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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un 24. 2021

파국적인 생각에 반박하기

<생각>에 접근해서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



앞서서 우울한 감정에 대한 변화방안을 모색할 때, 내가 처한 상황과 컨디션에 가장 걸맞은 방안을 취사선택하기 위해 고려해볼만한 사항을 소개했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이 포함되었죠.

몸의 건강은 어떠한가? 당장 치료가 필요한 신체적 증상은 없는가? 

변화방안을 시도해보면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더 다운된다고 해도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필수요소는 무엇인가?

변화를 시도하는 데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 인적자원(예. 가족)이 있는가? 누구인가?



우울증은 기분 장애이고, 침체되고 절망스러운 기분이 우울의 증상이기 때문에 기분 자체에 변화 시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컨디션을 범주화해서 정의할 때 구분 짓는 

  1) 감정, 

  2) 인지(사고), 

  3) 행동 

중 "감정"을 우선 제외하고, 인지(사고)와 행동 측면으로 각각 나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볼 수 있는 방안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먼저 '인지(사고)에 접근하는 우울 회복, 기분 변화방안'을 소개합니다.




A는 수능을 앞두고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분명 대학입시 재수를 결심한 초반 때는 그렇게 심한 좌절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험생활을 이어나가면서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고, 체력의 한계를 시험할 만큼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번에도 첫 수능처럼 능력을 펼치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압도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의 사이가 악화되면서 집안에서는 언쟁이 잦아졌고, 수능 날이 다가오는데 공부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가족 사이도 붕괴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수능 시험이 예정된 11월이 다가올수록 A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기분이 침체됐고, 가까스로 책상에 앉아도 모의고사와 문제집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이 흐려지고 두통이 밀려와서 공부하는 게 괴롭고, 밤에는 잠에 들 수 없어서 눈만 감고 누워있으면 절망스러운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떠나가지 않습니다.


B는 마음먹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할까봐 시작도 하지 못하며 우울합니다. 

이름난 대학을 졸업하고 주변 모두가 안정적인 기업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추천했지만 B는 더 장기적인 삶의 방향성을 고려하면서 스타트업 벤처사업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투자를 받기 위하여 준비 과정 초반에는 성공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열의에 불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고 해도 반드시 잘 풀릴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불확실성에 불안한 감정이 들면서, 스타트업 경진대회 접수를 앞두고 필요한 준비사항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료 조사, 아이디어 제안서 준비, 발표 준비 ...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데 좀처럼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어서 마음만은 너무나 간절한데 도무지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겁니다. 제안서를 쓸 때 한 문단을 완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같은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면서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해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고, 유능한 도전자들 사이에서 1차 합격도 하지 못한다면 망신을 당하고 주변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두려워서 날마다 움츠러드는 기분입니다. 




불확실성(Uncertainty)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우리 인간은 일명 "서바이벌 모드(survival mode)"에 들어갑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전쟁 상황, 자연재해 피해 도중 또는 직후에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전형적인 서바이벌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안전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사랑과 번식을 하지 않고, 조그마한 마찰에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하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대인관계로부터 자발적으로 고립되며 새롭고 도전적인 활동은 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안녕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타인에게 온정을 베푸는 행동은 물론 거의 하지 않습니다. 


상담심리학을 포함한 사회-응용심리학자들은 불확실성이 사람에게 공포를 일으키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 입시에 실패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을 줄임)을 기울이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극심히 좌절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A는 대학 재수를 결심하고 성실하게 수험생활을 이어나가면서 두 번째 고배를 마시지 않기 위한 노력, 즉 재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수능이 다가올수록 불확실성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면서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해진 모습입니다.


B의 모습도 유사한 시각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전형적인 취업 준비가 아닌 스타트업 벤처에 뛰어들었고, 투자를 받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안(경진대회 참여)을 모색해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기 확신감을 잃으면서 실수와 주변인의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점차 더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삶은 불가항력적인 불확실성에 켜켜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모든 위험요소를 100% 통제하는 건 불가능입니다.


일기예보를 초 단위로 체크해도 피할 수 없는 소나기가 있고,

예보대로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내내 화창한 날씨가 이어진 날도 있듯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하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법 밖에는 없고, 그마저도 100%는 아닙니다.


