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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ul 02. 2021

그래도 삶, 나의 삶

우울에 대한 글을 맺으며



질소를 이용해서 존엄사가 가능한 기계가 상용화를 앞두었다는 뉴스에 달린 많은 이들의 댓글을 보고 이 글을 읽는 이가 몇 분이나 되었든 중간에 놓지 않고 완주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우울은 참 얄궂어서 감정의 문제이고, 그래서 심리학적으로도 '기분장애'에 속합니다.

하지만 외현화된 증상, 즉 몸이 다친 것처럼 겉으로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니고, 우울한 감정으로 인해 체중이 극감하기도 하지만 도리어 체중이 늘기도 하고, 밤 늦게 깨어있는 것 같은 생활습관과 결부되어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모진 말을 듣기 쉬운 여러가지 고질점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우울을 겪어왔다면, 

"나가서 운동도 좀 하고, 사람도 좀 만나고 그래! 방안에만 있으니까 우울하지." 

"생각을 좀 긍정적으로 바꿔봐" 같은 얘기를 두어 번 이상 들어왔겠지요. 그리고 이 것이 우울한 사람을 사랑하는 주변인의 고충이기도 하고, 할 수만 있다면 내 속을 뒤집어 보여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심리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고통입니다.


현재는 매체를 통해서 우울을 비롯한 심리질환에 대한 정보가 대중화되어서 이전보다 터부시하는 경향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울증 약을 먹거나 증후군 수준의 우울에서 회복하기 위해 50분에 평균 8-10만원에 달하는 전문 심리상담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습니다. 단순히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기 무서워서 참고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울이 중증도 이상으로 심각하면 병원 진료를 받아보려고 안 하던 외출을 결심하는 것 자체에도 많은 품이 듭니다. 의사는 충분히 친절할 것인지, 사실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진단된다면 그동안 나의 의지력이 부족해서 괴로워하고 있던 것일지, 불확실한 가능성들이 전부 공포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현대인에게 양날 검이라고, 저는 제 글이 접근성이 좋은 온라인 매체가 가진 장점의 한 조각으로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울 극복' 파트에 중점을 두고 힘을 실어 적었지만, 글을 읽고서도 실제로 무언가 시도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어도 문제 없습니다. 


다만 우울한 내가 진짜 내가 아님을, 

학창시절을 떠올리고, 그보다 더 어릴 때를 회상해보면 분명 우울하지 않은 때의 내가 살았다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현재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압도하지만, 그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기본값 정서가 다소 울적한 편이고,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심각하게는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아픈 구석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연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깊은 우울에 빠진 모습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히 사실입니다. 


한 상담자는 자신의 직업소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상담에 찾아온 내담자가 The best version of him/herself로 살도록 돕는다.


저는 한국식의 '그릇'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외향적이어서 기본적으로 활력 수준이 높고 대인관계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더 클 수도, 내향적이고 감정적으로 섬세한 사람은 더 작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고, 순간마다 처한 환경과 하고 있는 일, 나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 쉼 없이 변화합니다. 처참한 기분으로 퇴근했지만 집에 왔을 때 반겨주며 애교를 피우는 반려동물 덕에 한 순간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원래는 그렇지 않던 때가 있었는데 현재 우울해진 것처럼 반대의 방향도 가능합니다.

오늘은 우울하지만 내일은 덜 우울할 수도, 나아가서는 행복감을 느낄 때가 옵니다.


우리는 지금 나의 처한 상황에서 '베스트 버전의 나'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단정된 것은 없고, 불확실성은 예기치 못한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뜻밖의 행복과 성취로 이끌기도 합니다.


무서운 세상이라면 떨더라도 살아가기.

일이 잘 되지 않는다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기.

우울하다면 우울한 채로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



비록 세상에 날 때는 타의로 났지만, 현재는 자의로 가꿀 수 있는 삶 속에서 

점차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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