠 버티는 것이겠지만, 이건 단시간 내에 완수할 수 없는 일이어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대신 <평소라면 SNS로 남이 올린 게시글을 관찰할 밤 시간대에 20-30분을 투자해서 긴 샤워하기>는 그로써 수면에도 생리적인 도움이 될 것이기에 시도해볼만 합니다.  


행동변화가 어려운 건 비교 기준을 심리적으로 건강할 때 자신의 수행수준에 두기 때문입니다. 마치 다리를 심하게 다친 사람이 재활을 해야 하는데, 첫 목표를 <마라톤 완주>로 잡는 것처럼 부담감만 가중할 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넘쳐서 퍼포먼스가 쭉쭉 뻗어 나가던 때를 기억하는데, 초대받지 않은 우울이 찾아오더니 단순한 일도 처리하기 버거울 때 무언가 대단히 잘 못 되었다는 어질러진 마음이 대단히 괴롭습니다. 그래서 침체되었던 시간이 길수록 더 빠르게 회복해서 스퍼트를 당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우울했던 사람이 사고이든 행동에 개입해서 변화하려고 할 때, 실제 컨디션은 오래된 깁스를 막 푼 것처럼 근육이 약해진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무리해서 서두르게 되면 높은 확률로 실패를 겪고, 시도했지만 안 됐다는 사실에 자신의 의지력과 역량을 비관하면서 좌절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울 극복의 첫 단추를 잘 꾀어서 하루하루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퍼포먼스 수준이 우울하지 않을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가 진척돼서 어느 정도 이전과 같은 기분 수준을 찾기 전까지 나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게 관건입니다.



우리는 남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할 때가 많습니다.

이 것밖에 안 돼? 그럴 줄 알았다. 정말 한심하구나. 인생을 낭비하고 있네.

남에게는 상처가 될까봐 결코 하지 않을 악담들을 자신에게 너무 쉽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경험을 통해 기억하는 것처럼 힘이 다 빠져서 엎어져 있을 때 사람을 일으키는 것은 '자극요법'이 아니라, 꾸준히 믿고 응원해주는 것, 사소한 성공이라도 해내었을 때는 크게 격려해주는 태도라는 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울한 감정으로 인해 여가와 취미, 대인관계를 차단하고 땅굴을 파면서 그동안 스스로를 탓하는 말을 많이 해왔을 것이고, 부상 후에 약해진 다리처럼 心(마음) 근력이 연약해진 상태에서 작고 구체적인 단위부터 성공경험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사소하지만 안 되던 것을 해냈을 때 기쁨은 상당합니다. 우울을 마취하기 위해서 정크푸드로 폭식을 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패턴을 반복하던 D가 야식을 시키기 위해 배달어플을 보는 대신 건강한 자연식 레시피를 읽고, '직접 조리하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하지? 냉장고에 뭐가 있고, 새로 살 것은 뭐지?' 아이디어에 이르면, 어느 날 신선한 야채를 사러 칩거하던 방에서 스스로 나올지 그 기간은 생각보다 길게 소요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체인처럼 이어진 행동패턴의 단 한 가지라도 

마음건강에 도움이 되는 종류로 바꾸는 시작을 확실하게 하는 겁니다. 


우울이 지속되면 문제적 패턴이 습관처럼 굳어지기 때문에 처음 몇 가지를 변화시키기 어려울 뿐, 그 다음부터는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회복 기세가 이어집니다. 상담에서는 이 작업을 '활성화'한다고 표현합니다. 우울한 사람이 상담에 찾아왔을 때, 부모와의 갈등어린 관계나 잘 풀리지 않는 진로처럼 큰 단위의 이슈를 다루기 이전에, 먼저 기분 수준이 나아지고 생활 에너지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야 그 큰 단위 이슈를 다룰 수 있는 힘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울 극복은 어떤 획기적인 방법을 통한 변신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일상 생활부터 재건하는 과정(process)입니다.     


이제는 정말 일어서기 위해 이 긴 글을 완독하셨다면, 이미 패턴의 한 조각이 변하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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