동전의 윗 면과 아랫 면처럼, 그렇기에 때로는 운명적인 기회를 얻기도 하고, 운 덕분에 이득을 보기도 하는 것이 삶인데 우울한 감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취약한 상태"의 사람에게 이 불확실성은 전시 상황만큼이나 위험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첫 번째 수능 이후 뼈아픈 아쉬움을 느껴봤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입시에 성공하고 싶은 A의 간절함.

보편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들과 달리 위험이 수반되는 사업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경진대회에 입상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싶은 B의 간절함 ...  


"OO하지 않으면 안돼."   "반드시 OO해야만 해."   "OO밖에 길은 없어."


진실로 간절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더욱 두려운 것이지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말만큼 우울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사고 연쇄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또 없을 겁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도무지 멈추지 않는 것, 그래서 우울이 지속되면 여타 다른 심리문제, 질환이 더 더해질 위험도 높습니다. 실제로 우울증은 다른 심리적 문제와 함께 가지게 될 공병률(comorbidity)이 가장 높은 심리질환입니다. 대표적으로 A와 B의 사례처럼 우울과 불안을 동시에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뿐만 아니라 우울과 알코올 중독(물질사용장애), 우울과 섭식장애(거식 및 폭식) 공병 가능성도 문화와 국가 상관 없이 일관되게 높은 비율이 관찰됩니다. 


원치않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몰려오면 이것을 자력으로 감당하거나 끊기 어렵기 때문에 제3의 탈출구를 찾고, 그 방안이 알코올, 중독적인 쇼핑, 자해성 거식 또는 폭식 등 다양합니다. 


우울한 사람의 심정을 서술한 앞선 편에서 비유한 것처럼 '마취제'를 찾는 것이지요. 우울한 사람이 표면적으로는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걸로만 보이지만, 당사자의 내면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절망적인 생각들로 누구보다 바쁜 상태라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연쇄적인 생각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극심히 지친 상태인데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 증상을 호소하게 되고, 반면에 부정적인 생각을 덮어두고 도피하려는 시도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잠에 빠져버리는 과수면도 우울의 증상입니다(보통 불면증을 우울의 더 보편적인 증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과수면 증상을 보이는 경우 '비정형(atypical) 우울증'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모 아니면 도' 사이 중간 지점으로 가기 


그렇기에 생각에 개입해서 우울을 줄이려면, 연속된 사고가 맨 끝까지 내달려서 결국

"나는 망했다", "영원히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같은 극단으로 가기 전에 

과도하게 현실을 비약하는 불합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일시 정지'해야 합니다. 


가령 A가 목표했던 수능 성적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어느 대학도 가지 못하는 건 아니고,

B가 경진대회에 입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앞으로 그 어떤 투자도 받지 못할 거라는 낙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울해지면 마치 기정사실처럼 파국을 가정하게 됩니다. 원래 성격이 부정적이어서라거나 비약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는 우울의 취약한 특성 때문이 그렇습니다. 


자신감에 찬 사람이라면 "이것 안 되면 다른 것 또 해보지 뭐~" 라며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는 게 가능하지만, 우울한 사람은 사정이 다릅니다. 내적으로는 마구 아래로 곤두박질 치는 감정을 느끼면서, 우울해지기 이전에는 능숙하게 해냈던 쉬운 일들마저 힘에 부칠 때 비관에 젖게 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사고 연쇄를 매일 여러 바퀴씩 반복할수록, 그 결과로 더 무거운 패배감에 젖게 되고 우울이 깊어지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연쇄를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무조건", "절대"는 그만 


극도로 절망스러운 감정이 들 때, 나 자신이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먼저 그것을 완성된 문장으로서 적어봅니다. 보통 우리가 하는 우울한 생각들이 막연한 경우가 많습니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인지 글로 적어봅니다. 누군가는 이런 작업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이 더 뚜렷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글로 직접 적을 때, 내 손 안의 휴대폰이나 노트에 적힌 글로서 공포감이 실체화되면서 통제감을 느낄 수 있고, 글로 적는 작업 자체만으로도 보다 감정적으로 해소되는 치료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수능을 잘 못 보면 내 인생은 끝이다."


가령 이것이 A의 생각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더 큰 우울을 부르고 괴로움을 가중하던 생각이 무엇인지 글로 적어 실체화했다면, 할 일은 사실 단순합니다.


"정말 그런가?" 반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반문과 그에 따른 답변(반문에 대해 내게 드는 생각들)을 우울해지게 만든 위의 생각("이번에도 수능을 잘 못 보면 내 인생은 끝이다.") 밑에 이어 적습니다. 


만일 그 답변이 극단적이어서 또 다시 반문이 필요하다면(예. "정말 그런가?" -> "정말 그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런데 어떡해!") 추가적인 반문(예. "정말 그런지 '사실'을 내가 어떤 이유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는 거지?")과 답변을 계속해서 적어나가는 것입니다.


"수능을 잘 못 보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잘 못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지? 

몇 등급이면 잘 못 본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망한 인생은 가령 어떤 인생인 것이지? 

어떤 면에서 내가 그러한 인생을 그토록 절망적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다르게 볼만한 여지가 있는가?



나아가서,


"수능을 잘 못 보더라도 내 인생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까?"


긍정적인 가능성에 대한 물음까지 나아가는 이 과정이 다소 고통스럽지만 집요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사고 연쇄에 개입해서 '일시 정지'하고, 반대 증거를 찾는 이 작업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겁니다. 수능시험처럼 삶에 우울에 빠질만한 사건/단서가 드리웠을 때, 심리적인 에너지 레벨이 점차 다운되기 시작했던 그 시점부터 현재까지 파국적인 사고 연쇄를 수십 번 이상 반복해왔을 것입니다. 


척! 하면 착! 이라고, 일종의 부정적인 사고 습관이 든 겁니다. 습관이 들고 나면 익숙해지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생각의 습관을 반전 시키는 작업이 절대 한 번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의지적이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결코 수월하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의지를 들여서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해야 합니다.


스스로 효과를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됩니다. 처음에는 별 소용이 없고, 게다가 억지로 하려니 더 힘이 들고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반문을 해봐도 내 마음은 이미 파국적인 극단에 설득되어 있기 때문에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이것도 소용 없구나. 역시 나는 답이 없어' 같은 부정적인 사고 연쇄로 회귀하지 않고, 반문 작업을 또 하는 겁니다. 가능하다면 적어나가는 분량 상관없이 절망적인 감정이 강하게 들 때마다 하는 것이 좋고, 육아나 직장생활로 인해 불가능하다면 주 2회 정도는 시간을 정해놓고 의지를 들여서 해보는 겁니다. 정확히 몇 번이나 해야 효과가 나타나는지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존에 얼마나 우울했었는지 심각도에 따라 다르고, 마침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인의 존재 유무나, 기분전환을 돕는 운명적인 사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업의 변화 원리는 확연합니다. 

처음에 일부러 우울한 생각을 해서 우울해진 건 아니지만 우울해지면서 절망스럽고 파국적인 사고 연쇄를 시작하게 되었고, 반복할수록 생각의 내용이 극단적이 되면서, 바뀌지 않고 그대로 반복하면 더 우울해질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변화를 위해 의지를 들여서 우울하게 만드는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으로 머릿속과 하루(중 적어도 일부 시간)를 채우게 되면 반복되었던 부정적 생각들에 의해 우울해진 악순환에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고 연쇄에 우선 제동을 걸고, 전보다 회복한 에너지를 다시 우울 극복을 위해 사용하면서(예. 무기력을 딛고 동네산책 나가기) 자연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우울의 습관'을 끊어내고, 수험생활 중이거나 중요한 평가를 앞두고 있어서 상황에 의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최선을 다한 현실에 발을 딛고 나 자신을 믿는 습관'을 새롭게 들일 때 우울로부터 자유해진 것을 체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회복한 단계에 다다르면 이제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실패하면 나는 패배자이다?


  ... 정말 그런가?


아니, 이 한 가지 일에 실패하게 된다고 해도 나의 존재가 패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지만 실패하게 될 거라는 법도 없다. 나는 현재 준비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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